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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성의 감성25시] 카피라이터 한상규 / 컴투게더 대표 (경영 74)

  • 작성자 장상수
  • 작성일 06.02.02
  • 조회수 25261

<주간한국>

가슴엔 들꽃향기 한아름 아름다운 말의 연금술사
감동이 있는 광고 카피로 감성을 자극하다

아직도 청바지를 즐겨 입는 ‘그이’ 에게선 나이를 무색케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까지 오른 산에 대한 열정 때문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새로운 글을 생산해야 하는 직업 탓일까. ‘그이’의 카피는 가슴 속에 들꽃 향기를 지닌 순박한 소년 하나를 떠올리게 했다. 나이 들어도 참 멋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출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를 거쳐 CM 프로덕션 킬리만자로 대표, 현재는 광고 대행사 컴투게더의 대표인 그는 고집스레 카피를 쓰는 남자, 카피라이터 한상규다.

우리는 ‘그이’를 기억한다. 아니, 한때 무수히 쏟아낸 그 카피들을 기,억,한,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맥심), ‘저도 사실은 부드러운 여자예요.’(맥심 모카골드), ‘뭐가 보이는가? 자유가 보인다!’(맥스웰 캔 커피) 등 카피만 들어도 CF 속 장면과 배우들이 눈에 선하게 보일 정도로 그는 90년대 광고를 강타한 수많은 카피 히트작을 제조한 사람이기도 하다.

상품보다는 상품 주변에 떠도는 이미지, 아우라만으로 카피를 써내던 한상규는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광고의 유행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로선 낯선 어법이기도 했던 그의 카피는 한때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오랫동안 써왔던 동서식품 프리마 광고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란 카피 기억하시나요? 그거 초기에는 가차 없이 박살났었죠. 카피도 아니다라는 주장이 나왔지만 어렵게 광고주를 설득해 방송심의를 넣었어요. 그랬더니 글쎄 국어학 전공 심의위원이 어법에도 안 맞고 말도 안 된다며 심하게 반대했죠. 우여곡절을 겪고 노력한 결과 통과가 됐어요.”
하지만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라는 카피는 반응이 좋았다. 상품 이미지와도 잘 맞았지만 그 당시 ‘아내’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카피이기도 하다.

“그 카피로 91년도 제9회 SCC(서울 카피라이터즈 클럽) 광고상에서 1위와 치열하게 다툰 끝에 2위를 차지하기도 했죠.”

SCC광고상은 광고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상이기도 했다. 그 해 1위를 차지한 카피는 그의 카피 ‘가슴이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였다. 그는 광고인이라면 탐낼만한 웬만한 상을 다 받았다.

권위 있는 국제 광고상인 클리오 본상(삼성전자 휴먼테크, 89)부터 제일기획 최우수 크리에이터상(90), 방송광고대상 카피부문 개인상(90), 대한민국광고대상(019 아빠빠빠,98),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중앙종금, 00) 등 상복도 참 많은 편이었다.

스스로도 “저는 운이 좋은 편이죠. 하고 싶은 것들은 대개 다 이뤘거든요”라고 말할 정도다. 여자가 맘에 들면 열심히 접근해서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고, 회사를 한 번 해보고 싶어 저질렀더니 원하는 바를 얻었다고 말하는 그는 ‘운 좋은 남자’이기도 하다.

그 중 가장 운 좋았던 경우는 32살에 경력 없이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경력직으로 입사한 것이다. “입사해서 6개월 동안은 텃새가 많았죠. 학벌도, 이렇다 할 경력도 내세울 것 없이 들어갔으니 왜 안 그랬겠어요. 회사 앞에 여관방 잡아 놓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죠.”

꿈은 이루어졌지만 그 후에 거쳐야 할 고개가 많았다. 들어가자마자 제일기획에서 가장 막강하고 규모도 큰 삼성전자 파트의 김철한 CD 밑에서 카피라이터 생활을 시작했다.

“학벌, 외모, 실력 모든 면에서 빠지지 않는 사수 밑에서 지독한 트레이닝을 받았죠. 그 당시 마이클잭슨의 흰 장갑과 선글라스가 유행했었는데 그걸 그대로 따라 해도 멋스러운 분이었죠. 노는 분야에서도 빠지지 않았구요.

하루는 사람으로선 도저히 할 수 없는 엄청난 과제를 맡기고 퇴근하는 거예요.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남들 다 퇴근하고 화장실 가서 대충 씻고 그때부터 맘먹고 앉아서 밤샘 작업에 들어갔죠. 서럽기도 했지만 어떻게든 해보려는 맘이 더 컸던 것 같아요. 한 12시쯤인가 술이 이미 취한 그분이 들어오더니 ‘그만 접고 술이나 마시러 가자’ 고 저를 데려나가더군요. 설마 그때까지 앉아서 일할 줄 몰랐던 거죠.”

