메뉴닫기

전체메뉴

Quick Menu

Quick Menu 설정

※ 퀵메뉴 메뉴에 대한 사용자 설정을 위해 쿠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메뉴 체크 후 저장을 한 경우 쿠키 저장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언론속의 국민

[칼럼] 세대 생략 증여,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 이호선(법학부) 교수

  • 작성자 박차현
  • 작성일 17.11.13
  • 조회수 5508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 / 전국법과대학 교수회 회장 

“민주정부는 세금 내도록 투표해 놓고 자기는 납세 의무에서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정치체제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19세기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의 뼈있는 풍자이다.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쪼개기와 세대를 건너 뛴 이른바 세대 생략 증여가 주요 비판의 중 하나로 도마에 올라 있다. 탈세(脫稅)와 절세(節稅)의 기준은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세원(稅源)을 적극적으로 감추는지 여부에 있다. 그래서 조세범처벌법은 조세포탈을 위한 사기나 부정한 행위의 유형으로 이중장부의 작성 등 거짓 기장, 거짓 증빙 또는 거짓 문서의 작성 및 수취, 장부와 기록의 파기, 재산의 은닉, 소득ㆍ수익ㆍ행위ㆍ거래의 조작 또는 은폐 등을 들고 있다. 쪼개기 증여는 이런 유형에 해당하지 않는다. 과표를 낮추기 위한 절세 행위로 수긍된다.

그렇지만 세대 생략의 증여의 경우엔 다르다. 형식적으로만 보면 증여는 자유다. 자기의 재산을 누구에게나 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세대를 건너 뛴 증여는 순차적으로 이어질 상속에 따른 조세를 회피하기 위한 행위의 성격을 갖는다. 적어도 생략된 사이에 있었던 한번 이상의 세원이 증발된 것이다. 물론 자식이 미덥지 못해 차라리 손자, 손녀에게 직접 가업을 상속시키고 싶은 경우와 같이 조세 회피의 의도와는 전연 무관하게 이뤄지는 세대 생략형 증여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민법이 미성년자에게도 제3자로부터의 무상 증여를 받을 수 있는 길을 터 놓고 있긴 하지만 수증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세대 생략형 증여는 성인에 대한 경우 보다 더 심각한 법적 문제와 모럴 헤저드의 위험성을 수반한다. 

그것은 미성년자라는 특성에 기인한 법적 책임의 감면에서 비롯된다.

어떤 사람이 위에 열거된 다양한 조세포탈 행위를 하였다고 치자. 이런 행위에 대하여는 당연히 형사법적 제재가 내려진다.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포탈 세액의 3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이 그것이다. 기본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포탈세액이 많으면 적게는 3년 이상, 많게는 무기징역까지 가중 처벌될 수 있다. 하지만 미성년자인 경우엔 형사책임에서 전면적 내지 상당부분 자유롭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 마음만 먹으면 미성년자에게 막대한 재산을 증여하고 그 이름으로 얼마든지 탈세를 공공연히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개인의 대리인이 그런 행위를 한 경우 대리인에 대한 처벌 규정도 있지만 미성년자라고 해서 반드시 법정대리인을 통해서 행위를 하란 법도 없고, 더구나 조세 포탈 행위는 상대방이 있는 거래행위와 달라 미성년자 본인이 했다고 주장해도 달리 밝혀낼 방법이 없다.

형사법으로도 문제지만 미성년자에 대한 증여 행위는 민사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홍종학 장관 후보자의 미성년자 딸의 경우 증여세를 내기 위해 엄마로부터 2억 2천만원을 빌리면서 이자까지 주기로 차용증까지 썼다고 한다. 그런데 14세 중학생 딸 명의의 차용증서는 누가 썼을까. 미성년자라 친권자인 어머니가 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버지인 홍종학 후보자가 딸의 법정대리인으로서 부인과 차용증서를 써서 주고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딸의 동의나 허락이 있었다고 해도 실제로는 자기가 자기와 거래한 셈이다. 홍종학 후보자가 딸의 대리인으로서 차용증을 썼다면 부부 간의 계약이나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 쉽게 이해되지 않고, 계약의 존재와 채무이행의 진정성 여부를 의심케 하지 않을 수 없다. 

청문회 과정에서 나온 기사를 보면 홍 후보자는 이번엔 자신이 또 딸에게 2억 5천만원을 빌려 주어 딸로 하여금 엄마에게 그 돈을 주어 정산하도록 할 계획이라 한다. 이렇게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민법적으로는 딸로 하여금 “나는 엄마와의 사이에 차용증 쓰고 이자 준다는데 동의한 바 없다”고 하거나, 딸이 성년이 되어 “엄마에게 써준 차용증은 무효”라고 한마디 하면 그만이다.

그럼 딸과 엄마 사이의 채무관계는 없었던 일이 되고 만다. 엄마가 받아내겠다고 할런지도 의문이지만, 법적 다툼으로 가도 엄마로부터 받은 돈에 대한 반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부당이득을 취한 셈이 되어 돌려줘야 하지만 법리상 현존한 범위 내에서만 반환하면 되므로 이미 증여세 내는데 다 써버린 마당에 돌려줄 돈이 남아 있을 리 없다. 

이렇게 해서 사실상 또 다른 증여 논란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잠재울 수도 있다. 미성년자에 대한 증여는 정의 관념에 반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조세피난처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적으로 홍 후보자나 그 부인, 장모가 이런 문제점까지 알고 악용하려고 한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장관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 차제에 불거진 세대 생략 증여, 특히 미성년자를 수증자로 한 증여행위에 대한 입법적 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정당한 부의 정당한 대물림과 미성년자를 조세도피처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