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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인! 국민인!!

열정적인 삶을 사는 것이 성공입니다! / 금속공예가 이상구(생활미술·80졸) 동문

  • 작성자 이소연
  • 작성일 06.04.07
  • 조회수 24222

용기…무한한 가능성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것을 행하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우리는 좋은 직장에서 많은 월급을 받아도 항상 피곤하고 무기력하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모르거나 원하는 것이 있더라도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상구 동문은 그런 이들에게 말한다. “용기를 가지세요. 진정 원하는 것을 온 몸으로 원하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상구 동문은 1980년에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생활미술학과는 현재 금속공예와 도자공예로 나뉘었다.) 그 당시 금속공예는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못했고 전공하는 사람도 드물었기 때문에 이상구 동문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진출할 수 있는 길은 고작해야 교사나 예술가뿐이었다. “친구들은 내심 교사나 직장인이 되고 싶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안정적인 길을 걷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이상구 동문은 고심 끝에 공방을 차리기로 결심했다. 예술가의 길에 접어들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저도 일반적인 직장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기도 했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 성공한다 해도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상구 동문은 졸업하기 직전인 1979년 친구 2명과 함께 공방 ‘아르누보’를 설립했다. 그리고 그는 다짐을 했다. 진정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작품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의 뒤에는 김승희(금속공예) 교수가 있었다. “김승희 교수는 인생의 스승이십니다. 그분은 제가 자만했던 시절 진정한 예술의 의미를 알려주셨습니다.” 김승희 교수의 영향은 지금의 그가 있도록 했다. 지금도 작업실에 김승희 교수의 작품을 걸어놓고 보면서 ‘나를 위한 작품이 아닌, 남을 위한 작품을 만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작품에 임한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공방 ‘아르누보’를 설립했지만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마음 놓고 작품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그는 1983년 동업하던 동료들과 헤어져 북한산 기슭으로 들어와 규모가 작은 개인공방을 설립한다. 유난히 자연을 좋아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런 자연사랑은 그의 예술성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중학교까지 충청도 서산에서 자랐다는 이상구 동문은 미술을 안했으면 원예를 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어렸을 적부터 개천에서 놀고, 들판에서 뒹굴며 놀았습니다. 계속 들길을 따라 걷다가 집을 잃은 적도 있으니까 아마 그때부터 자연인의 끼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상구 동문은 북한산 끝자락에 손수 공방을 만들었다. 자연을 좋아하는 것에 걸맞게 오른쪽 창에는 북한산의 경관을 끌어들였고 왼쪽 창으로는 꽃필 준비를 마친 수선화들이 잘 보이게 심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돼지나 소를 키우는 축사였습니다. 10평으로 시작해 지금의 모습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나갔죠.” 자금이 없어 부득이하게 직접 공방을 만들어야 했지만 그 덕에 운치 있는 공방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 1997년 공방을 ‘카퍼하우스’로 개명하고 공방과 카페, 그리고 전시장까지 접목한 문화공간으로 창조해냈다. “처음에는 작품을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했는데, 사람들이 차 마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해서 팔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카페가 됐습니다.” 카페를 병행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은 더욱 잦아들었다. 입소문이 퍼져 분위기 있는 명소로 호응을 얻은 것이다. 때문에 이상구 동문은 찾아오는 손님들이 자신의 작품과 함께 문화 시설을 즐기게 하기 위해 수선화축제와 문화공연을 준비해 손님을 맞는다.

사람들이 동감할 수 있는 작품
작품을 소개해 달라는 말을 하자 “카페 전부가 자신의 작품”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제로 카페를 이루고 있는 하나하나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의자, 스탠드, 책상에서 분수 그리고 가습기까지 그의 작품의 활동 영역은 다양하다. 일상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그가 즐겨 만드는 작품이다.
“저는 개인 작품전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나만의 작품을 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다른 사람을 위한 작품을 하고 싶습니다.” 때문에 작품을 제작하는 방법도 독특하다. “작품을 만들 때는 기능을 먼저 생각합니다. 추상적인 것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거부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미적인 부분을 첨가하죠.” 쓰는 사람이 제일 편한 금속작품을 만드는 것에 알맞는 제작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기능과 실용성을 겸비하고 그것에 미를 입히니 쓰는 사람을 위한 그의 배려가 작품 곳곳에 묻어난다.

 하지만 기능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작품의 예술성이 감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의견에 이상구 동문은 “예전에는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괴기한 것들을 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고 모두 동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기능에도 철학 같은 것들이 있어서 굳이 금속소재의 한정된 범위에서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금속소재가 가지고 있는 기능의 범위를 넓히면 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금속가습기다. 금속으로 가습기를 만드는 것이 상상이 안되지만 실제로 기능의 범위를 넓혀 아름다운 가습기를 탄생시켰다.

 

목표를 이루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상구 동문은 아직도 갈 길이 바쁘다. 할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금속공예에 대해 무지한 부분이 많지 않습니까? 때문에 금속으로 만들어지는 일상용품에 미적부분을 첨가하는 것이 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다할 목표를 이룬 것이 없다고 겸손해 하는 이상구 동문은 카페가 흑자로 돌아서는 것도 목표 중 하나라고 대답했다. “카페 오픈 이후 흑자인 적이 몇 번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합니다. 제가 원하는 일을 하니까요.” 대답을 하는 이상구 동문의 모습에서 행복이 보였다. “성공은 특별하지 않습니다. 원하는 것을 온몸으로 부딪쳐 실행하는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성공적인 삶이죠. 남들이 다 원한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가지려고 한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 없다면 성공도 없겠죠.” 카페운영이 힘들기는 하지만 이상구 동문에게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잡은 목표를 이루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갖되, 버려라!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끈기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는 이상구 동문은 “자기 자신을 갖되, 버리라”고 충고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향하는 것은 좋지만 노력할 때는 혹독하게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위에 공방을 하다가 좌절하는 후배들을 많이 봅니다. 이것은 의지와 노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모든 대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같습니다.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이상구 동문은 지금까지 만나왔던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물들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이렇다할 큰 업적을 이뤄서 가지는 자신감보다는 자신의 삶에 스스로 만족하고 인생을 즐기는 모습이 부럽기까지 했다. 자,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가 지금 무엇을 향해 가는 길인지.



<출처_국민대 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