조직 사회에서 ‘인간 한상규’는 ‘싸가지 나쁘지 않은’, ‘카피 잘 쓰는’ 카피라이터로 인정받았다.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대표로 인터뷰를 할 일이 있으면 늘 그를 내세울 만큼 그는 어느새 카피라이터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 후 동서식품 파트를 맡게 된 그는 그의 감성을 커피와 매치시켜 ‘불후의 명작’ 같은 카피들을 탄생시킨다. ‘저도 사실은 부드러운 여자예요’는 윤석화와 인연을 맺게 한 카피이기도 하다.

“그 당시 연극배우 윤석화씨는 CF엔 출연하지 않기로 유명했죠. 정통 연극인의 길을 가겠다는 자존심 같은 거였는데, ‘개성이 강한 연기를 좋아하지만 커피만큼은 부드러운 맥심 모카골드를 마십니다’ 는 배우 윤석화씨를 생각해 놓고 만들어 논 카피여서 거절하니 속수무책이더라고요.

할 수 없이 제가 직접 전화를 걸었죠. 대체 무슨 광고 길래 그러냐고 묻더군요. 커피라고 했죠. 그랬더니 ‘커피라면 제가 할게요’ 하더라구요.”

윤석화는 전화를 끊자마자 제일기획으로 달려왔다. 샴푸 냄새 풍기며 화장 끼 없는 얼굴에 예의 비음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한상규씨가 누군가요”라며 그를 찾았다.

여자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되기도 했던 ‘저도 사실은 부드러운 여자예요’는 연극인 윤석화를 공중파로 처음 데뷔시킨 CF이기도 했다. 그 후 윤석화와는 솔메이트처럼 절친한 친구로 지내오고 있다.


연필에서 나오는 감성의 글
카피라이터 한상규는 한때 녹음실에서 카피 쓰는 남자로 불렸다. 녹음실에서 4B연필로 휘갈겨 쓴 카피를 보고 준비 안하고 있다가 막판에 쓴 거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스타일이었다. “책상과는 거리가 멀었죠. 돌아다니면서 쓰는 스타일이죠. 샤워하다가, 차 안에서, 길을 걷다가 문득문득 생각나는 것을 메모하고 되씹는 과정을 통해 카피를 써내곤 하죠.”
맥심 커피 광고를 만들 때는 차안에 CM과 비슷한 음악을 녹음해 다니곤 했다. 음악을 틀어보고 카피를 몇 가지 압축해서 성우 톤으로 읊조리며 막판까지 끌고 가다 결국 녹음실에 와서 최종 선택을 하곤 했다.

연필은 그에게 세상 누구도 생각지 못한 카피를 선물하곤 한다. 아직도 연필을 쓰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연필을 깎으며 명상을 하듯 생각을 다듬으면 연필은 위대한 힘을 발휘하곤 한다. 책상에는 늘 가지런하게 잘 깎인 ‘뾰족하고 예리하고 정확한’ 연필들이 놓여 있다. 그의 카피가 감성적이고 가슴 속에 오래 남는 이유도 ‘연필의 힘’이 크다.

“저는 양약 같은 광고보단 한방약 같은 광고를 만들자는 말을 자주 해요. 자극적이고 튀기 보다는 가슴 속에 오래 남고 두고두고 기억되는 광고를 만들자는 거죠.”

광고가 억지스럽기보다 인간적이고 잔잔하면서 보는 순간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울 수 있는 감동을 주는 광고, 이것이 한상규의 광고 철학이자 동시에 컴투게더가 지향하는 ‘바른 광고’ 철학이기도 하다.

“정통 광고를 표방해요. 카피라이터가 중심에 서서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정통 광고로 가자는 거죠. 유행어로만 남는 그런 쪽 보단 힘이 있어 시장과 소비자를 만드는 광고를 만들고 싶어요.”

자연과 친하고, 전원과 가깝고, 된장찌개 냄새나는 한국적인 광고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올해 쉰셋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예요. 쉰 넷이면 그땐 더 아름다운 나이가 되겠죠. 광고의 정통을 지키고 아름다운 나이에 맞게 살고 싶어요. 2006년엔 뜻이 맞는 광고주를 만나 바빠질 것 같아요. 새로운 탄생을 지켜봐 주세요.”

카피라이터가 사장인 회사, 그리하여 사장도 카피를 쓰는 회사, 사장이 쓴 카피도 사장될 수 있는 회사가 바로 컴투게더다. 카피 한 줄에 인생을 묻고 감성을 파는 남자 한상규는 그의 카피처럼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았고(코오롱 벨라) 컴투게더의 대표인 지금은 광고의 ‘정통의 길을 간다.’(금강신사화 리갈)

컴투게더에 들어가면 잠시 쉴 수 있는 오래된 툇마루 하나가 있는데 왠지 따스한 그의 카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 하나 절로 드리워지는 건 그 때문이다. 진정 보약 같은 카피가 그리운 계절이다.


유혜성 객원기자 cometyou@naver.com

 

입력시간 : 2006-01-04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