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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교수 "동양화의 정신 현대미술로 번역" / (경제학부) 교수

  • 작성자 조영문
  • 작성일 08.07.22
  • 조회수 17441

'Heart와 하트'전 개최… '문자미술'등 다양한 시도 돋보여

『 만약 수 백년 전의 동양화 대가가 요즘 부활한다면 여전히 한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릴까? 아마도 새로운 그림 재료를 보고 좋아하지 않을까? 요즘의 세상을 살면서 그가 그린 그림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아마도 산수화를 또 그릴 것 같지는 않다 - 작가의 말 中』

그의 지적 호기심은 무한대급이다. 질문이 질문을 낳고, 답이 또 새 질문을 끌어들인다. 화가 김재준(48) 교수. 현재 서울 가회동 갤러리소나무에서 열리고 있는 초대전 ‘Heart와 하트전’의 작가다. 이번 전시회 역시 그가 수년에 걸쳐 자문자답하며 얻어낸 미술적 답안의 발표회나 다름없다.

“ 한마디로 요약하면 ‘동양화의 정신을 현대미술로 번역’한 작품들입니다. 만약 내가 옛날 전통산수의 대가이면서 현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어질까에 대한 질문의 답이죠.”

전시된 작품은 약 30점. 실제로 그림과 문자로 이뤄진 전통동양화의 기본 틀을 취하면서도 사뭇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느낌을 던져주는 회화작품들이다. 간결한 구도와 원색적이면서도 경박하지 않은 경쾌한 색상, 본래의 의미성을 뺀 ‘문자미술’ 그대로의 장식적인 문자 등 작가의 독창적이고도 다양한 시도가 돋보이는 독특한 작품들이다.

■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차이

작품 못지 않게 독특한 것이 더 있다. 그의 이력이다. 2001년부터 본격적인 작가활동을 펼쳐 온 그는 미술학과가 아닌 경제학과 교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 현재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전혀 다른 두가지 영역의 고른 몰입이 가능할까?

“궁극적으로,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물음과 문제의식을 갖고 질문을 던지며 풀어가는 것이 연구자의 자세죠. 그런 맥락에서보면 경제학이든 미술이든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즉, 그 물음과 답을 글로 쓰면 논문이 되는 것이고, 이미지로 쓰면 미술이 되는 거니까요. 두가지를 병행하고 있지만 제게는 별 부담이 없습니다. 성격상 생각이 많은 타입인데, 한편으론 미술작업이 저를 쉬게 해 주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되기 전, 그는 미술계안에서 이미 유명한 콜렉터이자 미술품 딜러였다. 콜렉터가 된 것도 ‘집에 그림을 걸어두고 바라보는 즐거움이 어떤건지 궁금해서’가 그 이유다.

80년대 후반부터 작품 수집을 시작, 약 20년간 콜렉터로 지냈다. 요즘도 곳곳에서 콜렉팅에 대한 강연요청을 받을만큼 전문성을 인정받은 전문가다. 그러나 2002년 무렵을 기점으로 콜렉터로서의 관심이 떨어져나갔다. 자신이 직접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 콜렉터 시절 막바지에 ‘직접 그려보면 작가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아주 단순한 선긋기부터 시작했는데 금세 지루해지더군요. ‘왜 지루해졌을까’ 이유를 생각해보니 너무 단순해서라는 답이 나왔어요. 그때부터 선을 긋기는 긋되 호흡을 이용해서 긋는 방식이나 그림을 그리는 도구 또는 소재의 재질을 바꾸어보는 등 저만의 조형법을 만들어 사용해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페셔널의 단계로 관심이 넘어간거죠. ”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과 전업작가의 차이는 뭘까라는 질문에 사로잡힌 김 교수.

“나중에 보니 전업작가들은 대개 각자의 고유한 스타일을 10년, 20년씩 계속 유지하고 있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그럼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따라왔는데, 곧 답을 알게 됐어요. ‘그래도 지루하지 않은 게 프로페셔널이다’라는 것이었죠.”

2001년 Edward Summerton과 함께 2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김 교수는 작가로서의 이름을 알렸다. 이후 현재까지 다수의 단체전과 개인전에 참가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동양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5년 국민대 박물관장이 되면서부터 일어난 일이다.

“ 그때 동양화를 많이 보게 됐어요. 맡은 직책상 매일 아침 유물을 보는게 일과였죠. 그런데 똑같은 그림도 자꾸 계속 보다보면 거기서도 또 얻어지는게 있어요. 어떻게보면 이번 전시회도 박물관장 시절의 경험이 준 산물이예요.”

■ 화가 김재준의 즐거운 설문조사

경쾌하고 세련된 발상이 돋보이는 그의 이번 전시회는 이미 성공작으로 판명나고 있다. 상당수의 작품들이 이미 팔린 상태다. 물론 이것조차 작가 김 교수에게는 일련의 흥미로운 실험이자 테스트의 일부다.

“ 원래는 상업적인 것을 배제하려 했는데 가만히보니 그게 아마추어적인 생각이더라고요. 작품을 팔아보지 않고서는 프로페셔널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었죠. 전업작가는 작품을 팔아서 생활과 작업을 해결하는 이들이쟎아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실제로 팔리는 작품들을 통해 일반인들의 취향을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설문조사’와도 같습니다. 설문에 응해주신 분들에게 사실 제가 감사해야 할 일이죠.(웃음)”

“ 현재까지 나온 설문조사 결과는 어떤가요?(웃음)”

“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이요? 답은 간단합니다. 뭔가 장식성이 있으면서 동시에 약간 ‘심오한 척하기’ 한 것들, 즉 예쁘긴 예쁜데 그냥 예쁘기만 해서도 안되고 그 뒤에 뭔가 지적인 무엇이 숨어있는 것같은 것들이죠.”

그와의 대화는 풀면 풀수록 점점 멋진 색실이 풀려나오는 실타래처럼 흥미로왔다. 창의적인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이다. 그에게는 미술 외에도 가보고 싶은 길이 많다. 본질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따라가고 있는지 단서도 남겨놓았다.

『 나는 오랫동안 연구하고 실험해왔던 것들을 여기에 고스란히 풀어놓았다. 우리는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날그날을 살아간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얼마나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지 도전해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다. 꽃피지 못하고 잠들어있는 한 사람 몫의 재능과 장조성을 찾고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창조적 인간이다. - 저서 ‘화가처럼 생각하기’ 中 』

이 남다른 ‘동양화 번역가’의 반짝이는 전시회 ‘Heart와 하트’展은 22일까지 열린다.

■ 김재준은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1983).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 박사(1990). 국민대 박물관장 역임(2005-2006). 현 국민대 경제학부 교수. 백해영갤러리 초대전(2002) 등 개인전 다수. ‘漢字와 typography’展(2006)등 단체전 참여 다수. 예술관련저서 ‘그림과 그림값’,‘화가처럼 생각하기’, 공저 ‘언어사중주’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