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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시다 #6] 국민*인, 볼라벤 피해 현장에 가다

  • 작성자 김민정
  • 작성일 12.09.17
  • 조회수 13148

학생들이 고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밝고 즐겁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며 저희 농민들은 희망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얼마 전 태풍 볼라벤 으로 인해 뒤집어진 충남 한 마을에 국민대의 젊은이들이 찾아들었다. 이들은 한국원자력문화재단 'NUCLENERGY' 서포터즈들로, 재단의 지원을 받아 타 학교 학생들과 연합하여, 자발적으로 피해지역을 찾아 왔다고 한다. 비록 1박 2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이들의 활동은 어르신들께 일손보다 더 소중한 희망을 주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에 고마움을 표현하시고자 충남 논산시 광석면 산동리 마을의 새마을 지도자이신 강신재 어르신께서 지난 9월10일, 국민대학교 총장님께 손수 감사편지를 써서 보내주셨다. 위의 대목은 그 감사편지에 쓰인 한 구절이다. 이 편지의 주인공인 국민*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자.

 

Q. 볼라벤 태풍 피해 복구 봉사를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희는 현재 한국원자력보호재단 소속 서포터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볼라벤 태풍이 한국에 상륙하기 전, 많은 사람들이 그 위력과, 그 피해에 대해 우려했던 것 기억하시지요. 그 우려 중 하나가, 혹시나 태풍의 강력한 바람으로 인해 원자력발전소에 문제가 생겨 원자력이 유출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원자력보호재단 서포터즈로써 이 우려에 관심을 가지고 혹시 유출사고는 없었는지, 다른 에너지 자원 문제로 고생하는 분들은 없는지 조사해보았습니다. 조사 하던 중 유출사고는 없었지만, 태풍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지 않았던 서울과 달리, 중남부 지역은 많은 피해를 입었고, 특히 농사를 짓는 어르신들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서포터즈들 중 마음 맞고 시간이 되는 친구들끼리 모여 봉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Q. 서포터즈 단체가 봉사를 하게 된 계기 말고도 개인적으로 봉사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아요! 각자 무엇 때문에 봉사에 참여하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윤승환( 기계자동차 07) - 지난 2년 반 동안 여러 가지 분야에서 봉사를 해왔지만, 정작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에서 일해본적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맡아서 해온 일들은 대부분 안마, 말동무, 학습지도 같은 것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번 기회에 당장 일손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드리고 싶었습니다.

김수영 (신소재 07) - 고향이 전라도인데, 나중엔 도움을 많이 받아 복구가 많이 되었지만, 처음엔 피해가 정말 심각했습니다. 피해 정도를 알기에 제가 서울에 있었지만, 태풍피해를 남 일처럼 생각할 수가 없었죠. 남부지방은 그나마 많은 도움을 받아 다행이지만, 중부지방은 그런 피해를 입고도 도움조차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운 마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은 ( 발효융합 10) - 어느새 3학년인데 농활 한 번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늘 한 번쯤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러던 중 태풍 피해로 고통 받는 농촌을 찾아 일손을 도와드리자는 얘기를 듣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Q. 왜 충남 논산시 광석면 산동리 지역으로 가게 되신건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남부지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역시 이렇게 생각하고 남부지방으로 복구 봉사를 떠날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대중매체를 통한 정보와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가장 먼저, 큰 피해를 입은 곳이 남부지방이기 때문에, 도움의 손길 또한 그곳에 많이 닿았고, 덕분에 어느 정도 피해복구가 가능했던 남부지방과 달리 중부지방은 남부지방의 피해에 묻혀 많은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충남 논산시 광석면 산동리 지역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Q. 그 지역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김승현(나노전자 10) - 처음 도착했을 땐, 비닐하우스가 무너져있고 작물들이 뿌리째 뽑히거나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보다 심각한 피해에 놀랍기도 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하지만, 곧 보이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를 어르신들께 듣게 되었습니다. 정부에서는 비닐하우스의 표준규격을 정해놓고, 그 규격에 맞게 비닐하우스를 짓도록 정해놓았지만, 규격대로 비닐하우스를 짓자면 돈이 많이 들어,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규격에 맞지 않게 비닐하우스를 짓고 정부에 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태풍피해로 하우스가 무너져도, 신고하지 않은 하우스에 대해 지원을 받을 순 없으니 그 피해를 고스란히 어르신들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인력이 부족해 살릴 수 있었던 작물들조차 손 놓고 볼 수밖에 없었다며 한숨 쉬는 어르신들을 보니 제 가슴까지 답답해졌습니다.

 

Q. 어떤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남자들과 여자들이 갈라져서 일을 했어요. 태풍 피해로, 땅 상태나, 다른 환경들이 여자들이 일하기엔 좀 무리가 있어서, 그런 곳엔 주로 남자들이 가고, 여자들은 따로 연결되어 있는 딸기들을 분리하고, 흙을 털어서 정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남자들은 주로 하우스 철거작업을 도왔는데, 비닐들은 낫으로 잘라서 버리고, 파이프들은 뽑아서 눕혀놓고, 긴 파이프는 톱으로 잘라서 차곡차곡 정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렇게 힘을 많이 쓰는 일인데, 지금까지 어르신들께서만 일을 해왔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힘드시고 암담하셨을지…….

 

Q. 말씀을 들어보니, 힘을 많이 쓰는 일을 주로 하신것 같은데, 많이 힘드시지 않으셨나요? 뭐가 가장 힘드셨나요
글쎄요. 힘을 많이 쓰는 일이긴 했지만, 다 함께 일을 해서 그런지 그렇게 고되다고 생각되진 않았어요. 산동리 노인 회관에서 생활했는데 어르신들께서 많이 배려해 주셔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었고요. 힘든 것 보다는 저희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보니 농사일에 대해선 잘 모르고 특히 태풍피해복구 하는 일은 농촌에 살지 않는 한 농활로도 경험하기 힘든 일이다 보니, 일이 많이 서툴렀어요. 어르신들을 돕고자 왔는데, 도리어 피해만 더 입히고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Q. 그 곳에서 봉사를 하고 어르신들을 도우며 어떤 것들을 느끼셨는지 궁금해요!
위에도 말씀 드렸듯이, 저희가 농사일 경험도 거의 없고, 더 더욱이 태풍피해복구일은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어요. 아니나 다를까 서툰 손놀림으로 인해 실수가 잦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께서는 꾸중한번 안하시고, 그저 서울에서 관심가지고 도와주겠다고 내려온 마음이 너무 고맙다고 내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 말씀을 계속 듣다보니 농촌의 피해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봉사를 하러 온 것이 아닌, 내가 해야 할 일, 나에게 닥친 일들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통해 농촌의 피해를 보면서 어쩌면 남의 일처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또한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이 일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저희는 이번 활동을 통해 농촌 어른들께는 일손도 필요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결코 어르신들이 혼자서 그 상황을 다 끌어안지 않도록 모두가 농촌 어르신들에게 작지만 큰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얼마 전 도그빌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 속에서는 마을사람들이 평화롭게 일상생활을 하고 있는 같은 공간에서 끔찍하게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밟는 범죄가 자행되고 있는 모습을 그린다. 같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 속 사람들은 범죄가 일어나는 줄도 모른 채 당장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생활을 하기에 여념이 없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도그빌의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 대해 지나치게 둔감하고 무관심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