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닫기

전체메뉴

Quick Menu

Quick Menu 설정

※ 퀵메뉴 메뉴에 대한 사용자 설정을 위해 쿠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메뉴 체크 후 저장을 한 경우 쿠키 저장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FF Magazine] 매거진 Young CEO 유도연

  • 작성자 이민아
  • 작성일 10.06.23
  • 조회수 14466


 

한 블로거가 말했다. “즐겨보는 매거진 <맵스(maps)>의 대표 이사 유도연, 1983년생이라… 자극받는다. 멋있다.” 동의한다. 젊은이들이 즐겨 보는 개성 있는 패션 매거진의 대표 이사가 이제 겨우 20대 후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열에 아홉은 두뇌에 찌릿한 쇼크를 받을 것이고, 그 중 반 이상은 부러움과 동시에 묘한 질투를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어떤 행보를 거쳐 이렇게 젊은 나이에 ‘매거진 발행인’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네티즌 수사대’ 모드로 변신해 그의 행적을 뒤밟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도연에 대한 이해를 도울 키워드를 몇 가지 더 언급해보겠다. 우선 그는 국내 최대 패션 커뮤니티이자 웹진인 ‘무신사’ 창립 멤버이다. 그리고 온라인 콘텐츠 기획을 넘어 2007년 1월 스물네 살의 어린 나이로 <맵스>를 창간, 현재까지 운영해오고 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언론 매체학을 공부하고 있으며, 문지 문화원 사이 아카데미에서 ‘패션 매거진 이슈: 콘텐츠 그리고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펼치고 있다.

<맵스>에 대한 소개도 곁들여야겠다. ‘한국 최초의 스트리트 패션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으로 시작한 <맵스>. 하위문화와 스트리트 패션을 다루는 매거진으로서는 처음으로 당당하게 대형 서점에 입성한 ‘유가(有價)’ 매거진이다. 획기적인 레이아웃과 독창적인 콘텐츠를 자랑하는, CEO의 나이만큼이나 젊은 매거진이다.

타이틀 몇 글자만으로도 동시대를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자극을 주고, 부러움을 유발하는 국내 최연소 미디어 발행인 유도연을 만나 그의 앞서가는 행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FF : 스물여덟 살의 젊은 매거진 발행인,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 같아요.
유도연(이하 유) :그런가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사실 일부러라도 그런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해요.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안일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일을 잘 못하게 될 테니까요. 사실 저를 부러워 할 필요는 없어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이 일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거든요.
<맵스>의 대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를 대할 때 어려워해요. 그냥 '문화의 큰 흐름 속에 존재하는 사람, 그 문화를 즐기고 있는 사람' 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대해 주면 좋겠어요. 그래서 ‘유도연 대표’보다 ‘도연씨, 도연아’하고 불러주는 것을 더 좋아해요. 하지만 그와 관련한 딜레마도 있죠. 개인으로는 제가 대하기 쉬운 사람으로 소문이 나도 상관없어요. 그렇지만 저 때문에 실질적으로 일에 투입되는 직원들이 힘들어질 수 있게 되죠. 시작부터 굽히고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래서 사실 잡지를 발간하고 근 2년 동안은 좀 소심하게 지냈어요. 제 행동이 <맵스>의 이미지와 직결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FF : 한 회사의 대표라고 하기엔 솔직히 어린 나이잖아요. 나이가 핸디캡으로 작용하기도 했겠어요.
유 : 초반에는 어리다는 것이 단점이었어요. 지금은 그런 인식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실력’이라는 공식이 작용해요. 어린 대표가 만드는 잡지니까 실수도 많을 것이고, 실험적일 거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영업하기가 힘들었죠. 불이익도 여러 번 당하고, 사업상 미팅에서 대화에 끼어드는 것이 힘들었던 적도 많아요. ‘어린 대표’는 그게 참 안 좋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어린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맵스> 독자들과 교집합을 이룰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죠. 그게 제가 원하는 것이고요.

