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정지섭기자] 서울 세검정에서 정릉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 육교 밑 담벼락. 화장실로 착각하기 쉬운 문
옆에 조그맣게 붙은 ‘절벽’ 간판. 그 문을 열고 나서야 꽤 넓은 실내 포장마차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절벽’은 1980년 문을 열었다. 바로
뒤에 북한산 암벽이 있어 ‘절벽’이라지만, 방 여섯이 깊게 이어진 모습은 ‘동굴’ 같다.
튀는 겉만큼이나 유명한 건 바로
‘손님’들. 1995년 배우 김희선이 한 TV프로에 ‘자주 가는 맛집’으로 소개하면서 ‘유명인들의 아지트’라는 사실이 ‘폭로’됐다. “신인들이
오면 뜬다”는 말까지 돌면서 새내기 연기자·방송인들도 몰렸다.
이웃 국민대·상명대 학생, 경복고·경기상고 출신 정치인·기업인들도
즐겨 찾는다. 인터넷을 보고 찾아온 ‘외지인’은 물론, 멀지 않은 청와대에서도 온다니, 이쯤 되면 ‘명물’을 넘어 ‘명문’인 셈. 60대 초반
여주인과 ‘이모’ 두 명이 가게를 꾸린다. 돼지불고기·대합탕 등 메뉴는 평범하지만, 케첩을 듬뿍 발라주는 달걀프라이는 유명하다.
‘이모’ 정진숙씨는 “개그맨 신동엽과 배우 정보석·김찬우 등이 친구들과 자주 술잔을 기울인다”며
“이름을 말할 순 없지만 정치인·연예인·작가들도 골고루 본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 이 곳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땅 주인이
매각했기 때문. 오는 11일까지만 이 자리에서 영업하고, 이후 길 건너편으로 옮긴다. 벽을 새까맣게 뒤덮은 낙서도 ‘역사’가 되는
것이다.
‘절벽이 없어진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요즘 손님이 부쩍 늘었다. ‘피크타임’인 밤 10~12시에는 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 원래 5일 문을 닫으려 했지만, 몰리는 옛 단골들 발걸음에 엿새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