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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철 아르키움 대표 “새로운 건축, 나를 카피하지 않는 것 ”/ 김인철(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04 석사) 동문
지역을바꾸는건축-김인철 도시와 어우러진 공적 ‘장소’를 만들어 내는 건 건축가의 역할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사진=더리더
장윤규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지역을 바꾸는 건축’이라는 주제로 건축가들과 대담을 펼친다. 장 대표는 특색 있고 자연스러운 도시 건축으로 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건축가다. 국내 건축가 중 ‘세계건축상’을 수상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장 대표의 시선으로 변화하는 지역의 모습을 건축을 통해 재조명한다. 7월 ‘지역을 바꾸는 건축’의 주인공은 최근 부산시 총괄 건축가로 위촉된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다.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2018년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 총괄건축가를 지냈다. 김수근문화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 및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한 대한민국 건축계의 거장이다.
어반하이브를 말하다
장윤규 선생님 작품을 보면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느낌이 든다. 건축적으로 보면 내부 구조를 밖으로 드러낸다든가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을 제한하는 등 재미난 생각을 많이 하시는 거 같다. 작품에서 선생님의 새로운 건축에 대한 집착이나 열정이 느껴졌다.
김인철 언젠가 성공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 나이에 아직 현역에 있다는 게 성공이라고 보는 모양이다. 그들에게 내가 지금까지 일하는 비결에 대해 “나는 나를 카피하는 순간 끝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건축이라는 건 땅이 다르고 건물주가 다르고 용도가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맞는 걸 찾아야 한다. 나는 “이런 스타일이다”라고 규정하고 그걸 변주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창작이 아니다. 창작의 한 가지 재미는 어떤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확신이 섰을 때 스스로 흥미를 느낀다는 거다. 재미가 있어야 신명이 나서 작업이 되는 것이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끌려 다니는 경우에 나는 포기해버린다.
나를 카피하지 않고 재미있는 작업을 하는 것. 거기에 완성된 것을 상상할 때 갖는 즐거움과 완성됐을 때 “내 생각이 옳았구나”라며 그간의 고생이 카타르시스가 되는 희열을 추구하다 보니 후배들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거 같다.
장윤규 재미라고 표현하셨지만 건축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을 보여주고자 일침을 가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김인철 창작은 새로운 것을 찾는 과정이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건 없고 새롭게 보는 방법이 있다는 말처럼 역발상이랄까? 뒤집어보는 쪽으로 아이디어 초기단계를 많이 거치는 거 같다. ‘내가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뒤집어보기를 즐긴다.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을 의심해보는 게 시작이다.
장윤규 어반하이브를 랜드마크로 만들기보다는 도시와 조화로운 얌전한 건물을 만들려고 생각하셨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의도와는 다르게 랜드마크로 잘 작동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김인철 어반하이브를 만들 때 내가 구상했던 건 어반하이브의 형태가 아니라 도시와 건축이 만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제안이었다. 그 부분은 다 넘어가고 형태가 특이하다는 거 하나로 관심이 옮겨가는 데 섭섭한 구석이 있다.
건물 입구에 들어설 때 6미터 정도의 공터가 있다. 이곳이 법적으로는 공개공지다. 강남구청에서 이 건물을 허가 낼 때 공개공지를 건물 안에 두는 법은 없다고 반대했었다.
통상적으로 공개공지를 내놓을 때 보통 쓸모 없는 땅을 버리듯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의미가 없다. 내가 생각한 개념은 공개공지를 정면에 두어서 현관처럼 관리하고 지나가는 시민들이 비도 피하고 더위도 피하는 열린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강남구 공무원들은 이 공개공지를 나중에 막아서 사적 용도로 쓰지 않겠냐며 우려했다. 그때 내 이름을 걸고 각서를 쓰겠다고 설득해서 겨우 허가를 받았다.
어반하이브의 공개공지가 젊은 세대들의 데이트 약속 장소로 ‘빵빵이 앞’이라 통한다더라. 도시와 건축의 만남에 경계를 딱 지어서 들어가기 어려운 느낌을 주지 않고 느슨하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랜드마크가 된다는 건 사적인 공간이지만 공적 공간으로 만들어 사람을 모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이런 부분이었는데 너무 당연한 거라 생각해선지 평가를 안 해주는 거 같다.
