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 못 한 그가 이번에는 소리까지 질렀다.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며 서성대는 모양새가 나름대로는 부아를 삭여 보려 애쓰는 게 역력했다. 조잡한 뮤지컬이나 뒷골목 포르노 연극 하는 데도 아닌데, 느닷 없이 자동차 시동 소리가, 그것도 몇 번씩이나 초연 무대 연습장에 무단 틈입한 데 대한 바디 랭귀지였던 셈이다.
단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5월 12일 대학로, 러시아인 알렉세이 지미도프(38ㆍ국민대 예술대학 공연예술 학부 연극영화과) 초빙 교수. 신생 극단인 국민대레파토리가 처음으로 갖는 공식 무대를 코앞에 두고 신생 극장(세우 아트센터) 무대에서 마지막 리허설에 여념이 없다.
고향은 물론 미국, 영국 등지에서도 작업해 봤으나 이렇게 황당한 경우를 당한 적은 없다. 아직 터가 덜 잡힌 공연장이라, 미처 주변 정리가 덜 됐던 것이다. 무대에서 마지막 연습에 몰두하다, 자신의 고함에 놀라 있던 배우들에게 그가 말했다. “만의 하나, 공연 도중에 저 소리가 또 들리거든, 아예 너희들 사는 동네가 공장 바로 옆이어서 항상 듣고 사는 소리라고 생각해. 어떻게 해서 이런 곳에 극장이 생겼는지 모르겠군.”그의 말을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배우들에게 꼼꼼히, 동시 통역으로 옮겨 주고 있던 같은 대학 김애자 교수의 음성도 덩달아 올라 가며 급박해 졌다.
- 무대 안팎 장악하는 카리스카
‘성난 얼굴로 돌아 보라’의 리허설 무대에서 뜻밖의 복병이 잠시 연습의 열기를 흐트려 놓은 것이다. 얼마 안 돼 극장측 사람으로부터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란 약속을 받은 그는 “감사합니다”라며 또렷한 한국말로 답하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연습에 몰입했다. 강렬한 핀 조명을 받던 출연 배우 한 명이 위치를 조금 옮겨도 되느냐고 묻자, “지금 그 자리에서 익숙해지도록 애 쓰라”며 단호한 모습을 보인다.
“왜 바보짓 해? 다리는 흐느적대면서 말이야.” 누워 있는 주인공(지미)의 얼굴 바로 위를 스커트 차림으로 걸어 가는 여배우를 호통쳤다. 조금 전의 소동에서 받은 감정이 남아 있다. “너희들 장난 치는 거, 필요 없어. 정확한 시작과 끝을 보여 줘. 마음대로 하려면 나 없이 해.” 모스크바에서 했을 때는 특정 대목에서 완전 나체로 펼쳤던 공연이었다.
연습이 거의 끝날 무렵, TV 방송국에서 뉴스 방영용 촬영을 위해 카메라 팀이 달려 왔다. 그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하이라이트를 떼 내 시연하면서 “편집에 좋을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는 배려도 보였다. 그는 연극 내적으로는 물론 연극 외적으로도, 극장이라는 공간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 여러 곳을 돌아 다니며 연극 작업을 해 온 사람의 연륜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게 해서 1시간 40분동안 펼쳐진 연극은 1956년 영국이 아니라, 바로 이 시대 한국의 반항아를 그려 내고 있었다. 벽에 덕지덕지 붙은 여인들의 사진, 쌍욕이 그대로 들리는 흑인의 랩 송, 전편을 끈적끈적 누비는 재즈, 배우들이 실연해 보이는 노골적 키스(이성애적인 것은 물론, 동성애적인 것까지) 장면 등이 한 데 뭉뚱그려져 무대화해 낸 덕분이다. 보통 2시간 30여분이나 걸려 혹 공연되더라도 실패하기 일쑤였던 원작을 압축하는 데 연출의 초점을 맞춘 것.
“얼마 전 LG 센터에서 공연됐던 나체 무용은 저로서는 받아 들이기 힘든 것이었어요.”본격 인터뷰를 위해 다음날 학교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지금 한국땅을 들썩이게 하는 예술과 성의 문제에 대해 지적했다. 내적 필연성이 최대의 관건이라는 말이다. “성(性)이 무대위로 올라갈 때는 필연적 행위와 연결 돼야죠.” 섹스를 강하게 연상케 하는 대목에서 그가, 또 필연적으로 배우들이 보여 주었던 진지함의 요체는 바로 그 같은 문제 의식을 공유한 때문이다.
“ 한국에서 관객이 꽉 차는 연극 무대란 사실 쇼에 가까운 공연뿐이란 사실이 늘 안타까웠죠.”그가 “ 한국인들은 관객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관극 취향이 좋지 않다”는 비판을 하는 이유다. 뮤지컬 등 감각적 무대만이 전부인 양 득세하는 한국의 연극 상황을 5년째 지켜 본 자의 결론. 그가 강조한 바, “연극은 사람의 영혼을 자극하는 무대가 돼야 한다”는 말은 곧 한국 연극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이다.
그 명제에는 긴 세월이 깔려 있다. 기티스(러시아 종합예술학교 연극원) 배우학과 교수로 있다, 독일(뮌헨 드레스덴 라이프치히) 프랑스(파리) 핀란드(헬싱키) 등지에서 연기를 지도해 온 자의 경험이 뒷받침 하는 말이다. 대졸 후 그가 연극에 바치고 있는 세월은 지금까지 15년.