FF : 사실, 잡지가 처음 나왔을 때 ‘과연 얼마나 버틸지’ 걱정을 하긴 했어요.
유 : 만일 제가 잡지 만드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시작 한지 1년 반 정도 시점에서 이 일을 접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워낙 좋아하는 일이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게 된 것 같아요.

FF : 회사 밖에서는 또래와 비슷하게 지내죠? 일도 열심히, 노는 것도 열심히.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보기 좋아요.
유 : 오히려 저 스스로는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회사를 이끄는 대표라면 항상 비즈니스와 수익을 생각해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거든요. 일도 일이지만, 아직까지는 사람 냄새나는 것들이 좋아요. 솔직히 아이폰하고 타협하기도 진짜 힘들었어요. 아이폰 사용자 수가 70만 명을 넘었다고 하던데, 사람을 만나면 대화에 집중 못하고 아이폰만 ‘톡톡’ 건드리고 있는 모습을 봐요. 참 삭막하단 생각이 들어요.

 

FF :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매거진의 CEO가 되는 데에 영향을 준 것들이 분명 있을 텐데요.
유 : 중학교 때부터 패션에 대한 시선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누나가 네 명인데, 누나들이 그 당시 잘 나가는 패션 리더였죠. 10여 년 전에 누나들이 지금의 저처럼 옷을 입었어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누나 따라 빈티지 옷들을 사러 광장 시장에 다녔어요. 그 당시 광장 시장에 가면 외국 잡지를 구할 수 있었는데, 유럽과 일본의 잡지를 보며 ‘나도 이런 잡지를 만들어 봐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FF : 중학교 1학년은 보통 패션에 심각한 관심을 갖지 않기 마련인데, 신기하네요.
유 : 제가 연신내 출신이에요. 친구들이 소위 ‘건달 패션’을 뭣도 모르고 추종할 때, 저는 리바이스 빈티지 청바지에, 컨버스 화를 신었어요. 혼자 튀었죠. 누나들이 자꾸 저를 세뇌시켰어요. “진짜 멋있는 건 저런 게 아니야.” 하고 말하면서요. 그렇게 누나들의 영향을 받아 중·고등학교 시절 패션에 남다른 관심과 감각을 갖게 된 것 같아요.

FF : 그럼 대학에서도 ‘패션’을 전공했나요?
유 : 대학에서는 호텔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야간 자율 학습 빼먹고 매일 시장가서 옷을 사 입다 보니까 공부를 안 해서 대학은 지방으로 가게 되었죠. 호텔 경영학을 전공해 나중에 패션이 접목된 호텔, 그러니까 인테리어나 이벤트 운영 등에 늘 패션을 연계시키는 ‘패션 호텔’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FF : 대학 시절, 패션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은데.
유 : 우선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부터 할게요. 고등학교 때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에 눈을 떴어요. 그 당시는 천리안, 하이텔 시대였는데 일본의 ‘야후’ 같은 사이트를 뒤져서 경매로 쇼핑을 했어요. 배송비는 좀 들었지만, 실제적으로 물건 가격은 한국보다 훨씬 저렴했거든요. 일본에서 8만원이면 살 수 있는 신발이 한국에선 30만원 정도였어요. 그런 제품들을 온라인 경매로 낙찰 받아 구입한 후 다시 판매하고 그랬어요.
고등학교 시절에는 신발에 대한 관심이 과도했죠. 그런데 마침 취향이 저랑 비슷한 친구가 포털 사이트에 커뮤니티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프리챌에 ‘무신사’를 만들게 되었죠. 무신사는 ‘무진장 신발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에요. (웃음) 좋아하는 신발과 옷의 사진을 직접 찍어서 커뮤니티에 올려놓았는데, 한두 명씩 모인 회원수가 8000명을 넘게 되었어요. 압구정 도산 공원에서 커뮤니티 ‘정모’를 하기도 했죠. 회원들이 모여 서로의 옷과 신발을 사진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어요. 패션 매거진에 종종 등장하는 ‘스트리트 패션 섹션’과 흡사한 콘텐츠였어요. 그렇게 커뮤니티를 운영하다가 대학에 진학했던 시점에 커뮤니키를 넘어선 ‘무신사닷컴’을 만들었지요. 그래서 대학 시절 온통 무신사 닷컴 운영에 매달려 있었고요.