장윤규 어쩌면 건물의 로비 공간은 사적이지만 공적인 역할이 필요한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김인철 도시와 건축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가장 큰 결과물은 시민들에게 ‘장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장소’는 건물에서 비롯되니까 건물은 도시의 일부로 의미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건축의 힘이고 도시를 이루는 기본이다. 도시에서 그런 장소가 얼마나 있을까. 도시가 삭막하다고 느끼는 건 그런 장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파트도 공동체로서 같은 공간에 살지만 모두 따로 아닌가. 불확실성의 공간이 있어서 마을 사람들끼리 우연한 만남을 자주 일어나게 하면 어떨까. 처음 보면 누군가 했다가 두 번, 세 번 보면 눈인사라도 하는. 그런 장치를 건축이 얼마나 제공하고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장윤규 어반하이브는 공개공지를 내놓으면서 지역에서 건축이 해야 할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 것 같다. 게다가 지하철까지 연결되어 도시 인프라와 건축이 연계된 건축적 패턴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했다고 본다.
이 건물은 지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지금 봐도 시간과 관계없는 건물로 보인다. 유행을 타지 않는 절대적 형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김인철 동그란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완성됐고 또 그 때문에 상을 많이 받았지만 표절 논란으로 맘 고생을 좀 했었다. 건축문화대상 후보로 올랐다가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어디서 본 것 같다”라고 해서 제외됐었다. 명예회복을 한 건 ‘서울시건축상’이었는데 심사위원들이 원을 ‘보편적 기하학’이라는 측면으로 해석했다.
장윤규 개인적으로 어반하이브에서 창문의 패턴은 논외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건물 구조벽체를 외부로 노출시켰다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 유리 외피를 내부로 끌어들임으로써 전통적인 오피스빌딩 구축 기법을 뒤집었다. 단순히 뒤집기만 한 게 아니라 외벽에 다양한 디자인 요소를 넣어 몸체 자체가 조형미를 갖도록 했다.
김인철 건물 구조벽체를 외부로 노출시킨 이유는 간단하다. 값비싼 용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건축주도 만족시키면서 주변에 산뜻한 변화를 줄 방법을 생각했다.
이 프로젝트에 주어졌던 건축면적 584m²는 사무실로 쓰기에 너무 좁지도 넓지도 않다. 엘리베이터와 계단, 화장실이 들어가는 코어를 빼고 나면 400m² 남짓한 공간이다. 여기에 하중을 지지하기 위한 내부 기둥까지 세우고 나면 쓸 만한 공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을 뒤집어봤더니 우리 한옥 구조가 떠오르더라. 기둥이 밖에 있고 툇마루가 안에 있지 않나. 르 코르뷔지에가 이야기하는 모더니즘이 이미 전통 한옥에서 써왔던 가구조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현대적으로 만들어놓고 전통을 이야기하냐며 웃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내부의 기둥을 없애고 외벽 구조만으로 건물을 지지하게 했다. 유리 커튼 윌을 치우고 가장 자신 있는 재료인 콘크리트로 마무리했다.
문제는 높이였는데 콘크리트로 빈틈없이 채운 벽은 튼튼하지만 자체 하중 때문에 높이 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촘촘히 뚫린 외벽의 구멍 3000여 개는 콘크리트를 덜어내 벽체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고안한 해법이다.
두께 40cm의 콘크리트 속에는 철근이 비스듬히 얽혀 있다. 그 사이로 뚫어낸 원형 구멍은 창 역할을 한다. 노출콘크리트 벽체는 한 층씩 열 일곱 번 만들어 세웠다. 벽 모양에 맞게 철판 거푸집을 만들고 그 안에 콘크리트를 부어 양생한 뒤 다음 층을 같은 방법으로 이어 올렸다. 층과 층 사이에 자연히 생기는 흔적을 지워내 한 덩어리처럼 보이게 하는 작업에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또 일상 풍경 빼곤 특별한 것이 없던 이 지역을 다르게 보는 방법으로 생각한 게 원형 창이었다. 둥근 창을 통해 보면 풍경이 달라 보인다.
