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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하이닉스의 값비싼 교훈 / 이호선 (법학부 사법학전공 주임교수)

  • 작성자 박정석
  • 작성일 06.03.10
  • 조회수 7632

[한국경제 2006-03-08 17:21]

지금 미국발(發) 반독점행위에 관한 뉴스 하나가 국내 유수한 반도체 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며칠 전 하이닉스반도체의 임직원 4명이 반도체 D램의 가격담합혐의로 미국 법무부로부터 벌금형과 함께 5~8개월씩 실형을 살게 됐다는 소식은 이제 반독점행위를 돈으로만 때우고 지나가는 단계는 지났다는 사실을 뚜렷이 보여준다.

미국에서 반독점법을 위반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법률적인 문제는 법무부에 의한 형사처벌,연방무역위원회(FTC)에 의한 민사소송 및 소비자들에 의한 집단소송이다.

미 법무부에 2005년 4월 하이닉스가 1억8500만달러의 벌금을,그 해 11월 삼성전자가 3억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하면서 2001년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로만 따지면 독점금지법으로 가장 많은 벌금을 낸 1,2위 기업이 모두 우리 기업이다.

그리고 이젠 양벌 규정에 따라 가격담합 행위에 관여했다고 인정되는 하이닉스의 임직원 개인들이 미국 교도소에서 징역형을 살아야 하는 처지까지 됐다.

법인뿐만 아니라 개인에게까지 이렇게 가혹한 책임을 묻는 것은 영미법계, 특히 미국의 형사처벌체계와 무관하지 않다.

범죄행위를 중죄(felony)와 경범죄(misdemeanor)로 이분해 놓은 미국에서는 가격담합(price fixing)을 중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다.

그런데 가격담합은 의도적으로 상호의사소통을 통해 사업자들끼리 구체적인 협정을 했다는 점이 인정되는 경우에만 중죄로 분류된다.

따라서 시장의 선도주자가 내세운 가격을 뒤따라가는 행위는 불법이 아니다.

하이닉스가 저질렀다고 인정되는 행위들은 컴퓨터와 서버 생산업체에 납품하는 과정에서 가격담합을 위한 회의, 대화 및 통신, 가격선 합의, 그리고 결정된 가격 준수를 이행하고 감시할 목적의 정보교환 행위가 포함돼 있었다.

삼성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반독점법 내용과 성격을 파악하고 있었더라면 미련할 정도의 노골적인 행위를 피하면서도 합리적 범위 내에서 시장 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 기업들의 법률적 지식과 사전예방에 대한 무지한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미 유사한 D램 반도체 가격담합행위를 저질렀던 인피니언이나 마이크론 역시 회사의 벌금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징역형을 받은 바 있어 이번 사건을 굳이 한국 기업에 대한 표적처분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반독점법은 법률적 전통이 짧은 미국이 만들어낸 몇 안 되는 20세기 경제 법률 도구 중 하나로서 시장과 소비자보호를 명분으로 가끔 자국이기주의의 도구로 쓰인다는 의심도 받지만 글로벌 시장의 보편적 가치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경쟁자들의 자유로운 시장 진입을 막고 창의와 혁신을 통한 소비자 혜택과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저해하는 반독점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을 통해 기업들은 윤리경영 내지 준법경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할 것이다.

법에 대한 무지와 태만의 대가치고는 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내야 할 벌금 4억8500만달러 및 오로지 회사를 위해 충직하게 일했던 임직원들의 이국땅에서의 감옥살이는 너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기업 리스크 관리 중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해 왔던 부분이 법률 리스크(legal risk)였다.

법률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는 법무팀만이 아니라 마케팅, 심지어 R&D팀까지도 최소한의 법률위험목록 체크를 통한 정기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고 경영진 자신이 분쟁이 터져 법정에 갈 때에서야 전문성도 묻지 않고 판ㆍ검사 출신 변호사만 찾아 '묻지마 선임'을 하는 의식에서 깨어나는 것이 시급하다.

비싼 교훈은 한번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