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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을 찾습니다 #21] Graphic designer 강구룡. 그와 나누는 디자인 이야기
고개를 들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자. 커피가 반쯤 차있는 머그컵, 째깍째깍 손목에 채워진 시계, 창밖으로 보이는 입간판, 심지어 옆 사람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도 문자가 새겨져 있을 것이다.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다.’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 유심히 관찰한다면 글자의 배치, 모양, 색깔이 풍기는 미감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문자를 통한 디자인 작업을 타이포그래피(typography)하고 하는데, 여기에 그치지 않고 토크쇼,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강구룡 씨(조형대학 시각디자인학과 01 학번)와 만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하자.
▲ 그림/그림자 Tracing Shadows 전시 포스터, 2015, Client: 삼성 Plateau
Q. 안녕하세요! 강구룡 디자이너님은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현재 디자인 스튜디오 ‘청춘’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어요. 미술관, 갤러리 등 전시 디자인을 하기도 하죠. 반 고흐 전시를 보러 가면 고흐의 작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 현수막 등 전시에 맞는 보이지 않는 꾸밈이 있어요. 주로 글자로 타이틀을 만들면서 전시만의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 이 전시의 성격이 어떤지 힌트를 주는 것이죠. ‘강쇼’라는 이름의 디자인 토크쇼를 통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디자이너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위트 그리고 디자인, ’디자이너의 비밀‘ 등 책을 집필함으로써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한 활동도 하고 있어요.
▲ 한글이 걸어온 길전시 도록, 2014, Client: 한글 박물관
Q. 주로 글자를 통한 디자인을 많이 선보이시는데, 이 분야에 특히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가 얻는 정보의 80% 이상은 눈으로 얻는 편이에요. 그중에서도 글자가 비중이 크잖아요. 지난주 프랑스와 스페인에 갔다 왔는데, 간판, 책자 등 모든 게 알파벳으로 쓰여 있으니 그곳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크게 느껴지더군요. 거기에 외국 언어까지 들리니 ‘아, 내가 지금 외국 왔구나.’라는 실감을 하게 되는 거죠. 언어는 우리가 쓰는 정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어요.
글자를 디자인의 요소로 다루는 일을 타이포그래피라고 해요. 제게 있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지금도 이 일을 하는 거겠죠. 요즘 함께 작업하는 작가들도 기본적으로 글자 디자인과 관련해 책, 앨범 레터링, 타이틀을 만드는 등 문자로 소통하고 있어요. 글자 이미지화하고, 거기에 성격을 부여하는 것, 바로 타이포그래피인 것이죠. 주위를 둘러보면 사실상 문자가 들어가지 않는 작업이 없어요. 앨범, 책, 영화, 컵 등 글자를 비롯해 로고, 심볼, 신호 등 약속된 기호를 삽입하는 데, 이런 것도 모두 글자의 일부죠.
그중에서 저는 유독 타이포그래피 작업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토크쇼 진행, 책을 쓰면서 제가 디자인하는 분야를 확장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박쥐 같은 사람이죠(웃음). 그게 제 성향인 것 같아요. 한곳에 오래있지를 못해요. 영감이 떠올라 노트에 적다 보면, 두 쪽을 쓰고 그 이상은 힘들어 지더군요(웃음). 하지만 오히려 이런 성격이 현재 사업을 하면서 이것저것 다양한 활동을 하는 발판이 된다고 생각해요.
▲ 강구룡 그래픽 디자이너와 윤디자인연구소가 기획한 디자인 토크쇼 '더티 & 강쇼'
Q. 디자이너님이 생각하는 디자인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오래가지 않는 것이 좋아요. 빨리 계획해서 빨리 쓰고, 빨리 버리는 것. 그러면 금방금방 돌아가잖아요. 순수 예술에 대해서만 아름답다는 표현을 하지는 않아요. 일상의 사소해 보이는 디자인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어요. 휴대폰, 손목시계, 가구의 디자인 등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본인 삶의 스타일을 규정짓는다고 생각해요. 오래 방치해 두면, 그런 삶을 살게 돼요. ‘예전엔 저걸 썼으니, 이번엔 이걸 써보고, 다음엔 그걸 써야지.’ 이렇게 순환할 수 있도록 소비를 해야, 본인의 생각도 바뀔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나는 이렇게 옷을 입어도, 생각하는 건 달라.’ 자신은 이렇게 주창을 하지만. 그를 보는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 수밖에 없어요. 바로 디자인이 가진 매력 중 하나죠. 그래서 디자인은 상업적이고 사람들은 여기에 계속 노출되는 것이에요. 절대 강요하지는 않지만, 하지만 굉장히 자극적이죠. 디자인은 계산되어 만들어져요. 그냥은 결코 없어요. 색깔, 모양, 재료 등에 선택된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요.