FF : 무신사닷컴이 단순한 동호회 사이트는 아니지 않나요? 웹진 느낌이 비교적 강했는데...
유 : 맞아요. 단순한 커뮤니티를 넘어서고 싶어 ‘닷컴’으로 독립한 거죠. 패션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것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머리를 좀 더 써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죠. 주변에 멋진 친구들을 섭외해 화보 촬영도 하고, 패션계 동향도 취재하고 그랬어요. 그때가 한참 스트리트 패션숍과 온라인 쇼핑몰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이어서 시기상 좋았던 것 같아요. 덕분에 의도치 않게 광고도 유치하게 됐고, 매출도 쑥쑥 올랐죠. 패션을 좋아하는 고등학생이 시작한 커뮤니티가 엄청난 성장을 이룬 거예요. 지금은 회원 수가 아마 50만 명 될 거예요. 저는 <맵스> 운영을 시점으로 무신사닷컴에서 발을 뺀 상태이고요.

FF : 그럼 ‘무신사’에서의 경험을 통해 콘텐츠 기획에서 제작, 마케팅, 광고까지, 매거진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된 것이라 볼 수 있겠네요.
유 : 그런데 매거진 제작은 웹기획이나 운영과는 참 많이 달랐어요. 더 어렵고, 더 정교하고, 더 체계적이었죠. 시행착오로 좌절도 많이 겪었어요. 아마 잡지 만드는 시스템을 미리 알았다면 덤비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무지’가 낳은 무모한 도전이었다고 할까요.
무엇보다도 준비가 많이 부족했죠. 제 성격이 일단 부딪혀보는 편이에요. 교정, 감리 등 매거진 제작을 위한 필수 단계에 대한 개념도 없이 그냥 대충 만들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출판 디자인 편집 프로그램인 인디자인을 다룰 수 있는 친구들을 뽑아서 취재도 시켰답니다. 딱 세 명이서 창간호를 만들었어요. 말도 안되는 인원이죠. 그때 함께한 친구들을 다시 만난다면 너무 고마워서 절이라도 하고 싶어요.

 
 

FF : 2007년 1월, <맵스> 창간호가 나왔죠. <맵스>를 만들게 되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인가요?
유 : 어렸을 적부터 매거진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어요. 또, 패션과 문화산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을 소개하는 매체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무신사 활동을 통해서 인맥을 쌓은 것이 큰 도움이 되었죠. 투자자를 만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큰돈은 아니지만 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일부 자금을 투자 받게 되었죠.

FF : 한간에는 ‘유도연은 갑부 집 아들이다’라는 소문도 돌았어요. 그렇다면 이 소문은 거짓이군요.
유 : 지금도 그런 얘기를 들어요. 제가 어릴 적부터 옷이며 신발을 많이 샀던 건 갑부 집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누나가 넷이나 되니까 매형들이 용돈을 잘 줘서 그런 거거든요. 지금도 넉넉하지는 않아요. 잡지 한 번 만드는 데 꽤 큰 돈이 들어가요. 창간 후 2년 동안은 적자를 면하지 못했고요. 없는 살림에 어머니 앞에서 무릎 꿇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웃음)

