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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뒤 20여년간 방치된 독립운동 사료 27권으로 묶어 펴내/조동걸(국사학과) 명예교수
조동걸 국민대 명예교수는 독립운동에 대한 전문 연구자가 전무하던 1970년대부터 우리나라 독립운동사 연구의 기틀을 닦고 후학들을 길러낸 대표적인 1세대 연구자로 꼽힌다. 그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사 연구에 뛰어들게 된 것은 1969년 4월 독립운동사 편찬위원회(위원장 노산 이은상)의 <독립운동사> 편찬작업에 참여하면서부터다. 해방 이전 만주군 활동 경력과 1965년 한일협정 체결로 ‘친일파’라는 비판에 허덕이던 박정희 정권은 일본에서 받은 청구권 자금 중 일부를 독립유공자 사업기금에 할당했고, 68년 7월 이 기금의 일부를 토대로 편찬위를 구성했다.
<독립운동사>(사진)는 해방 이후 20여년 동안 방치됐던 독립운동 관련 사료와 증언을 10년 동안 본편 10권과 자료집 17권으로 묶어 펴낸 대작이다. 조 명예교수의 제자인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이전에도 독립운동과 관련한 개별적인 연구는 있었지만 <독립운동사>에 이르러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가 통사적으로 집대성되기에 이른다. 이 시기 수집된 방대한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후학들의 연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소장학자이던 조 명예교수는 ‘상임 조사·집필위원’이라는 직함을 달고 편찬위의 막내로 10년 동안의 편찬작업을 함께했다.
<독립운동사>는 독립운동의 흐름을 의병항쟁(1권), 3·1운동(2·3권), 임시정부(4권), 독립군전투(5·6권), 의열투쟁(7권), 문화투쟁(8권), 학생독립운동(9권), 대중투쟁(10권) 등으로 구분해 정리했다. 자료집에서는 본편에서 인용한 자료들을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도록 한글로 꼼꼼이 번역해 둔 점이 눈에 띈다.
당시 강원도 춘천교대 교원으로 무명이었던 그가 편찬위에 참여하게 된 것은 역사 현장을 발로 누빈 실증적 연구작업이 중앙 학계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는 1968년에 발표한 ‘안중근 의사 재판기록상의 인물-김두성고(考)’ 에서 연해주에서 실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유해동 옹을 발굴해 ‘안중근 의사의 공판 기록에 등장하는 김두성은 의병장 유인석’ 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1970년 <사학학보>에 발표한 논문 ‘삼일운동의 지방사적 성격-강원도 지방을 중심으로’에서는 강원도 지역에서 진행된 3·1운동의 흐름을 구체적으로 기술해 서울지역에 국한돼 논의돼던 3·1운동의 민족사적 의미를 전국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의 제자들은 출신 학교를 가리지 않고 독립운동사 전 분야에 흩어져 있다. 의병장 신돌석을 연구한 김희곤(안동대), 광복군을 연구한 한시준(단국대), 조선의용군을 연구한 염인호(서울시립대) 등 독립운동사 2세대 연구자들이 망라돼 있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국사학)는 “조 선생님 또래에서는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학자가 없어 80년대 서울에서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려는 대학원생들은 무조건 조 선생님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10년 넘게 한 교실에 여러 학교의 학생들을 모아 놓고 공동 강의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은퇴한 뒤 평생 모아 온 1만여권의 독립운동 관련 장서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그를 두고 “대단한 실증주의자이면서도 단재 사학 정신을 이어 받은 민족사학자”라고 평했다.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97262.html
출처 : 한겨레 기사입력 : 2010-01-05 오후 09:1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