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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 얻죠’ - 타이어 디자이너 윤성희 / 디자인대학원 (00 동문)

  • 작성자 조영문
  • 작성일 09.04.22
  • 조회수 15229


한국타이어에는 ‘앙프랑’과 ‘옵티모 4S’라는 제품이 있다. 이 제품들이 지난해 독일의 국제 디자인 공모전인 ‘iF 제품 디자인 어워드(iF product design award)’를 수상했다. ‘레드닷(Reddot design awards)’, IDEA(Industrial Design Excellence Awards)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상이라고 불리는 상이다. 그것도 멋진 자동차와 잘 빠진 오토바이를 제치고 두 개의 타이어만으로 ‘운송수단(Transportation)’ 부문에서 얻은 결과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에 앞서 타이어에 디자인이 웬 말이냐는 의문이 생겼다. 검으면 타이어(Tire)요, 반짝이면 휠(Wheel) 아니던가.

“타이어가 이 상을 수상한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동안 타이어는 디자인과 별로 관계가 없는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타이어가 운송수단의 작은 부속품이라는 편견을 딛고, 기술력과 디자인을 지닌 독자적인 제품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국내 최초 ‘IF 제품 디자인 어워드’ 수상

iF 수상작을 배출한 한국타이어 디자인팀 윤성희 과장의 말이다. 타이어 업계 최초 수상이라니, 타이어도 디자인 제품이라는 인식이 세계적으로도 낮은가 보다. 그런데 타이어는 대체 어떻게 디자인하는 것일까. 까만 색깔과 동그란 모양, 고무 재질이면 타이어라고 부르는 그 제품에 디자인이란 말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타이어 디자인은 땅에 닿는 면인 트레드(Tread)와 옆으로 살짝 보이는 사이드 월(Side wall) 부분을 다룹니다. 특히 트레드에 파인 홈의 패턴에 따라 견인력, 제동력, 구심력 등이 달라집니다. 보기 좋으면서도 기능적인 디자인이 요구되는 것이죠.”

땅 위를 구르는 트레드의 복잡한 무늬에도 일일이 이름이 있었다. 회전 방향에 따라 길게 나 있는 홈은 ‘리브 패턴(rib pattern)’이라고 하는데, 이 홈이 차가 옆으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고 소음도 줄여 준다. 회전 방향과 직각으로 나 있는 홈인 ‘러그 패턴(lug pattern)’은 구동력과 제동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두 패턴이 어우러져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편 4각, 6각, 마름모형 등 반복적인 모양을 형성하는 ‘블록 패턴(block pattern)’은 견인성과 제동성이 좋아 겨울용 타이어나 건설용 차량에 사용된다고 한다.

윤 과장의 설명을 듣고 있으려니 디자인에 대해 제대로 알기도 전에 질린다. 타이어 디자이너는 웬만한 연구원 못지않게 자동차공학 관련 지식이 있어야 했다. 윤 과장은 대학에서 전체 170명 중 여자가 단 7명인 자동차공학부를 다녔다. 볼트와 너트가 뭔지도 모르던 신입생은 기계에 관해 두려울 것이 없는 졸업생이 됐다.

“수업 시간에 ‘고속철’을 주제로 프로젝트를 하게 됐어요. KTX가 들어오기 전이라 고속철이 뭔지 모르던 때였죠. 여학생 셋이 일본에 가서 4박5일 동안 ‘신칸센’에서 먹고 자며 고속철을 연구했어요. 학교 때는 늘 부속이나 도구를 구하러 공업사들을 돌아다니고 자동차 튜닝 숍도 숱하게 찾아다녔죠. 한국타이어에 입사할 때 모두가 ‘너 그럴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회사에 들어와서는 모르던 지식을 더 알게 되고, 알고 있던 지식도 다시 배우게 됐다. 디자인은 연구·개발자들과 상의하고 고객과 경쟁사를 시장조사한 후 아이디어를 내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길고 긴 과정이었다. 윤 과장은 디자인 스케치를 큰 회의실 바닥이 가득 찰 정도로 늘어놓고 원 없이 일했던 추억들을 잊을 수 없다.

