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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진(경제학과 78) 동문, 디즈니서 15년 … “한국사 애니메이션 만들고 싶다”
디즈니 이름을 걸고 만들어진 50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라푼젤(원제 탱글드·Tangled)'. 지난해 11월 24일 미국에서 개봉된 이래 연말연시 벌어들인 수입만 약 3억9500만 달러(약 4800억원)에 이른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이제야 본격 상영이 시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올릴 수입도 만만치 않다. 그림형제의 동화를 새로운 감각으로 재해석한 '라푼젤'의 성공 뒤엔 두 젊은 감독 네이던 그레노와 바이런 하워드의 빼어난 감각, 총괄제작자이자 애니메이션 수퍼바이저인 글렌 킨의 열정과 뚝심이 녹아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지난 5년간 글렌 킨과 함께 라푼젤의 모든 주요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한 캐릭터 디자이너 김상진 감독의 재능과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디즈니의 아티스트로 활약한 지 벌써 15년. 그간 '타잔' '볼트' '치킨 리틀' '공주와 개구리'까지 많은 작품에서 재능을 펼쳐온 그의 손끝에서 '라푼젤'이 탄생했다. 김 감독을 LA 인근의 월트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이경민의 Hollywood Interview
"그러게요. 벌써 순제작비 정도는 회수한 것 같더라고요. 정성을 많이 기울인 작품인데 사람들한테 좋은 반응을 얻어 참 뿌듯하고 기쁩니다. 아티스트들은 아무리 하찮은 작품이라도 최선을 다해 작업하기 마련인데, 사람들이 많이 봐주질 않으면 섭섭하고 힘이 빠지거든요. 그럴 때면 '좋다 싫다' 평가라도 받는 게 참 행복한 일이겠다 싶었는데, 이런 면에서 '라푼젤'은 참 고마운 작품이죠."
"캐릭터 디자인은 그야말로 백지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맨 처음 이야기가 완성되고 인물의 나이나 성격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면, 거기서부터 '이 캐릭터는 이렇게 생겼겠다' 하는 상상력을 발휘해 캐릭터를 그려나가는 거죠. 한 캐릭터의 디자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장의 그림을 그립니다. 그중 하나를 감독과 다른 주요 제작진이 최종 디자인으로 결정하는 것이죠. 그동안은 작품에서 일부 장면들만 책임지면 됐는데, '라푼젤'은 영화 전반에 걸쳐 제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도 컸고, 많은 작업이 제 책임하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라푼젤 캐릭터는 글렌 킨이 이미 10여 년 전부터 기획하고 있었어요. 저는 5년 전부터 합류해 함께 디자인을 완성했죠. 사실 '라푼젤'을 보면 오리지널 동화에서 가져온 것은 기본 뼈대밖에 없어요. 왕자에 의해 구출되는 수동적 라푼젤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바깥 세상을 능동적으로 탐험해가는 라푼젤을 그려내는 데 초점을 맞췄죠. 18년이란 긴 세월을 탑에 갇혀 비참하게 보냈지만 여전히 매력적이고 호감이 가는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어려운 과제였는데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아요. 그 외 다른 캐릭터들은 모두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인물들입니다. 라푼젤을 탑에 가둔 마더 고슬에게는 엄마의 모습과 악녀의 모습을 동시에 부여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막시무스라는 말 캐릭터와 파스칼이라는 카멜레온 캐릭터 등 말 못 하는 동물을 재미있게 그려내야 하는 것도 힘든 작업이었죠. 마치 무성영화 시절 찰리 채플린처럼 말은 못 하지만 몸짓이나 표정으로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거든요. 힘들게 작업했는데 동물 캐릭터들에 대한 관객들 반응이 아주 좋아 만족스러워요."
"하하. 부정은 못 하겠네요. 디자인을 하고 나면 어떤 캐릭터에게서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게 되는 것 같거든요. 남자 주인공 플린 라이더는 아마 디즈니 남자 캐릭터들 중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라푼젤'이 처음에는 아주 무겁고 진지한 드라마로 기획됐었어요. 그러다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치며 현대적 유머와 코믹한 액션이 가미된 버전으로 재탄생했는데, 플린 라이더도 그 과정에서 새롭게 탄생한 것이죠. 후회 없이 맘에 쏙 드는 캐릭터를 완성한 듯합니다."
