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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진의 오랜 연구와 노력, 책으로 피어나다

  • 작성자 조영문
  • 작성일 08.12.18
  • 조회수 17671

책에는 저자의 생각과 철학,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저자의 냉철한 통찰력과 풍부한 지식, 따뜻한 마음을 골고루 엿볼 수 있는 책읽기는, 그래서 행복하다. 박종기 부총장, 김기원 교수(산림자연학과), 신대철 교수(국문학과) 등 우리 대학 교수진의 오랜 연구와 노력이 담겨 출간된 책, 그 숭고한 삶의 결정체를 소개한다.

| 숲은 문화의 터전
숲이 들려준 이야기

숲에 관한 책들은 대개 생태학이나 숲 감상으로 심금을 사로잡으려 한다. 하지만 중견 산림학자이자 실천가인 김기원 교수의 <숲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런 책들에서 맛보지 못하는 색다른 간접 체험의 공간이다. 김기원 지음 / 효형출판 펴냄

이 책에서는 숲이 신화, 예술, 문학, 철학과 교유한다. ‘문화 없이 숲 없고 숲 없이 문화 없다’고 한 오스트리아 산림학자 요셉 웨셀리(Joseph Wessely)의 말이 단초가 되었다.
숲은 문화의 산실이다. 이를테면 나무는 신이고 숲은 신전이다. 나무가 악기가 되면 숲은 콘서트홀이 된다. 나무가 미술이면 숲은 미술관이다. 나무가 시면 숲은 소설이 된다. 세계의 수많은 신화는 공교롭게도 나무와 숲에서 시작된다. 단군왕검의 신단수(神檀樹), 동양의 우주수 뽕나무, 북유럽 신화에서 우주를 다스리는 지혜의 나무 이그드라실, 아리안 족이 숭앙했던 참나무, 물푸레나무에서 인간이 창조됐다는 북미 대륙의 원주민 신화, 그리스·로마 신화의 숲이 그렇듯이. 책은 우리가 숲을 버리면 숲도 우리를 버리고, 숲의 위기는 문화의 위기이자 인간 삶의 위기라고 일침을 놓는다. 인류는 창조주의 가르침이 있는 에덴동산 숲과, 나무 곁에서 득도와 해탈을 한 부처의 지혜의 가르침이 있는 룸비니 동산 숲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저자의 마지막 말이다. 겨울의 초입, 숲의 소리 없는 가르침을 들으며 일과 휴식의 경계를 넘나들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 바이칼 호수 건너 머나먼 곳을 꿈꾸다
바이칼 키스

민족의 분단 상황과 그 극복 의지를 구체적인 현장체험을 통해 심화시킨 시집 <바이칼키스>.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노년의 깊어진 눈으로 우리 민족의 발자취가 새겨진 풍경들 속에 깊은 생명감을 부여하고 있다. 신대철 지음 / 문학과지성 펴냄

<바이칼 키스>는 신대철 시인의 네 번째 시집으로, 2008 김달진 문학상, 제8회 지훈상에 빛나는 작품이다.  총 2부로 된 내용 중 l부는 민족의 원형 회복을 위해 바이칼 호수에 바쳐진 시들이고, 2부는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백두대간을 동반한 시들이다. 시인이 안식년을 이용해 몽고 초원과 바이칼 호를 오가며 사는 동안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실한 만남을 뼛속 깊이 체험했고, 그 체험을 고스란히 시로 완성했다. 신대철 교수는 백두산 천지와 바이칼 호수를 융화시켜 민족의 비극적인 현실을 극복한, 민족의 원형적 모습을 복원시키고자 했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광활한 대평원, 초원과 황야를 통해 우리 민족이 잃어버린 대륙적 기질과 상상력을 일깨우고 있다. 도시의 삶과는 완벽히 동떨어진 자연 속에서 사는 이들을 만나며 시인은 자연과 사람이 함께 이루어낸 삶의 모습을 그려 보여준다. 그의 시적 특징 중 하나는 한 편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서사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인데, 이번 시집에서도 그러한 특징이 어김없이 발휘되었다. 오랜 침묵과 방황 속에서 시적 화자가 조우하게 되는, 서로 다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과의 우연한 만남이 이야기하듯 자유로운 운율 속에 펼쳐진다.

| 살아 있는 역사 읽기
새로 쓴 5백년 고려사

<5백년 고려사>가 고려시대 문화 장르를 상당 부분 보강해 10년 만에 개정판으로 나왔다. <새로 쓴 5백년 고려사>는 고려왕조의 역사와 문화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박종기 지음 / 푸른역사 펴냄

고려사 연구 최고 권위자인 박종기 부총장이 펴낸 <새로 쓴 5백년 고려사>는 고려사 개설서로서 독보적인 지위를 지니며 지난 10년간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은 <5백년 고려사>(푸른역사, 1999)의 개정판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초판과 마찬가지로 고려왕조의 특성으로 ‘다원구조’ 혹은 ‘벌집구조’를 제시했다. 박 부총장에 의하면 다원사회는 정치와 사회 부분에서 “개방성과 역동성, 문화와 사상에서 다양성과 통일성을 특징”으로 하며 구체적으로는 “국적과 종족을 가리지 않고 관료로 등용했다든가, 어느 왕조보다 하층민이 활발하게 신분 이동을 했으며, 불교, 유교, 도교, 풍수지리, 도참사상 등의 다양한 사상과 문화를 용인하고 공존해온 점을 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사를 ‘죽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와 연결된 살아 움직이는 과거에 대한 역사연구’라는 일관된 관점 속에서 서술했다는 점이 특징.  삼국 및 조선왕조사와의 깊이 있는 비교를 통해 고려사의 특성과 그 형성, 변동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 역시 책의 가치를 높인다. 나아가 박 부총장은 이런 점에서 “고려왕조는 글로벌 시대를 사는 지금의 우리 사회에 매우 중요한 역사자산이 된다”고 덧붙였다.

출처 : 국민대학교 소식지 '다른생각 다른미래' 1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