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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독립 8년째 “냉장고 없이도 잘 삽니다” / 윤호섭(시디) 명예교수

  • 작성자 조영문
  • 작성일 08.10.06
  • 조회수 16264

ㆍ나무처럼 사는 사람-국민대 교수 윤호섭

8년 전 그는 집에 있던 냉장고를 없앴다. 에어컨이나 TV는 안 쓸 때 끌 수라도 있지만 냉장고는 24시간 켜둬야 하는, 전기를 많이 쓰는 제품이어서다. 굶는 사람도 있는데 냉장고에 음식을 쌓아두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싶었다.

명함은 각종 홍보물이나 전단지의 여백을 잘라 직접 만든다. 가운데에 초록색으로 ‘greencanvas.com’이라고 쓰인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인다. 콩으로 만든 식물성 잉크(soy ink)로 새긴 글씨다.

그의 작업실에는 비닐 테이프로 만든 공이 하나 있다. 각종 포장을 뜯을 때 나오는 테이프를 버리기가 아까워 재활용한 것이다. 딱딱하긴 하지만 무료할 때 동료나 친구와 던지기 놀이 정도는 할 수 있을 듯했다. 그는 “몇 주만 모으면 금방 공 하나가 만들어집니다”라며 해보기를 권했다. 자가용 승용차 대신 자전거와 대중교통만 이용하는 것은 물론이다.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윤호섭 명예교수(65)가 사는 모습이다. 국민대 조형대학 및 디자인대학원에서 디자인에 생태·환경 문제를 접목한 그린디자인과 환경예술을 가르치고 있는 윤 교수는 자신이 가르치는 것을 몸으로도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그린디자인 전도사’로 통한다. 그렇다고 환경단체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어느 곳에 소속되기보다는 자유롭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윤 교수가 환경문제에 눈을 뜬 것은 1991년이라고 한다.

“설악산에서 열린 세계잼버리대회 때 엠블렘과 행사 포스터 제작을 맡았죠. 당시 거기 참가했던 일본 호세대의 한 학생이 제가 만든 엠블렘 등에 관심을 보이기에 며칠 동안 대화를 자주 나눴습니다. 그 학생은 환경문제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고, 한국의 환경운동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어요. 당시 저는 환경에 대해 별 의식이 없었는데 그 학생에게 답해주려고 알아보는 과정에서 환경오염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그후 제 디자인도 환경을 중심에 놓고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신문지에 그린 환경포스터

2000년에는 디자인에만 적용하던 환경보호를 자신의 생활로 넓혔다. 혼자 마음속으로 ‘에너지 독립선언’을 했다고 한다.

“전기가 많이 들어가는 걸 없애기 시작했어요. 냉장고가 있고 없고는 사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보름만 안 쓰면 적응합니다. 여름에 찬 음식을 먹는 건 자연스러운 게 아닙니다. 정상이 아닌 걸 추구하다보니 문제가 많아진 거죠.” 냉장고가 없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다.

윤 교수는 일요일이면 서울 인사동에서 티셔츠에 ‘초록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려주는 일을 7년째 해오고 있다. ‘에너지 독립선언’을 한 뒤 자신의 의식주를 점검해보는 과정에서 집에 티셔츠가 불필요하게 많다는 것을 발견한 게 계기가 됐다. 남는 흰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나눠주다, 어느 일요일 인사동에 나와 그림 그리기를 한 뒤로 매주 하는 일이 됐다.

“활동 시작 후 처음 비가 왔던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주 나갔죠. 지방에서 일부러 오신 분들도 있어 빠질 수가 없더군요. 7년이 되니 이젠 일과가 됐습니다.”

이처럼 그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된 인사동 티셔츠 퍼포먼스의 올해 활동은 지난달 21일 끝났다. 다음 시작은 내년 4월이다.

환경문제를 바라보는 윤 교수의 시선은 요즘 우리 사회의 ‘정신’을 향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성장 지상주의와 물질 만능주의의 폐단이 심각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환경문제를 얘기하고 캠페인을 하지만 개개인의 정신이 성장 지상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로 오염돼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생태, 정신, 사회, 정치 등 모든 게 다 환경입니다. 그런데 정신 환경, ‘영적 공해’의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생태 환경이 해결될 수 있어요. 현재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신적 상태가 과연 어떤 상태인가요. 성장, 경제, 1등, 금메달 이런 것을 추구하는 사회가 아닙니까. 부자가 돼서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양 오해되고 있어요. 이것을 바로잡아야 다른 환경 문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가 ‘음식 쓰레기 안 만들기’로 환경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했다. 음식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남을 것 같은 음식은 물리고, 그래도 남으면 배가 불러도 먹으면 된다는 것이다.
 

윤호섭 교수가 지난 여름 서울 인사동에서 헌 티셔츠에 황새, 나뭇잎 등 생태환경을 상징하는 그림을 그려 나무 밑에 전시해놓은 모습.


그는 “음식이 없어 굶는 사람이 있거니와 농산물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농약으로 땅이 척박해지고 대기와 수질이 오염되는 등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라며 “옛날에는 사랑채에서 남은 음식이 문간방으로, 돼지우리로 재활용이 됐는데 이제는 그게 안 되잖아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문제라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오는 10일 서울 잠실 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리는 디자인올림피아드에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회를 앞두고 전기를 쓰지 않는 대용 냉장고도 직접 만들었다. 버려진 헌 냉장고에 소금이나 숯을 넣어 음식의 부패 속도를 늦출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모은 1000벌의 티셔츠에 그림을 그리는 퍼포먼스도 할 계획이다.

“아름다운 가게에 시민들이 기증한 옷을 노숙자, 장애인 등이 분류해 1000벌을 골랐고, 거기에 그림을 그려 시민들에게 다시 줄 거예요. 아름다운 순환이 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순환을 꿈꾸는 윤 교수의 목소리는 아름답게 울렸다.

출처 : 경향신문 기사입력 2008-10-06 10:33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1979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