"모든 게 다 들어가 있는 작품이라는 점이죠. 꿈, 사랑, 모험, 액션, 코미디, 거기다 약간의 공포스러운 장면들까지요. 또 기술적으로도 크게 진일보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캐릭터들의 표정이나 감정 표현, 움직임 등은 기존의 어떤 애니메이션과 비교해도 월등할 겁니다."
"픽사나 드림웍스가 많이 치고 올라오긴 하지만 디즈니의 명성과 위상은 아직 견고하다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을 하는 사람이면 꼭 한번 일해보길 원하는 최종 목적지와 같은 곳이니까. 처음 입사했을 때 이름만 듣고 동경해왔던 아티스트들과 얼굴을 맞대고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티스트 개개인한테 회사 차원에서 참 많은 투자를 합니다. 배우고 싶은 걸 맘껏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작업을 하는 데 불편하거나 신경 쓰이는 일이 없도록 배려해주죠. 우리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며 자라났다는 점도 디즈니에서 일하는 경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듯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들을 보면 자기 자신보다 아이들이나 그다음 세대를 위해 작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만큼 20~30년 후에도 후손들에게 남겨줄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란 뜻이겠죠.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은데, '라푼젤' 같은 디즈니 작품들은 언제나 그 강력한 후보라는 점에서 더욱 보람되죠. 열네 살 난 제 딸도 디즈니의 열혈 팬입니다. 얼마 전 '너무 오래 다닌 것 같아. 딴 회사를 알아봐야겠다'고 농담을 했더니 '아빠 디즈니 그만두면 나랑 말 할 생각도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피터팬'을 좋아합니다. 등장 인물들이 하늘을 난다는 사실 자체가 참 맘에 듭니다. 하늘을 나는 것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여러 꿈 중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환상의 극치가 아닐까 싶어요. 캐릭터 하나하나도 정말 마음에 들고요. 특히 후크 선장 캐릭터를 정말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정말 좋아했어요. 당연히 미대에 갈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고2 때 제가 적록색맹이라 미대에 못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당시만 해도 적록색맹은 미대에 아예 원서조차 못 냈던 때였습니다. 좌절도 크고 눈앞이 캄캄했죠. 그러다 엉겁결에 대학 가고, 4년간 허송세월만 하다 졸업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은행이다 증권회사다 취직을 해도 전 그렇게 살진 못하겠단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간신히 광고회사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했는데 우연히 신문에 나온 애니메이션 기사를 보고 '이거다' 싶어 한 국내업체에 허겁지겁 포트폴리오를 급조해 냈죠. 따로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적도 없었는데 운이 좋았어요. 그러다 89년부터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7년 일하다 95년에 디즈니로 옮기게 됐습니다."
"내가 이걸 안 했으면 뭘 하고 살았을까 싶어요. 매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죠. 가끔은 스트레스나 아이디어 고갈을 경험할 때도 있죠. 그럴 때면 그냥 쉬면서 세상 밖으로 눈을 돌려 여행도 하고 미술품이나 조각품, 좋은 건축물 등을 둘러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뭘 해왔나'를 보고 느끼려 해요. 세상구경, 사람구경도 많이 하고요."
"그림 실력과 상상력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한국 출신 아티스트들은 창의력 결핍이 항상 걸림돌이 됩니다.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단순한 업무에서도 상상력과 창의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림 실력이 부족하면 열심히 연습해서 그리고, 상상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좋은 작품들을 많이 보고 스스로 작품도 많이 만들어보면서 이를 보완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 작품'이라 말할 수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공개할 수준은 아니지만 그동안 구상해온 이야기들도 꽤 있지요. 특히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한국 역사 중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부분들을 이야기로 꾸며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라푼젤’의 남자 주인공 플린 라이더 와 왕실 경비마 막시무스, 라푼젤의 계모 고슬(왼쪽 우는 여인), 악당 블라다미르. 김상진 감독이 창조한 ‘라푼젤’의 주요 캐릭터들이다.
원문보기 : http://news.joinsmsn.com/article/aid/2011/01/22/4622948.html?cloc=olink|article|default
출처 : 중앙일보 기사입력 : 2011.01.22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