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757년 당 숙종과 영왕 간의 정권 쟁탈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이백은 야랑으로 유배형을 언도받는다. 당시
이백은 장강의 삼협을 지나가는데, 이때 지은 시가 바로 ‘삼협 위에서’(上三峽)다.
‘3일 아침 동안 황우협으로 가는 길/사흘
저녁을 가도 너무 더디네/사흘 아침 사흘 저녁 동안/어느새 검은 머리 하얘졌네.’
누구에게나 유배지로 떠나는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시인 이백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태백 특유의 과장법이겠지만, 그는 사흘 거리에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그러나 2년 뒤 이백은 유배에서 사면되어
다시 삼협 상류의 장강을 지난다. 그러나 여정은 전과 달리 가볍고 경쾌하다. 천리를 하루 만에 내달렸다. 이때 읊은 시가 바로 ‘아침에 백제성을
떠나면서’(早發白帝城)이다.
‘아침 나절 채색구름 뜬 백제성을 떠나/천리길 강릉까지 하루 만에 돌아왔네/양안의 원숭이 울음소리
그치지 않는데/가벼운 조각배는 만겹 산을 지나왔네.’
삼국지의 유비가 죽은 곳으로 유명한 백제성, 즉 바이디청이 요즘 수몰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 20일 준공된 세계 최대의 수력 발전 댐인 싼샤댐이 물가두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중국의 서남쪽인 사천성 성도
출신인 이백의 주요 활동 무대는 양자강, 즉 장강지역이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장강의 명승지, 유적에 얽힌 내용이 적지 않다. 20대 시절
이백은 삼협을 나와 강릉과 금릉 등지를 유람했다. 이때 지은 시 가운데 ‘천문산을 바라보며’(望天門山)나 ‘여산폭포를 바라보며’(望廬山瀑布)와
같은 명편들이 들어 있다. 도도한 장강에서 영감을 얻어서인지 “3천 척을 날아 흘러내리는 폭포수는 은하수가 하늘에서 떨어지듯”과 같은 웅장하고
호방한 느낌의 시구들이 자주 눈에 띈다.
중문학자 황선재씨(국민대박물관 학예부장)가 역주한
‘이백 오칠언절구’(문학과지성사)에서는 이처럼 최근 삼협 댐 건설로 주목을 받고 있는 장강의 이미지를 맛볼 수 있다. 물론 ‘고요한 밤의
고향노래’(靜夜思)가 같은 서정시도 있고, ‘왕소군’과 같은 영사시(詠史詩)도 들어 있다. 황씨가 1,000여수의 이백 시 가운데 5언·7언의
절구시 187수를 모두 찾아 번역하고 해설을 붙였다.
‘금화 꽂은 절풍모 쓰고/백마 탄 채 의젓하게 걸어오네/넓은 소매 펄럭이며
춤추는 모습/해동에서 온 보라매와 같도다.’(‘고구려’ 전문)
고구려에서 파견된 사신이 이국적으로 춤추는 모습을 목격하고 읊었다는
시가 이백의 5언절구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발견이다. 동북공정이 계속되는 요즘, 이백이 우리나라를 읊은 시를 감상하는 것은 감회가
남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