“경험이 쌓일수록 더 탄탄해지는 직업이 타이어 디자이너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들어와 전략 제품을 개발하는 많은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승용차용, 트럭과 버스용,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용처럼 카테고리가 다른 제품을 한 번에 진행한 적도 있었고요. 오전에는 튜너가, 오후에는 오프로더 운전자가 되어 귀중한 지식을 배웠습니다.”

디자이너로서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성능을 갖춘 타이어에 그에 상응하는 예술적인 감각을 부여해야 비로소 완벽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다. iF 수상작인 ‘앙프랑’은 연비를 개선한 친환경 타이어라는 콘셉트를 살려 디자인했다. 트레드의 홈에 잎사귀 모양을 채용한 것이다. 또 제품 규격을 새겨 놓는 사이드 월의 작은 공간에는 나비의 실루엣을 그려 넣었다.

“친환경이라는 세계적인 추세를 소비자가 원하는 디자인 감각에 맞게 풀어낸 제품이었기에 수상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타이어도 디자인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봐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 다른 수상작인 ‘옵티모 4S’는 사계절용 타이어다. 트레드의 안쪽은 겨울용, 바깥쪽은 여름용으로 디자인해 성능을 극대화했다. 트레드의 좌우가 다른 패턴은 코너링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옵티모 4S’의 비대칭 패턴은 보기만 해도 전천후 타이어라는 인상을 준다.

윤 과장이 아이디어를 얻는 재료는 책, TV, 전시회, 그리고 거리와 사람들이다. 타이어와 전혀 무관한 분야에서 번뜩이는 무언가를 잡아내기 위해 평소 많은 것들을 접하며 생각을 곱씹는다. ‘앙프랑’의 디자인도 그렇게 창조해 냈다.

“광고 사진 한 장을 볼 때도 왜 이 각도로, 하필 이런 부분을 잡았을까, 소품으로는 특이한 걸 썼구나 하며 사소한 부분까지 혼자 생각을 많이 해 봐요. 특히 타이어 쪽으로는 자동차가 전시돼 있는 모터쇼보다 유저들을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경기장에서 더 많은 영감을 받고요.”

계속 노력하는 디자이너로 남고 싶어

그녀는 이제 8년차에 과장이라는 직함도 달았다. iF를 수상하고 나서는 함께 고생한 디자인팀 중에서도 유독 여성이라는 이유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자신만 부각되는 것 같아 민망하다는 그녀는 타이어 디자인이 여성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추천한다. 실제로 그녀의 입사 후 디자인팀에도 여성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세심하게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일이 타이어 디자인이기 때문에 여성과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후배들이 어서 컸으면 하는 욕심에 닦달하기도 하죠. 농담 삼아 제발 살려 달라고 말하는 후배도 있어요.”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개념을 그림으로 남에게 보이고, 논리적으로도 설득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공부가 답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만큼 후배들에게도 때로는 호된 격려를 하는 모양이다.

윤 과장은 배우며 알아 가는 만큼 점점 더 넓어지는 세계가 타이어라고 말했다. 까맣고 동그랗기만 하면 타이어라는 건, 또 다른 세계를 접하지 못한 무지의 소치였다. 윤 과장은 타이어라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디자이너이기보다 계속 노력하는 디자이너로 남고 싶다고 했다.

약력: 2000년 대구가톨릭대 졸업(기계자동차공학부 자동차디자인 전공). 2002년 국민대 디자인대학원 자동차디자인 석사. 2002년 한국타이어 디자인팀 입사. 2005년 한국산업디자인 장려상, 2007년 한국산업디자인 대상, 2008년 iF 제품 디자인 어워드 수상.

출처 :  한국경제 : 기사입력 2009-04-22 11:45
원문보기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50&aid=0000013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