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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김병준의 말] 변화되는 가족, 그 씁쓸함 / 행정정책학부 교수

  • 작성자 김예나
  • 작성일 17.10.25
  • 조회수 5453

[김병준 국민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1954년 3월 휴전 직후의 어수선한 시점에 때아닌 문학 논쟁이 일어났다. 논쟁의 대상은 정비석 선생의 ‘자유부인’. 대학교수 부인이 대학생 등과 춤바람이 나고, 남편인 교수 또한 젊은 타이피스트에게 음심(淫心)을 품는 내용의 서울신문 연재소설이었다.

회를 거듭할수록 인기가 높아졌는데 소위 ‘점잖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게 달가울 리 없었다. 참다 못해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로 후일 법무부 장관을 지낸 황산덕 교수가 3월 1일자 대학신문에 기고를 했다. “대학교수를 모독한 비윤리적인 소설로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열흘 뒤인 3월 11일, 정비석 선생이 서울신문에 ‘탈선적 시비를 박(駁)함’이라는 제목의 반박 글을 실었다. 문학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러는 모양인데, 교수가 그렇게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이에 황 교수는 3월 14일 서울신문에 ‘다시 자유부인의 작가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쓴다. 그리고 이 글에서 한국문학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독설(?)’을 한다. “(이 소설은) 문화의 적이자 문학의 파괴자요,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다.”

그 시절 ‘중공군 50만 명’은 그야말로 더 이상 심할 수 없는 비판이자 욕이었다. 당연히 황 교수 혼자만 그런 게 아니었다.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비판과 비난이 쏟아졌다. 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소설은 결국 교수와 교수 부인 모두 잘못을 인정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때때로 가족 내 갈등이나 불륜을 다룬 요즘 소설이나 영화를 본다. 당연히 ‘자유부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영화 ‘바람난 가족’을 보자. 시어머니는 동네 할아버지와, 남편은 젊은 여자와, 아내는 동네 재수생과 각각 바람이 났다. 가족과 가정은 더 이상 서로 돌보고 아끼는 공동체가 아니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는 공간이고, 가족 구성원들은 여기서 받은 스트레스를 ‘바람’으로 푼다.

바람 피우는 데 따른 권선징악도 없다. 소설 ‘자유부인’처럼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그래서 가족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도 없다. 오히려 서로 헤어지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이런 소설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가 그야말로 한둘이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영화나 소설을 두고 ‘중공군 50만 명’보다 더 무섭다거나, 아니면 ‘조국과 민족의 적’이라 하지 않는다. 더 이상 황산덕 교수나 당시의 ‘점잖은’ 사람들이 살던 그런 세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변해도 많이 변했다. 불륜 이야기가 아니다. 가정과 가족의 의미가 그만큼 달라졌다는 이야기이다. 결혼을 해야 하고, 자식 낳아가며 백년해로해야 한다는 생각도, 형제·자매가 서로 도와야 하고,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는 생각도 예전 같지 않다.

가족제도의 이러한 완화 내지 약화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를테면 혼인율은 낮아지고 이혼율은 높아지고 있다. 소년소녀 가출과 가족 간 법정분쟁 건수가 늘어나고 있고, 독거노인의 수와 노인자살률도 높아지고 있다. 혼외 출산의 비율도, 아직 세계에서 가장 낮은 상태에 있기는 하나 지난 몇 년 동안 그 추세선이 고개를 위로 쳐들고 있다.

추석 이후 흥미로운 기사 하나가 떴다. 설이나 추석에 가족 간의 갈등이 더 늘어난단다. 이번 추석은 연휴가 길어 더욱 그렇단다. 이혼소송 상담 건수만 해도 예년에 비해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혼소송 전문 변호사의 증언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오래, 그리고 같이 있을수록 갈등과 마찰이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세상이 변하고 가족관계도 변했지만 우리가 이를 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 서로 다른 기대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누가 어느 쪽이 되었건 한쪽은 전통적 가족관을 고집하고, 또 다른 한쪽은 새로운 가족관을 제시하며 말이다.

깊어가는 가을, 왠지 씁쓸하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 시대에 있어 가족과 가정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는 것일까? 나와 우리, 그리고 국가와 사회 모두 말이다.


원문보기: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1553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