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경영대학은 혁신을 주도하여 기업과 사회에 새로운 물결을 창출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특성화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연구기관입니다.
Kookmin University’s College of Business Administration is an educational and research institution that cultivates creative and specialized global talents who lead innovation and generate new waves in business and society.
상아탑 속의 학문추구가 아닌, 기업과 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실무경험을 제공하는 5개의 학부와 8개의 전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Rather than ivory-tower scholarship, it is composed of five schools and eight majors that provide diverse practical experiences to meet the needs of businesses and society.
급변하는 경영환경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국내외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전문인력 양성 기관입니다.
It is an institution dedicated to training professionals capable of forecasting rapidly changing business environment trends and proactively responding to both domestic and international contexts.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은 다양한 장학제도를 통해 “지식” 못지 않게 “경험”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Through various scholarship programs, the College of Business Administration conveys to students that “experience” is as important as “knowledge.”
자기만의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인재가 되도록 저희 경영대학과 “경험의 놀이터”에서 가득 찬 미래를 꿈꾸어 보세요.
Dream of a future filled with our College of Business Administration and its “Playground of Experience,” where you become the talent who can share your own proud story.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은 “혁신을 주도하여 기업과 사회에 새로운 물결을 창출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특성화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연구기관”을 지향합니다.
The College of Business Administration at Kookmin University aspires to be an educational and research institution that “leads innovation and cultivates creative and specialized global talents capable of creating new waves in business and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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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분노보다 슬픈 연민 / 한기봉(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
1. 한 장의 사진이 가슴을 정말 먹먹하게 했다. 노벨상 시즌이 오면 우리 모두를 조마조마하게 했던 그 분이다.
그 분은 사달이 난 며칠 후 수원시가 마련해준 광교산 자락 ‘문화향수의 집’ 자택에서 잠깐 모습을 보인 후 칩거 중이다. 보인 게 아니라 언론의 카메라에 포획된 것이다. 나무담장에 팔순의 노구를 숨기고 평소의 멋진 중절모 대신 야구모자와 짙은 선글라스, 얼굴을 반쯤 가린 하얀 마스크를 쓰고 집밖의 동정을 살피는 얼굴. 그 얼굴은 우리가 알던 그분이 아니다. 카메라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으리란 사실을 미처 몰랐을까. 경찰의 포위망에 더 이상 도망칠 곳 없는, TV에서나 본 어떤 장면이나 사람이 오버랩이 돼 슬펐다.
2. “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네가 이해를 좀 해 달라.” 7년 전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선교 봉사 활동을 하던 신부님은 함께 간 여신도에게 집요하게 성폭행을 시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가 그렇게 증언했다. ‘내가 내 몸을 어찌할 수 없다’, 이 말이 가슴을 친다. 이만큼 솔직한 인간적 고백이 어디 있을까. 그는 그 순간 사제가 아니라 본능과 싸우는 세속의 외로운 남자였던 것이다. 그 많은 고해성사를 들으며 막상 신부님은 영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3. “제가 정작 어떨 때는 이게 나쁜 죄인지도 모르고 저질렀을지도 모르고, 어떤 때는 제 더러운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서 생긴 일일 수도 있다.” 이 시대의 거물 연출가는 3인칭 화법처럼 ‘욕망’이란 단어를 말했다.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나는 왠지 주춤했다. ‘욕망’은 ‘성욕’보다 함축적이다. 성욕이라는 단어는 객관적이고 사전적 의미가 확실하지만 ‘욕망’은 좀 다르다.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명제다. 그는 욕망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욕정’을 욕망으로 연출한 것일까.
우리 모두 이렇게 인간의 두 얼굴을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보이지 않던 얼굴은 햄릿이 아니라 하이드였고 프랑켄슈타인이었다. 경외감이 일순간에 배반감과 절망으로 바뀌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니, 그 말로는 충분치 않다. 나는 솔직히 인간적 연민에 휩싸이고 말았다. 이렇게 말하면 공분의 댓글 공격을 받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연민은 분노보다 슬프게 나를 엄습했다. 여태까지 침묵 중인 고매한 시인을 빼고 두 사람은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제 입으로 토설했으니 그나마 ‘인간적’이었다고나 할까.
두 얼굴이 아닌 자, 어디 있을까.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그토록 자상한 딸 바보를 연기했던 유명한 두 아빠도 리스트에 올랐다. 누군가는 ‘그들도 결국은 나 같은 인간에 불과하구나’라며 스스로를 변명하고 위안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내 안에도 우리 안에도 분명 오욕칠정과 이중인격은 꿈틀거리고 있다.
그런데 문학과 예술이란 게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의 다중적 내면을 거울처럼 들여다보게 하고 치유하는 게 아닌가. 문학이란 결국은 선과 악, 이성과 본성, 욕망과 구원의 문제일 터다. 작가 개인의 방황과 욕망이 자양분이 됐을 수도 있지만 그 종점은 인간구원에 닿아있다. 작가의 문학세계에서 구원을 갈구했던 우리는 오히려 굴레를 뒤집어쓰게 됐다. 그 상충과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서로를 구원하는 문제만 남았다. 위선과 비겁은 문학의 언어가 아니다(류근). 하루가 멀다 하고 미투의 장부에 이름을 등재하는 문화예술인들. 한 번 각인된 주홍글씨를 지울 수는 없다. 진정하고 순결한 고백과 참회, 성찰과 보속. 그것만이 그들의 작품과 얼굴을 사랑했던 범인(凡人)과 중생을 위로할 수 있는 마지막 품위와 예의가 아닐까. 그게 스스로를 구원하고 우리도 구원해주는 길이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을 내려갈 때는 보셔야 한다.
원문보기: http://www.hankookilbo.com/v/deeef580cb994a29ae35ef5da4c79f8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