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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조선왕조실록’ 일궈낸 국사편찬위 박한남·임천환씨

  • 작성자 장상수
  • 작성일 06.01.02
  • 조회수 25653

[한겨레 2006-01-01 21:00]

국사편찬위원회 박한남(49) 연구관과 임천환 연구원(42)에게 2005년은 정말 뜻깊은 한해였다. <조선왕조실록>의 원문과 한글 번역본 인터넷 서비스를 이룬 까닭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 국민들이 <대장금>이나 <여인천하> 같은 역사드라마를 보다가 “정말 그랬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긴다면 ‘인터넷 조선왕조실록 온라인서비스’(sillok.history.go.kr)에 들어가 바로 내용을 확인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12월22일부터 시작된 이 서비스는 2004년 6월 “인터넷에서 조선왕조실록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이만열 국사편찬위원장의 제안이 계기가 됐다. 그 뒤 국무총리실 산하 복권위원회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았고, 1년6개월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다.

그 간의 과정은 고생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통치기록을 낱낱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의 분량이 워낙 방대한 데다, 한글 번역본과 디지털본(시디)의 저작권이 민간업체에 귀속돼 있어 일은 꼬여만 갔다. 불운한 일들도 이어졌다. 2004년 9월과 2005년 6월에 박 연구관과 임 연구원이 교통사고를 당해 각각 3개월과 3주를 병실에서 보내야 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지병을 앓고 있던 박 연구관의 남편이 중환자실 신세를 졌다.

‘디지털 사관들’ 1년6개월만에 불가능을 현실로 고려사 등도 도전 의욕…“예산배정 왜 않죠?”

하지만 두 사람은 조선시대 사관의 자세로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정말 힘들었어요.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기안서를 들고 문화재청과 기획예산처를 향해 뛰었고,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등을 좇아다녀야 했어요. 짬이 나면 실록과 씨름하며 원문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았죠. 입원 중에도 사무실에 나와 일을 해야 했고요.” 박 연구관의 회고다.

결국 끈질긴 설득으로 지난해 복권위원회로부터 8억7400만원의 지원금을 따냈고, 나중에 불거질 수 있는 저작권 문제도 해결했다.

박 연구관은 “제대로 된 역사를 많은 국민에게 알리려면 실록의 인터넷 서비스부터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어깨를 짖눌렀다”며 “특히 요즘처럼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교과서 같이 역사 왜곡이 심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반박논리를 개발하려면 근거가 되는 사료 정리와 보존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된 지 열흘도 채 안됐지만, 반응은 벌써부터 뜨겁다. 실록의 원문과 한글 번역본의 동시 검색과 열람이 가능하고, 세종실록 오례편과 광해군일기는 이미지까지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에는 “고맙다” “수고했다”는 칭찬들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의미 있는 사업이 내년 이후를 기약할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다. 올해까지는 4억5600만원의 복권기금 예산이 책정돼 누락본의 삽입과 서비스 보완 등이 가능하지만, 당장 2007년부터는 예산이 배정돼 있지 않은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교육부 소관이라 복권기금 혜택을 계속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교육부 예산을 배정받는 일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록뿐 아니라 승정원일기, 삼국사기, 고려사, 경국대전 등 기본 사료들도 원문과 한글 번역본이 온라인으로 서비스되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임 연구원은 “정부가 황우석 교수 연구에는 수백억원을 지원하면서도 전통문화 유산의 과학적 보존에 대한 지원은 너무 인색하다”며 “사료 보존과 보급 시스템 구축이야말로 ‘국익’을 위한 일인데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