- 작업하는 사람들과의 교감 중요시
그의 작업 태도는 한국 학생들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다. 졸업생들로 짜여진 출연자들의 말을 들어 보자. “ 배우들을 굉장히 사랑하세요. 카리스마를 갖고 있지만, 부담을 주지 않고 (배우의) 최대치를 뽑아 내시죠. 합숙 훈련 같은 것도 없이 말이죠.”먼저 배우에게 극중 상황을 충분히 이해시킨다는 주연 안지혜(25)의 말이다. 연습중 매순간마다 터져 나오는 예기치 못 한 상황을 무대로 승화시키는 태도 역시 한국 연출가들이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주일에 세 번, 길어야 두 시간씩, 배우의 자발적 연기를 이끌어 내는 연습 방식은 한국 연출가와는 결정적 차이죠. 평생 배우를 할 수 있도록 우리를 교육한 셈이죠.”4년 전 워크샵에서 알게 됐다는 김용민(28)의 말. “무엇보다 먼저, 배우 스스로 무대 상황을 파악하도록 하죠. 배우가 이해 못 한다 싶으면 당장 중지시키시죠.”자신의 지시대로 해 주기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기 일쑤인 대다수 국내 연출가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과의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드미도프의 지론 덕분이다. 학교앞 놀부보쌈집에서 학생들과 보낸 시간, 워크숍 끝내고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한 식구처럼 지낸 시간 등을 경험한 배우들이 그에 대해 보내는 신뢰는 각별하다. 연습이 끝나면 함께 술집으로 가, 보드카와 맥주를 마시며 다져진 사제의 정이다. 언어의 장벽은 그래서 조금도 문제 되지 못 한다.
그는 “한국의 배우는 외국보다 훨씬 솔직하다”며 “특히 윗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각별하다”고 학생들을 칭찬했다. “아이들 같이 착해요.” 학교앞 보쌈집에서 혼자 5인분은 거뜬히 해치우는 그는 거진 한국 사람이 됐다. 그 같은 한국 사랑은 한국 문화속의 풍부한 연극적 자산을 확인하고 더욱 깊어졌다. 삶과 죽음의 세계를 천연덕스레 펼친 연극 ‘흉가에 볕들어라’, 공연을 보고 나서는 더욱 깊어진 풍물과 소리에 대한 사랑….
옛 소련 사람으로서, 그는 당연히 맑시즘을 학교에서 배웠다. 그러나 착실한 학생은 못 됐던 모양이다. “ 그런 강의를 하면 밖으로 슬쩍 나가 담배를 피우거나, 아예 빼먹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자본주의적 질서를 긍정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른바 세계화란 것에 대해 그는 “모든 국가와 민족이 각각 발전시켜 온 긍정적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도외시한, 자의적 구호”라고 비판했다.
그는 “한국 영화 중 ‘태극기 휘날리며’가 정말 좋았다”며 “‘라이언 일병 구하기’보다 감동적이었다. 특히 원빈의 연기는 압권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 한국인들은 고향 사람들처럼 정이 너무 많다”며 내년 2월까지로 돼 있는 초빙 교수 계약 조건이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그 다음의 일은 신의 뜻, 학과장 이혜경 교수의 뜻이죠.” 5월 30일까지 공연되는 이 작품은 9월이면 드미도프의 고향 모스크바로 가서 초청 공연될 예정이다.
- 정 많은 한국사람, 고향 같아 좋아
그에 앞서 6월 23~24일은 국민대대극장에서 알렉산드르 볼로진의 ‘석기 시대’를 공연한다. ‘국민대 젊은 연극제’의 참가작이다. 그렇게 그의 한국 사랑이 깊어 간다. 러시아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만한 책으로, 러시아 작가 루드밀라 울라스카야가 쓴 소설 ‘소네치카’를 권했다.
‘성난 얼굴…’에서 그는 재즈를 배경 음악으로 많이 썼다. “원래 재즈를 매우 좋아 하는데, 특히 오스본의 작품에는 더욱 제격이죠.” 우람한 체구에 섬세한 감성을 지닌 그는 아들이 있다.
“혼인 신고는 안 했지만, 결혼은 했거든요. 신고를 안 하는 게 (아내한테) 자유를 주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 나름대로 진지한 이유가 있다. “결혼으로 묶어 두면, 도망갈 것 같아서요.”그리고는 “러시아를 이해하려면 머리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그가 “매우 아름답고, 매우 사랑한다”고 하는 부인 스비에타 라나는 배우이다. 아들이 하나 있다.
그는 국민대 학내의 외국인 교수 숙소에서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야로슬라브 부가치)와 함께 살고 있다. 연기 수업을 해 나가면서 학생들과 연극제 준비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학생들에게 인기짱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매일 인터넷으로 고향 소식을 확인한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정치적인 이야기는 극히 꺼렸다. “소련의 변화는 사회주의 이래 곪아 오던 상처가 터져 일어난, 필연적인 것”이라는 말에서 힘든 세월이 어설프게나마 읽혀 진다. 북한의 용천 참사 이후 국민대에서 벌어진 기금 모금에서 성금을 내긴 했지만 순전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한, 개인적인 일이었다고 강조했다. 그의 학생 비교론. “독일 剋萱?이성적ㆍ분석적ㆍ논리적인데, 한국 학생은 감성적이죠. 그런데 러시아 학생들은 훨씬 더 감성적이예요. 내가 솔직하다면, 바로 그 이유때문일 거예요.”그런데 프랑스 학생은? “여학생들이 너무 섹시해서 힘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