입주를 시작할 때 어떤 여직원에게 물어보니 너무 재미있다고 하더라. 자신의 자리에서 여덟 개의 풍경이 모두 다르게 보여서 골라서 보고 또 볼 때마다 새롭게 보인다고 하더라. 다른 프레임으로 보니 새롭게 보이는 거다. 그런 상상을 하며 만들었는데 정말로 현실이 되었다.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사진=더리더
▲장윤규 운생동 대표/사진=더리더
바우지움조각미술관
장윤규 강원도 고성의 바우지움조각미술관은 매끈하지 않은 거친 물성을 표현하셨다. 그런 게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지역이나 땅의 조건과 맞물린 건축인 것 같다. 돌을 많이 사용하셨는데 지역에서 나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인철 설계할 땅을 만나면 옛 지도를 보고 지명을 확인하는 게 맨 처음 하는 일이다. 바우지움조각미술관 터는 지명이 ‘원암리’였다. 바위 ‘암’자를 사용했다. 분명 그 동네는 바위와 관계가 있는 동네였다. 태백산맥이 지각변동으로 솟아오를 때 울산바위가 생기면서 부스러기처럼 내려온 돌들이 깔려 있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돌을 주제로 하기로 하고, 땅은 1500평인데 건물은 150평만 지어야 하는 조건이었다. 큰 대지를 커버하기 위해 ‘담’을 이용하기로 하고 재료는 콘크리트에 돌이 드러나는 구조를 구상했다.
마침 동계 올림픽이 결정되고 대관령 철도가 뚫리면서 터널에서 파낸 돌을 사용했다. 대관령 500미터 지하에서 나온 돌들을 깨서 거푸집에 넣어 담을 만들었다.
밭에 있던 둥근 돌은 조경으로 쓰고 큰 돌을 잘라서 의자로 사용하는 식으로 구성했다. 돌이 주제가 되는 건물이고, 그 동네 내력과도 맞고 풍경과도 일치했다.
장윤규 자연의 일부가 공간으로 치환된 느낌이었다. 그걸 의도하셨나.
김인철 그렇다. 시간이 흘러 돌 틈에 흙이나 먼지가 쌓이면 풀도 자라고 하지 않나. 일부러 식물을 심어보았는데 인공적이라서 그만두었다. 자연스럽게 그냥 두었더니 벌이 집을 짓고 멧새도 둥지를 틀어 자연의 일부로 가고 있다.
부산, 산과 바다까지 열린 공간으로
총괄건축가 제도, 우리 건축의 르네상스를 불러올 마지막 희망
장윤규 각 지자체에서 공공건축 영역에 민간 전문가인 건축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총괄건축가를 위촉하고 있다. 선생님께서도 부산시 총괄건축가로 활동 중이신데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김인철 이 전에 세종시 행복청 총괄건축가를 아주 잠깐 했었고, 최근 부산에서 러브콜이 와서 맡게 됐다.
건축가는 창작자인데 작가를 작가답지 못하게 만드는 현실에 너무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건축은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도와주는 사람들보단 못하게 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건물주나 공무원, 모두 다 자신이 가진 고정관념으로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한다. 건축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이 없이는 제대로 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새건축 운동을 주도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모양이었지만 때리다 보면 뭔가 될 것이라고 봤다. 압력단체 역할을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건축계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아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승효상(現 제5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이 2014년에 서울시 총괄건축가가 되면서 건축정책위원회가 만들어지고, 공공건축가 제도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총괄건축가 제도도 책임과 권한이 커서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대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산에 처음 가서 관련 단체장을 모아달라고 요청해 간담회를 했다. 큰 그림의 부산도시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협조를 부탁했다. 밑에서 만들어서 올라가는 시스템에 기대기엔 너무 오래 걸리니 누구인가 총대를 메고 나가야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공공건축가들에게 이번 기회에 건축이란 무엇이다라는 걸 보여주지 못하면 건축계 르네상스란 없다고 말할 정도의 각오로 임하고 있다.