Q. 졸업 이후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2008년 학교를 졸업하고 6년간 직장 생활을 했어요. 작은 회사도 다니고, 대기업 LG전자도 다녀봤는데, 일을 하는 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돈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죠. 작년부터는 독립했어요. 청춘에서 클라이언트 일도 하며 개인작업과 함께 토크쇼를 직접 기획하고, 책을 쓰기도 하는 등 어떤 면에서 지금은 안식년이죠. 내 것을 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제 일을 즐기면서 실컷 쉬고 있어요. 굉장히 만족하면서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하고 있죠.
▲ '2015전주국제영화제' 참여 영화 KOZA 포스터, Client: GRAPHIC
Q. 직장 생활과 개인 스튜디오 운영 둘 다 해보신 입장에서, 직장 생활은 어떠셨나요?
회사에서는 학교 다닐 때 정말 공부 잘했던 친구들을 다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각자의 분야를 잘하는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나름의 재미가 있죠. 작은 회사에 다녔을 때는 디자이너들만 있었는데, 큰 회사에 가니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법학전문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더군요. 또 한편으로 조직 생활에서는 성과를 내야 하니까 빨리빨리 계획을 잡아서 일을 처리하고, 정해진 일의 워크플로우를 배우면서 얻을 수 있었던 점도 많았던 것 같네요. 대신 조직은 1년이 됐건, 10년이 됐건 언젠가는 제가 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 동안 얼마나 빨리 얻고 나오느냐가 중요하다 생각해요. 독립한 후 디자인 쪽에서 스스로 해야 힐 부분이 보이더군요. 6년째에 결국 직장을 나와서 새로운 일들을 하고 있어요.
Q. 회사 생활을 끝내고, 독립하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제 이름 자체가 브랜드죠. 그게 가장 다른 것 같아요. 조직에 들어가면 내가 아무리 성과를 냈어도 이후에 발을 빼버리면 제 능력을 알리기 힘들잖아요. ‘이젠 내 이름으로 살아야겠다!’라고 마음먹고 독립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멀티플레이어가 되더군요. 축구에 비유하면 스트라이커는 아니고, 그렇다고 수비도 아니고 조금은 애매할 수 있는 포지션이라 해야 할까(웃음). 패스 잘 해주다가 기회가 생기면 결정적인 골도 넣고, 제 나름의 개성과 스타일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 '더티 & 강쇼' 현장 토크쇼의 모습
Q. 토크쇼 진행, 출판 등 작업 활동을 보면 디자이너님 혼자가 아니라 다른 작가분들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혼자 공부해봤자 성적이 올라가지는 않더군요. 이번에 출간한 책도 9명의 디자이너가 참여해주었어요. 그래서 빨리 쓸 수 있기도 했어요. ‘혼자 속에 품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공개하겠다!’ 이러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어요. 저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크게 느끼기도 했어요. 이 사람들을 내가 뛰어넘는 게 아니라 친구가 되거나 같이 일을 해서 함께 성장하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내가 그들을 이기려 해도, 승산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죠.
Q. 디자이너로서 타 작가는 물론 대중과의 소통에 관심이 많으신 듯합니다.
저는 큐레이션(curation)이라는 표현을 좋아해요.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기획하고 관객에서 설명해주는 전달자 역할을 하는 큐레이터(curator)처럼 중간에서 연결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디자이너의 역할을 잘 표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을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씀으로써 디자이너의 시선을 보여줄 수 있어요. 저만의 관점과 시선이 있으니까,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거죠. 이번엔 글을 써보고 토크쇼를 해보고 다음엔 장사해볼까 생각도 하고 있어요(웃음).
▲그가 쓴 세 번째 책 '디자이너의 비밀': 디자인 토크쇼에서 만난 작가들과의 솔직한 이야기들
Q. 지금도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한데요?
사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계획’이에요. 디자이너라는 게 엄청나게 계획을 세우는 직업이거든요. 그런데 ‘유능한 작가가 되겠어!’, ‘정의로운 판사가 되겠어!’라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에요. 그래서 길게 계획을 세우진 않아요. 대신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플랜이 모여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봐요. ‘1년에 책은 한 권 내겠다.’, ‘이번 12월에는 해외여행을 가겠다.’ 이 정도랄까요? 지금은 저의 네 번째 책을 다른 작가들과 함께 집필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책이라기보다는 컨텐츠죠. 글을 쓴다는 하나의 활동인데, 이를 통해 어떤 문화와 다른 문화를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엮어 새로운 의미 있는 부분을 찾아내려 하고 있어요.
