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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CEO토크

동문 CEO - (주)KNBCOS 주은규 대표를 만나다 / 행정학과 73학번

  • 작성자 박차현
  • 작성일 17.08.25
  • 조회수 13781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73학번. 어느 순간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행시에서 기업 입사로 방향을 틀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스펙을 요구하지 않았던 당시에도 취업난은 있었다. 입사방법은 오직 하나 공채뿐. 시험에 전력투구했다. 갖은 노력 끝에 1983년, 엘지화학(현 엘지생활건강)에 입사했다. 20년동안 열심히 일한 그는 2003년 ‘나의 일’을 찾아 독립했다. (주)KNBCOS 주은규 대표의 이야기다.

 

그가 부장이 되었을 때, 입사 동기들 중 10% 정도가 곁에 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대부분이 모두 회사를 떠났다. 학벌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기업에서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것은 남과 다른 경쟁력이었다. 그의 경쟁력은 업무 관련 전문성, 실력, 근면함, 원활한 대인관계 그리고 30대를 방불케 하는 체력이었다. 

 

인생 전반전, ‘엘지생활건강’ 영업부문장으로 마무리
(주)KNBCOS는 주은규 대표와 직원 1명으로 2003년 시작한 화장품 유통 전문회사다. 등 국내외 유명 화장품을 롯데·신라 등 대부분의 면세점과 <롯데백화점>에 입점시켜 유통하고 있다. 본사는 서울 양평동에 있고, 전국 각지에 50여 개의 매장이 있다. 약 300명(현장 직원 포함)에 달하는 직원을 품은 중견 기업으로, 연매출 1,200억(2016년 기준) 원에 달한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가 거쳤던 젊은 시절은 어떠했을까.

“대학시절을 포함해 20대는 모두 시험을 준비하며 보냈어요. 행정고시에서 입사시험으로 넘어갔죠. 지금 취업이 어렵다고 하지만 그때도 취업난이 대단했어요. 지금처럼 다양한 재능을 인정하는 시대도 아니었죠.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공채시험뿐이었어요. 20대 내내 시험 준비로 바빴어요. 갖은 노력 끝에 엘지화학에 입사했죠.”

그는 엘지생활건강 화장품 사업부 창립멤버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화장품 업계는 아모레, 쥬단학(한국화장품), 쥬리아 등이 경쟁하고 있었다. 대기업이긴 했지만 화장품 사업 분야에서 엘지는 후발주자였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은 당연할 터. 그의 말에 따르면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업계에 자리를 잡아갔다. 현재 엘지생활건강은 화장품은 물론 생활용품부문, 음료부문으로 나뉠 정도로 성장했다.

“엘지에 들어가서 정말 노력 많이 했어요. 다들 명문대 출신이었거든요. 그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건 무얼까. 10배는 더 노력했어요. 내게 맡겨진 그 무엇도 허투루 하지 않았어요. 스트레스도 엄청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았죠. 살아남고 싶었으니까. 아마 우리 후배들은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잘 될 거예요. 생존하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해요. 입사하면 같은 출발선에 선 거예요. 콤플렉스에 휘둘리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노력해야 해요.”

열심히 공부해서 대기업에 입사했고, 20년간 청춘을 바쳐 일했다. 전투적으로 일했고, 엘지생활건강 영업부문장 자리까지 올랐다.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동기들보다 더 빨리 승진하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하루하루 노력했다. 그렇게 얻은 달콤한 열매가 막 손에 들어오던 차, 그는 ‘내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던 회사생활 중 가장 보람을 만끽할 위치에 올랐을 때 그만두기로 한 것이다.

“원하는 기업에 입사하면 끝이라고요? 그 순간부터 더 치열한 경쟁이 시작됩니다. 엘지는 내게 최고의 회사였어요. 내 인생의 토대를 그곳에서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1997년 IMF가 휘몰아치면서 평생고용이라는 개념이 사라졌어요.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하루아침에 퇴사하는 걸 보며 나를 지킬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일을 찾은 동기가 됐죠.”

 

인생 2막, 화장품 유통 전문 회사 CEO
한 회사에서 이십여 년 동안 일하며 ‘화장품 업계’ 전문가가 된 그는 인생 2막을 ‘화장품’과 함께 하겠다고 결심했다. 엘지에서 영업부문장이 될 때까지 다양한 업무를 했기에 자신 있었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지만, 초창기 몇 해 동안은 수익이 전혀 없었다. 회사 창립 후 두세 번의 큰 고비가 이어졌다. 사회생활로 단련한 뚝심으로 버티며 (주)KNBCOS는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벌써 15년 전이네요. 2003년 창업할 때 두 가지를 포인트로 잡았어요. 화장품, 그리고 면세점 채널.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엘지는 나를 만들어준 어머니 같은 회사에요. 지금도 회사 사람들, 후배들과 돈독하게 지내고 있어요. 또 엘지는 내가 여기까지 사업을 끌어오는 버팀목이 되어주었죠. 내 회사도 성장하고 있어 기쁘지만, 내 청춘을 쏟아 부은 엘지가 화장품으로 성공한 것 역시 기쁩니다.”

진입 장벽이 높은 면세점 채널을 선택한 건 ‘희소성’ 때문이었다. 면세점 유치를 위해 대기업들이 사활을 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물론, 수익이 좋은 반면 위험도 큰 사업이다. 면세점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위치와 명품 브랜드가 필수 조건이다. 인테리어와 편의시설 등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국내 허가 기간은 5년에 불과해 리스크가 크다. 그럼에도 면세점 화장품 시장은 매년 상승곡성을 그리며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면세점은 다양한 상품을 갖추고 있어요. 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가 드물죠. 게다가 가격 경쟁력까지 있으니 매출이 올라갈 수 밖에 없어요.”

주은규 대표의 구상이 사업적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한 건 일본 화장품 브랜드 <가네보>를 한국 면세점에 진출시키면서 부터다. 한국 면세점에 <가네보>가 론칭하기 전이었다. 이 브랜드라면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그렇게 하나 둘 브랜드와 입점 면세점이 늘어갔다.

그는 “브랜드 파워가 강하면 국경은 없어진다”며 “일본 화장품 브랜드 중 차근차근 성장한 것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며 현장 분위기를 파악한다.

 

“창업 원하는 후배들, 중국이나 일본에서 도전해 보길! 언어와 그 나라의 문화를 잘 안다면 승산있다고 봐요.”

“앞으로 아시아 한·중·일은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일 거예요. 창업을 원하는 후배들은 중국이나 일본에서 도전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것이 먼저겠죠. 나 역시 일본에 현지법인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사업할 계획이 있어요. 우리나라 백화점이 외국 곳곳에서 선전하길 바랍니다. 그곳의 백화점은 유통은 물론 ‘대한민국’을 알리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후배들에게 겉으로 나타나는 것만 보지 말고, 그 안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파악하려 노력하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결론은 직접 몸으로 부딪히라는 겁니다.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될 때까지 부딪히길 바랍니다. 그런 과정들이 결국은 각자의 인생을 만들어 가니까요. 머리로만 될까 안 될까, 고민하고 결정하지 말고 일단은 부딪혀 보라는 얘기에요. 나는 지금도 하고 싶은 게 많아요.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이죠. 나보다 훨씬 젊은 우리 후배들은 더 적극적으로 개척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