장윤규 총괄건축가가 도시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부산 총괄건축가로서 부산이란 도시의 방향을 말씀해주신다면.
김인철 위촉식에서 한마디 하라기에 “부산을 열자, 열린 도시를 만들자”고 했다. 우연이지만 최근에 쓴 책의 제목이 ‘열림’이기도 하다. 부산을 열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부산의 자연조건이다. 생각해보면 부산에서는 산이 그대로 바다와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도시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가용 면적의 폭이 좁다. 길게 확장이 되니까 모든 시스템이 해양과 평행하게 간다. 저층일 때는 별 문제가 없는데 고층이 되기 시작하면서 바다를 막아버리는 장벽이 되고 있다. 특히 부산항이 신항으로 옮겨갔으니 부산을 나누고 있는 해안과 평행한 레이어에 산과 바다를 이어지게 하는 열린 공간을 끼워 넣자는 게 기본 생각이다. 일각에서는 내 땅인데 높은 건물을 왜 못 짓냐고 따지기도 한다.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종합적인 마스터플랜 안에서 건축을 열린 자세로 만들자는 것이다.
부산의 자연조건에 맞는 것을 만들자는 생각이다. 지금은 부산의 아이덴티티가 된 산비탈의 무법 건축지역이 하나 둘 재개발을 하고 있다. 이곳에 아파트를 짓는 대신 공공건축가들을 투입해서 경사 지형에 맞는 안을 제안하기로 했다. 부산시에는 그곳을 건축 특별구역으로 지정해서 건폐율, 인동거리 같은 건축법을 다르게 적용해보자고 제안한 상태다. 현행 건축법은 평지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지역은 경사가 심해서 다른 법을 적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장윤규 총괄건축가로 임명해서 자문단처럼 쓰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뒷받침해줄 수 있는 살아 있는 시스템이 중요할 텐데. 부산은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할지 궁금하다.
김인철 부산시는 총괄건축가를 보좌하는 국을 만든다. 허가 심의 권한도 있는 조직이라 기대가 크다. 다만 임기가 2년인데 그 안에 뭘 이룰 수 있을지 걱정이다.
장윤규 지역 균형 발전이 지역에는 화두다. 혁신도시 이후 균형 발전에 대한 큰 그림은 나오지 않고 있는데 군 단위의 작은 도시의 발전 방향에 대해 조언해주신다면.
김인철 혁신도시가 성공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앙 부처를 도시의 중심이나 가까이에 넣지 않고 멀리 신도시를 만들어 배치했기 때문이다. 중소 도시일수록 집약시켜서 발전해야 한다. 신도시를 개발하면 원도심의 인구는 줄어들기 마련인데 균형 발전을 생각하지 못한 게 큰 원인이다. 공간만 있다고 살아지는 게 아니라 거기에 시간이 더해져야 한다. 시간과 공간이 합쳐진 장소를 다듬어나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부수고 새로 짓거나 아예 다른 곳에 세우는 그런 좋지 않은 방법을 써왔다. 이제는 확장하는 정책보다 집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우리 같은 건축가들이 들어가서 예전 살던 곳에 대한 추억을 소환해 구도심과 신도심을 인문적으로 연결하면서 동네를 살리는 작업들을 해주면 가능하지 않을까.
빌바오 구겐하임이라는 미술관 하나로 스페인 빌바오란 도시가 살아났고, 지진피해를 입은 일본의 고베 역시 건축가들이 개입하면서 관광지가 됐다. 도시 침술요법으로 그런 효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사진=더리더
기본 교양으로의 건축 교육이 필요
제자 가르치고 싶은 열망이 있다 김인철 미국에서 온 건축가 부부가 저녁을 먹다가 “구멍이 뚫린 재미난 건물을 봤다”고 하더라. 내 작품이라고 하니까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함께 본 적이 있다. 그들이 말하길 “뉴욕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퀄리티의 건물”이라고 하더라. 그러면서 “왜 국제 저널에 발표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난 “유학도 안 가서 국제 저널과 연결되는 방법을 모른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장윤규 사실 국제적인 상을 받고 하려면 건축비평가나 저널리스트가 해외에 국내 작품을 소개해줘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프리츠커상을 왜 한국에서 못 받는지에 대해 말이 나오는데 기본적으로는 그런 토양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또 교양으로서 건축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대학에 들어가면 필수로 건축학 개론을 듣고 졸업을 해야 할 정도로 기초적 학문이다. 의식주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나?