FF : 어려웠지만 즐겁게 만들어 온 <맵스>가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길 원하나요?
유 : <맵스>를 만드는 목적 가운데 하나가 문화 요소를 상대화시키는 것이에요. 현재 문화는 메인스트림과 인디 혹은 언더그라운드라는 상하 개념으로 구분되어 있잖아요. 저는 홍대 클럽에서 관객 3명을 두고 노래하는 친구들이나, 드림콘서트에서 4만 명 관객 앞에서 노래하는 친구들 모두 같은 뮤지션이라고 외치고 싶었어요. 제가 만드는 매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요. <맵스>가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를 폭넓게 오갈 수 있는 매체였으면 좋겠어요.
그와 관련한 성과로 ‘모델 기용’을 들 수 있겠는데요. <맵스>는 전문 모델보다는 모델 지망생 혹은 비전문 모델들을 많이 캐스팅해서 썼어요. 그래서 초반에 화보에 등장했던 친구들이 지금은 매니지먼트에 소속된 전문 모델이 된 경우가 많아요. 그 친구들을 만나면 “형, 저 <맵스>덕 많이 봤어요.”라며 엄청 고마워해요.

FF : <맵스>는 현재 미디어 시장에서 어떤 포지션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하나요?
유 : 저는 1등이 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하고 싶지 않아요. 패션과 문화의 첨단에서 트렌드를 이끄는 건 이미 다른 잡지들이 하고 있고, 그들이 계속 그 포지션을 지켰으면 해요. <맵스>는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들과 트렌드세터들을 이끌었으면 해요. 하위문화라고 해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관심을 갖고 문화의 본질적인 부분에 계속 힘을 실어주고 싶다는 거예요. 보통 매거진은 수익 구조상 브랜드나 광고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맵스>는 그런 매커니즘을 거스를 수 있는 독특한 매거진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매체의 기자들은 <맵스>를 ‘낭만’이라고 이야기해요. 지면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걸 모두 보여주니까요. 자신들은 하지 못하는 걸 하고 있어 부럽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앞으로도 계속 브랜드에 타협하지 않고 더 고집 부려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웃음)

 
 

FF :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들었어요.
유 : 언론 매체 전공 4학기 차예요.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단순히 ‘매거진’을 좋아하거나 즐기는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한 글자라도 더 배우자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지원했지요. 학문적인 깊이보다는 주변 사람들을 통한 배움이 목적이에요. 이렇게 얻은 배움을 친구들과 공유하면 여럿이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요. 역시나 대학원에서도 과의 전 학생을 통틀어 남자 중에는 제가 젤 어려요. (웃음)

FF : 문지 문화원 사이 아카데미에서 강의 중 이라면서요? 강의는 체질에 맞나요?
유 : 패션 매거진과 사람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는데, 강의라기보다는 그냥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하고 이야기 나눈다고 보시면 되요. 사람들 만나 이야기하는 게 엄청 재미있어요. 전문가로서의 지식을 알리기보다는, 매거진 발행을 통해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며 ‘생활 밀착형 강의’를 하는 중이죠. 일주일에 한 번씩, 매주 월요일에 하고 있어요. 총 8주의 강의인데 곧 종강을 앞두고 있고요.

FF : <맵스> 없는 20대를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유 : 없어요. 상상 못하죠. 아니, 할 수가 없어요. 제가 만약 단순히 비즈니스만을 위해서 사업을 시작했다면 그런 상상도 가능할 거예요. 왜냐하면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항상 기회비용이라든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두잖아요. 근데 저는 저 자체가 <맵스>이고, 제 생활 자체가 문화이고 패션이라고 늘 인식하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는 것 같아요.

 

FF : 이제 몇 년 후면 30대로 접어드네요. 30대에도 무언가를 벌일 계획이 있나요?
유 :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저는 계속 <맵스>를 만들 거예요. 이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금껏 몸담아 온 패션과 문화 속에 있을 것이란 사실은 확신할 수 있어요.

FF : 범상치 않은 10대와 20대의 스토리, 놀랍고 재밌네요. 만일 이 스토리를 영화로 만든다면 주인공 역할은 누가 맡으면 좋을까요?
유 : 아, 재미있는 질문인데……. 잘 모르겠어요. 누가 있지?

글 / 임유미(FF)
사진 / 나승(nathing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