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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아시아경제] '충무로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지옥/김도현(경영학부) 교수

  • 작성자 조수영
  • 작성일 14.05.02
  • 조회수 6670

제가 썩 좋아하는 마종기 시인의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의 맨 뒤에는 다른 시집과 마찬가지로 해설이 실려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집을 처음 접했던 고등학생 시절, 그 해설이 좀 이상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납니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은 거기서 "많은 생명의 고통 속에서 허무라는 말의 생명을 겨우 느껴서 부끄럽다"고 고백합니다. 시집과는 별 관련도 없는 사적인 진술인 데다가 무엇이 그리 부끄럽다는 것인지 알 수도 없어서 의아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그때가 80년의 초여름이었다는 것을요.
 
오늘, 다시 그 글을 꺼내 읽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깊이 공감합니다. 40대의 중반에 이르러 이제 그동안 손가락질해대던 기성세대가 바로 저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돼서야 세상의 빈약함을 깨닫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마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그 아이들의 사진과 웃음소리와 카카오톡 메시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우리는 이후에도 전과 비슷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먹고 산다는 것은 끈질긴, 그래서 차라리 신성한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개그를 보고, 불그레해진 얼굴로 노래방에서 마이크도 잡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책임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질문하는 일 말입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아우슈비츠라는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집요하게 탐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프리모 레비라는 화학자는 자신이 겪은 아우슈비츠의 고통을 가능한 한 생생하게 기록하고 증언하는 데 온 삶을 바칩니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책이 대표적입니다. 잊는 편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기억하는 것이 자신의 책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가는 끊임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자살합니다.
 
엠마뉴엘 레비나스라는 철학자도 있습니다. 그는 온 가족을 아우슈비츠에서 잃습니다. 그는 철학을 통해 그 고통의 원인을 묻고 또 묻습니다. 그리고 서양철학의 존재론이 타자와의 관계를 파괴해버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의 유명한 '윤리가 존재에 앞선다'는 명제는 이 같은 고통스러운 탐구의 산물입니다. 그는 심지어 "신은 다른 사람의 얼굴을 통해 말을 건넨다"라고까지 말합니다.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지 않는 것은 신을 저버리는 행위라는 것이지요.
 
무엇보다 한나 아렌트가 있습니다. 아렌트는 악마라고 믿었던 아우슈비츠의 주역 아이히만이 사실 평범하고 친절한, 심지어 교양 넘치는 사람이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아렌트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는지 집요하게 탐구합니다. 사실 저도 요즈음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수많은 어린 생명들의 목숨을 내팽개친 사람들, 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며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게 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렌트는 비판적으로 되묻지 않는 태도가 바로 악의 근원이라고 결론짓습니다. 타고난 악마가 아니라, "우리가 무슨 힘이 있냐"며 시키는 대로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언제든 학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며칠 전 학생들에게 부탁했습니다. 끔찍하다고 외면하지 말고, 이번 일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또 기억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들이 알아챘으면 좋겠습니다. '별 생각 없이' 열심히 살아온 우리가 만든 세상은 딱 이만큼 밖에 안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앞으로 그들이 권력이나 자본이나 연줄의 지시에 대해서도 '왜'라고 물어주길 바랍니다. 그것이 남은 희망입니다.

원문보기 :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4050111260921468

출처 : 아시아경제 기사보도 2014.05.01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