김인철 우리가 서양 건축하고 접촉한 건 삼국시대부터 따져도 100년이 안 된다. 과거 1900년간 이 땅에 우리의 건축이 있었다. 그러나 기록이 잘된 조선실록에 건축가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 건축가가 없었단 말인가? 이런저런 자료를 살펴보니 과거에는 건축을 선비들이 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들은 시, 서, 화는 물론 풍수에도 정통했다. 풍수가 지금은 미신으로 취급받지만 그 시대에는 건축학개론이었을 거라고 본다. 목조 건축이라 형식이 모두 같기 때문에 별도의 디자이너가 필요 없고 자연과 어울리는 자세가 중요했을 것이다. 이후에 불행하게도 식민지 경험을 했고, 또 전쟁이 나서 다 부서졌으니 판자로 집 짓고 사느라 제대로 된 건축을 경험할 기회도 없었다. 국민들에겐 건축이 부동산이나 재테크의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개발에 브레이크를 걸면 나오는 말은 다 똑같다. 저 동네도 아파트 지어 부자 됐는데 우리는 왜 못하게 하냐는 거다. 건축이 문화라고 말하지만 시민들과 괴리감이 너무 크다.
서울시민건축아카데미를 하면서 느끼는 건 좋은 건축가가 좋은 건축을 만들려고 해도 소비자가 원하지 않으면 괜한 짓이란 거다. 시민들이 ‘좋은 건축을 가지고 싶어’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작업이 선행돼야만 한다. 좋은 건물을 만들면 사람들이 일깨워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 걸리는 게 문제다. 그럴 때 교양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낀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차에 타면 자동으로 안전벨트를 맨다. 우리 세대만 해도 맬까 말까 하는데 젊은이들은 다르다. 또 담배는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한다. 그런 게 교육의 힘이 아닐까.
서구는 미술교과서의 1/3이 건축사로 할당될 만큼 건축이 일반 교양으로 분류된다. 우리도 교과서에 건축 이야기를 넣으면 그들이 자랐을 때 건축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이다.
장윤규 디자인이나 프로그램 구성 등 한국의 건축 교육 방향에 대해서 의견이 많으실 것 같은데 어떤가.
김인철 바우하우스(독일 바이마르에 있던 조형학교)에서는 예술교육 시스템을 표준화시켰고, 그것이 바우하우스를 끌고 가는 원칙이 되고 있다. 나 역시 그런 표준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기말 평가회에 온 교수나 건축가들이 김인철 스튜디오인데 김인철의 아류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나오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교수란 학생들에게 비법을 전수해주는 게 아니라 그들을 응원해주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있다고 본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 도면을 그리는 것보다 학생들에게 PT를 시켜서 생각을 설명하라고 했다. 나를 클라이언트라고 생각하고 설득시키는 것부터 가르쳤다. 설계란 생각을 만드는 것이고 그것을 삼자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부분에선 나름대로 잘해왔다고 자부했는데 나이가 드니 이제 관두라고 하더라. 달마가 동쪽으로 간 이유를 아나? 바로 제자를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 역시 남은 기간 어디서든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건축학교를 하나 만들까?
@대담│장윤규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
김인철 아르키움 대표
●출생 1947년, 경상남도 진해
●홍익대학교 건축과 학사
●국민대학교 대학원 건축과 석사
●엄덕문 건축연구소
●인제건축 설립
●아르키움 대표
●중앙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부 교수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우대겸임교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7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원몬보기: http://news.mt.co.kr/mtview.php?no=2019070215297834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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