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닫기

전체메뉴

Quick Menu

Quick Menu 설정

※ 퀵메뉴 메뉴에 대한 사용자 설정을 위해 쿠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메뉴 체크 후 저장을 한 경우 쿠키 저장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국민인! 국민인!!

“휴대폰 지팡이는 탑골공원서 떠올린 작품” / 성정기 (공디 97) 동문

  • 작성자 조영문
  • 작성일 08.07.08
  • 조회수 15182

미국 디자인 회사에 '해외 취업'해 국제 디자인상을 여러 차례 받으면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산업 디자이너 성정기(37·사진)씨가 최근 디자인진흥원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그는 한국디자인진흥원이 선정한 올해의 차세대 디자인 리더이기도 하다.

원래 그는 해외 취업은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던 '토종'이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건 2001년 서울서 열린 디자인 관련 국제회의에서의 작은 인연이었다. 발표를 마치고 자료를 정리하던 그에게 백발의 외국인이 다가왔다. “처음엔 인자한 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어요. '너 혼자 아이디어를 낸 거냐'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느냐' 등의 질문을 하더군요. 영어는 서툴렀지만 반가운 마음에 최선을 다해서 답해 줬어요. 제 디자인에 관심 가져준 첫 외국인이었거든요.”

그에게 명함을 건넨 외국인은 “언제든 연락하라”란 말을 남기고 헤어졌다. 성씨는 명함을 지갑에 넣어뒀다. “'내 작품에 관심 가져준 외국인도 있었다'는 의미로 지갑에 간직했을 뿐 다른 뜻은 없었어요.”

그런데 2004년 어느 날 그는 디자인 잡지에서 바로 그 '인자한 할아버지' 사진을 발견했다. '미국 유력 디자인 컨설팅 회사인 아이디오(IDEO)의 창업자 빌 모그리지'라고 소개돼 있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까 확신이 없었지만 용기를 내어 다음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해외 택배로 보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죠. 될지 안 될지 몰라도 그냥 부닥쳐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며칠 뒤 아이디오의 인사 담당자가 전화를 걸어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들어 채용하겠다”는 소식을 전했다. 디자인진흥원 관계자는 “아이디오에 들어가려면 150 대 1 정도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며, 몇 시간에 걸쳐 심층 인터뷰를 하는 게 기본”이라며 성씨의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라고 귀띔했다. 영어 개인교습과 아파트를 제공하는 파격적 조건으로 보스턴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회사에 도착하는 날 로비에 태극기를 걸어주기까지 했다.

성씨의 디자인은 일상생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많다. 특히 구로공단에서 재봉 일을 해온 홀어머니가 많은 영감을 줬다. “디지털 제품들은 점점 작아지고 기능도 많아지는데 어머니는 오히려 불편해 하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냈어요.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 MP3 등을 하나의 기계로 분리해 필요할 때마다 골라 쓸 수 있도록 고안했죠. 노인들이 많이 쓰는 지팡이와 휴대전화를 결합한 제품도 있어요.”

'휴대전화 지팡이'는 독일 IF국제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받았다. “탑골공원에 직접 가서 노인들을 관찰해 보니 지팡이가 필수품이더군요. 저도 하나 사서 들고 다녀 보니, 여기에 휴대전화를 결합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샤워 도중 샴푸와 린스를 착각했던 경험도 응용, 용기 표면을 다르게 한 작품도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디자인이란 생활을 편리하고 즐겁게 해줌으로써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가 디자인에 뛰어들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공대에 입학했지만 디자인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어 27세에 다시 국민대 공업디자인과에 입학했다. LG전자 국제 디자인 공모전에서 금상을 받고 LG에 입사했지만 곧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방향을 모색하던 중 아이디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지금은 원하는 제품 디자인에 집중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루나(LUNAR)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요즘엔 개발도상국 아이들을 돕는 공익 디자인과 환경 디자인에 눈이 많이 간다고 한다. 엽서 한쪽 끝에 볼펜 심을 붙인 디자인도 고안했다. “사막을 여행하다 만난 유목민 소녀가 돈도 먹을 것도 아닌, 공부하기 위한 펜을 가져가기에 이런 디자인을 생각하게 됐어요.”

해외 취업을 꿈꾸는 한국인 디자이너에게 그는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디자이너를 뽑는 거지 영어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게 아닙니다. 실력이 있으면 두려울 게 없어요. 도전해 보세요.”

출처 : 중앙일보 기사입력 2008-07-08 00:58 |최종수정2008-07-08 09:49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5&aid=000196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