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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한겨레] 순우리말로 풀어쓴 논리학 입문서/김명석(교양과정부) 교수

  • 작성자 조수영
  • 작성일 13.04.15
  • 조회수 10039

우리말길/김명석 지음

이 책, 첫눈에는 참 묘하다. <우리 말길>. 제목 글씨는 무언가를 전복시키려는 듯 스스로 뒤집혀 있다. 부제목은 ‘우리말로 배우는 논리 첫걸음’. 이 책은 순우리말로 쓴 논리학 입문서다. 논리학의 기본 개념을 우리말, 곧 “한글말”로 풀어낸 국내 첫 책이다. 논리학이 철학의 한 갈래라면, 한글은 학술적인 언어가 아니며 철학하는 데는 맞지 않는다는 견해가 엄존한다. 대체 어떤 이들이 이 책을 쓰고 만들었을까?

10일 서울 연희동의 한 골목, 검붉거나 회색 빛을 한 집들 사이에서 녹색으로 단장한 2층짜리 단독주택이 나타났다. 그 2층이 <우리 말길>을 만든 인문학 연구·생산 공동체 ‘생각실험실’의 둥지다. 김명석(43·철학·국민대 교수)씨의 뒤를 따르니 또 다른 세 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김수민(24·사회학), 김가영(24·화학교육), 박주연(23·철학)씨. 이들 넷은 모두 이 공동체의 조합원 겸 연구원이다.

“한국어는 논리적이 아니다는 말은, 우리말 사용자를 외계인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말은 지식인들의 거만함에서 나온 겁니다. 인류의 최소한의 보편성이 논리라고 생각해요. 접속사 ‘그리고’와 ‘또는’의 사용이 그 예입니다. 모든 언어는 논리 체계입니다. 저는 우리말에 숨은 비논리적 요소를 줄이고 논리적 요소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로써 보편적인 논리학을 비추어내는 것입니다.”

김명석씨는 전문 용어를 알아야 논리학을 아는 것이라는 인식은 극복돼야 한다고 했다. “철학 자체가 전문 용어의 학문이 아닙니다. 철학이 발전한 나라를 보면 어느 시점에 모국어로 철학서가 나와요. 프랑스 철학은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을 쓰면서 발전했고, 독일도 칸트가 자국어로 철학을 하면서 철학 강국의 길로 접어든 겁니다. 그런데, 한국은 전문 용어(배움낱말)를 이해하는 사람만 철학을 알도록 돼 있어요. 우리는 전문 학자가 아니면 칸트, 데카르트를 읽을 수 없어요. 프랑스 사람이라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으면서 말이 꿈틀거리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말길>은 말의 길, 곧 말길을 서술하는 책이다. 말길은 생각이 흐르는 길, 곧 논리이다. 책은 “내 생각을 실어 나르는 가장 작은 덩어리는 (낱말이 아니라) 글월이다”고 규정한 뒤 “생각의 올바른 흐름과 올바르지 못한 흐름을 가려 주는 것을 말길이라 부른”다.

지은이는 김명석씨지만, 펴낸이는 김수민·김가영·박주연씨다. 이 셋은 지난 석달가량 원고를 읽고 지은이와 의견을 나누며 책의 편집·출판을 도맡았다. 모든 용어를 순우리말로 하는 데 이견은 없었을까?

김수민씨는 “저희 연구원들이 공유하는 정신 중 하나가 세종주의”라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문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도록 퍼뜨리고자 했던 세종의 정신을 잇고 싶다는 말이었다. 김가영씨는 “이를테면 문장을 글월로 바꿀 것인가, 문장을 그대로 쓰자는 의견도 있었다”면서도 “우리말 논리학이 처음엔 생소했는데, 이 책을 만들면서 말의 의미가 더 직관적으로 와닿는다는 걸 느꼈다”고 했다. 박주연씨는 “예전 한자어 용어보다 한글 방식이 더 쉽다. 가령 ‘~이고’, ‘~이거나’ 같은 용어는 이 말들이 어떤 논리학적 기능을 하는지 훨씬 빨리 파악할 수 있다”고 했다.

김명석씨는 한달 전 국민대 교수로 임용되기 전까지 10년 남짓 시간강사 생활을 해왔다. “생각실험실과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온갖 사람을 만났는데, 철학을 너무 힘들게 공부해요. 몸에 붙지를 않는 것이죠. 한자어와 일본어, 영어로 된 용어 때문입니다.”

<우리 말길>은 논리학의 ‘항진문장’을 ‘반드시 참말’로, ‘연언논법’을 ‘~이고 넣기’로, 첨가논법을 ‘~이거나 넣기’로 바꾸었는데, 읽다 보면, 그 논리가 훨씬 쉽게 이해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생각실험실은 서양 철학의 주요 저작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꿈꾸고 있다. 김명석씨는 이미 빌헬름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을 한자어 사용 없이 번역을 마쳤다고 했다. 그는 “‘우리말로 철학하기 모임’을 해온 학자들이 하이데거 철학을 가지고 활동해왔다면, 저희는 고대 철학, 소크라테스로 가서 그 원전부터 우리말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야만 그걸 가지고 진짜 철학을 하는 사람이 나오고, 비로소 한국에서 고전이라 할 철학책을 쓰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말길>은 올해 국민대뿐만 아니라 서경대에서도 논리학 교재로 사용된다. 이들의 우리말 생각 실험이 한 인문학 공동체의 테두리를 넘어 점점 널리 퍼져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582604.html

출처 : 한겨레뉴스 기사보도 2013.04.12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