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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직후 나홀로 끙끙 금물…재취업센터서 희망 찾았죠" / 곽용근 (행정대학원 사회복지 03) 동문
곽용근(49)씨는 3월부터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ㆍ경정클리닉 일산지점에서 상담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각종 사행성 게임에 빠져 삶의 위기를 겪는 ‘게임 몰입자’들의 심리 상담을 통해 이들의 재활과 치료를 돕는다. 곽씨는 “삶의 고단한 자리에 있어 봤기에 지금의 행복이 그렇게 고맙고 소중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직업군인이었던 곽씨는 1987년 대위로 전역한 뒤 닭갈비집 등을 운영하며 힘들지만 가족과 함께 부럽지 않게 살았다. 평소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영업을 접고 97년 사회복지법인이 운영하는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취직했다.
병원에서 복지 및 봉사활동 관련 업무를 맡으면서 2003년 국민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가 2005년 2월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도 땄다. 일은 술술 잘 풀렸고, 곽씨는 자신감과 의욕이 넘쳐 났다.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석사학위를 딴 지 한 달도 안 돼 가구점을 운영하던 아내가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부부 신용불량자’가 됐다. 마음을 다잡고 직장 생활에 몰두했지만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사무실로 쏟아지는 빚 독촉 전화에 쫓겨나듯 사표를 써야 했다.
절망과 한숨의 나날이었다. 아내와의 갈등이 겹쳐 가정은 엉망이 됐다. 어느날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아내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잘 살아보려고 애쓰다 사기를 당해 실의에 빠진 아내에게 힘은 못 될망정, 아내에게 화만 내는 자신이 한없이 옹졸하고 무능력해 보였다. 아내에 대한 원망부터 잊었다. 곽씨는 “아빠와 남편으로서 대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 아내에게 정말 미안했고, 가족의 소중함을 절감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뼈저린 반성과 함께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50줄을 바라보는 실업자’에게 현실은 냉혹했다. 곽씨는 신용불량자 딱지까지 있었다. 구직 활동을 할수록 재취업의 벽은 더욱 높고 단단해져 갔다.
곽씨는 지난해 12월 마지막 보루이던 집을 팔아 신용불량자 딱지를 뗐다. 올 1월에는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에 등록했다. 혼자서 일자리를 구해 온 곽씨에게 센터는 ‘신세계’였다. 곽씨는 이력서 작성, 면접 요령 등 체계적인 재취업 프로그램을 들으며 자신감을 얻었다. 연도순으로 줄줄이 경력만 나열하던 이력서에는 곽씨의 사회복지 분야 능력이 맨 앞줄로 나와 곽씨의 ‘상품성’을 돋보이게 했다.
면접 요령도 배웠다. 양복만 입으면 된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다. “목소리는 두 배로 키우고, 웃음을 잃지 말고, 시선은 자신감 있게”라는 취업 컨설턴트의 꼼꼼한 조언이 이어졌다. 그리고 2월 23일, 국민체육진흥공단으로부터 입사 합격 전화를 받았다.
곽씨는 “대부분의 실직자처럼 나 역시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며 “실직하면 절대로 혼자 있지 말고 재취업지원센터 같은 재취업 기관에서 다른 구직자들과 교류하며 자신감을 얻고 체계적인 취업 기술을 배우는 게 최고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출처 : 한국일보 입력시간 : 2007/06/07 18:11:36, 수정시간 : 2007/06/07 20:16:25
원문보기 : http://news.hankooki.com/lpage/economy/200706/h200706071811335633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