요즘 관심 있는 것이 요리 프로예요. 요리에는 ‘맛’이 있고 ‘멋’이 있어요. ‘ㅏ’와 ‘ㅓ’의 차이인데, 재미있는 건 그 작은 차이로 단어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죠. 정보도 고유의 맛이 있어요. 거기에 사람들이 먹게 하려면 멋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처럼 디자인은 사물을 이해하기 쉽게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도 먹게 할 수 있어요. 바로 큐레이팅을 하는 거죠. 큐레이터가 화가, 작가처럼 무엇인가를 직접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없다면 계획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조율하고 연결해주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태백 TAE BAEK 전시 포스터, 2015, Client: 태백시
Q. 학교에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본인의 모습은 어떤가요?
우리 사회에는 ‘넌 뭐가 되고 싶니?’, ‘꿈은 뭐고 전공은 뭐니’ 등 자신을 규정하도록 강요를 많이 당하는 문화가 존재해요. 저는 저를 규정하지 않는 것, 그런 문화에 대해 역으로 돌아서 가는 것을 즐겼어요. 굉장히 재밌거든요.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더군요. 무엇보다도 학생은 얼마 되지 않는 나이인데, 그렇게 빨리 자신을 정의 내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4학년 2학기까지 취업, 시험 커리큘럼에 도움이 안 되는 개인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폰트를 만들었죠. 취업하기 한 달 전까지 계속이요(웃음). 그래서 졸업작품전에서 제 개인 작업물을 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어요. 이걸 한 번 하고 나가면 후에 다른 일을 하다가도 제가 원하는 작업을 하더라도 돌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각했으니까, 지금은 잘못했더라도 한 번 경험을 해보니까 이 일은 나중에 해도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사실 요즘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잔머리도 좀 굴릴 줄 알고(웃음). 너무 ‘정도를 걸어가겠다.’ 이런 것 보다, 저에게는 샛길로 가고, 제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하는 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Q. 버거운 현실에서 우왕좌왕,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예술가에 대한 이미지는 화가, 조각가 등 순수 예술 쪽이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하지만 이젠 누구나 다 예술가가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서양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예술가의 기질이 강한 것 같더군요. 비현실적인 것을 계속 마음에 품고 있는 거죠. 요즘 취업, 창업 등이 힘든 것은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 학생들이 그쪽에 너무 사로잡혀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어요.
이제 우리 사회는 성장이 아니라 내리막길을 걱정해야 할 때잖아요. ‘꿈을 가져라.’ ‘언젠가 희망이 보일 거야.’ 이건 어른들의 너무 무책임한 말이 아닌가 싶어요. 당장 현실을 직시하는 게 필요해요. 더 취업하기 힘들고, 더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이걸 받아들이면 ‘아, 그렇구나, 쉬운 상황이 아니네?’ 이렇게 인식할 수 있죠. 그럼 저절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사실 어른들, 선배들은 이런 부분을 잘 알려주지 않죠.
현실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1%의 감성을 떨어뜨리듯, 예술가적 성향을 더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계속 공부를 해보니, 서양의 문화가 철학, 수학, 법률, 디자인 등에서 체계성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추상적인 것보다는 정확한 것을 추구하는 태도를 보였기에 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밑도 끝도 없이 ‘독창’, ‘희망’을 얘기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죠. 수학처럼 이유와 근거가 필요해요. 학생들이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거기에 자신만의 비율로 감성을 더할 수 있다면 답이 보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디자인. 절대 강요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자극적이라는 그의 말을 새삼 실감한다. 사소해 보이는 단어의 배치 하나에도 디자이너의 철저한 계산이 이면에 숨어 있다. '왜 하필 이 색깔을 넣었을까?', '왜 하필 이 동물을 심볼로 삼았을까?' 눈에 들어오는 어느 브랜드의 로고를 보며, 이전에는 의식하지 않았던, 이제는 새롭게 떠오르는 생각에 재미가 쏠쏠해진다. 그리고 현실을 냉철히 직시하고, 자기만의 비율로 예술적 감성을 더해보라는 조언에, 어느덧 고민이라는 뿌옇던 안개는 슬며시 옅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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