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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전영우 교수의 ''소나무 교실'' /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

  • 작성자 박정석
  • 작성일 06.04.26
  • 조회수 12945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소나무 교실’은 소나무가 우리
민족의 문명발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문화적 배경과
감상법에 대한 강연과 소나무 심기 체험 등을 해보았다.
지난 4월 15일 토요일 오후 1시. 북한산 기슭에 자리잡은 국민대 캠퍼스 곳곳에는 봄꽃이 수줍은 줄도 모르고 활짝 피어 있었다. 운동장을 끼고 자리잡은 국민대 7호관 입구에 ‘소나무 교실’이라는 안내문구가 겸손하게 붙어 있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이 이 안내문에 따라 서둘러 114호 강의실을 찾았다.

소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들이 ‘소나무 교실’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알음 알음 찾아 오게 된 것. 어림잡아 50여명. 이들이 자리를 잡자 연신 흐뭇한 웃음으로 강의실을 둘러보던 ‘소나무 전도사’ 전영우 교수(55·국민대 산림자원학과)가 대뜸 질문공세에 나섰다.

“소나무를 왜 좋아하십니까?” “오떻게 오셨습니까?” “황금같은 토요일에 뭐하려고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결국 전교수의 막무가내식 질문 폭탄은 “잘 오셨습니다”라는 인사로 마무리 됐다.

그의 질문에 대한 대답도 가지 각색이다. “어릴 때 소나무와 함께 자랐는데 도시로 와서는 구경을 할 수 없다”며 하소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교수님이 잘 생겼다고 해서 확인하러 왔다”고 농을 치는 사람, “귀농을 준비중인데 야산에 소나무를 심고 싶다”는 중년의 부인, 숲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참석자도 있었다. 소나무에 대한 추억 한 두가지는 있을 법한, 나이지긋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상명대, 강원대 등 타학교 학생들의 참석도 눈에 띄었다. 불이 꺼지고 슬라이드를 보면서 소나무에 대한 전교수의 강의가 시작되자 모두들 숨을 죽이고 시선을 모았다.

“이렇게 작은 솔씨에서 종자 깍지를 쓴 떡잎이 나오고, 이 깍지를 뚫고 싹이 트게 되면… 600년이 흘러 이렇게 훌륭한 소나무로 자라게 됩니다.”

슬라이드를 통해 솔씨, 떡잎, 싹이 튼 어린 소나무를 지나 화면가득 기품이 당당한 한 그루의 소나무가 보여지자 모두들 “와아!”하는 탄성을 내질렀다. 비록 사진이긴 하지만 소나무의 피할 수 없는 기세에 압도 당한 셈이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소나무는 궁궐을 만들고, 배를 만드는 유용한 자원이기도 했지만 임금의 옥좌 뒤 그림인 ‘일월오악도’에서는 생명의 나무로 상징되기도 했습니다. 물질적 유용성이 정신적 세계까지 지배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한국사람들은 소나무와 소통하길 원하고 있다는 겁니다. 옛날 나무에 벼슬을 주듯(정2품 송) 재산을 소나무에 물려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소나무에 막걸리를 공양하고 있습니다.”

우리조상들은 소나무에 유별난 의미를 부여했고 지금까지도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소나무는 중요한 문화코드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이다. 전교수는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앞에도 다른 나무가 아닌 소나무가 심어져 있다”면서 “길지(吉地)와 생기(生氣)를 스스로 뿌리내려온 소나무를 국목(國木)으로 정해 체계적인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소나무 시인 박희진 씨가 ‘소나무 감상법’에 대해 강연했다. 박씨는 “한국의 소나무는 세계적인 수종”이라며 “소나무 왕국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자손 만대에 전해야 한다”며 말문을 떼었다.

“소나무에는 멋과 운치가 있는데 이를 송격(松格)이라 합니다. 이른바 명품송이란 이 격과 운치가 각별히 뛰어난 소나무를 말합니다.”

우리가 소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소나무의 만고상청(萬古常靑) 생명력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백산이라는 곳에는 반만년의 수령을 지닌 소나무가 건재하다”고 전했다. 이어 박씨는 소나무는 빛깔과 모양새에 따라 이름을 달리하며 바닷가 소나무는 해송, 내륙은 육송, 빛깔이 흰 것은 백송, 붉은 것은 적송, 검은 것은 흑송, 금강송, 와송 등이 있으며 이중 허리를 꼿꼿이 죽죽 뻗어 자라는 소나무를 ‘강송’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이어 그는 “씨앗이 어디에 떨어지건, 옥토이건 암벽이건 묵묵히 수용해 운명을 사명으로 바꾸는 영물이 소나무”라며 “소나무는 인간에게 스승”이라고 하자 참석자들이 일제히 공감하는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 시간에는 소나무씨앗을 직접 심어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300년 된 금강소나무 한 그루가 2000만원이 넘는가 하면 2억여 원에 팔린 소나무도 있습니다. 보잘것 없는 종자 하나로 몇 백년 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1회용 종이컵에 흙을 꾹꾹 눌러 넣고 금강소나무 씨앗을 정성스럽게 심어본 참석자들은 새삼 소나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올 때 빈손으로 왔던 이들이 돌아갈 때는 금강소나무 한 그루씩을 가슴에 안고 돌아갔다.

이날 참석한 대학생 김현석(상명대 조경학과 4)씨는 “중등교육 환경교육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중”이라며 “강연을 통해 활용할 수 있는 부분들을 얻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함께 온 홍성창 씨 또한 “환경교사를 꿈꾸고 있어 우리문화와 환경을 어떻게 접목시키고 실천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밝혔다.


■ 인터뷰 - 국민대 전영우 교수

“젊은 세대들은 어떤 것이 우리나라 진짜베기 소나무인지 모릅니다. 소나무가 우리 정신문화에 어떻게 뿌리박혀 있는지, 어느 정도의 위기상황인지 알지못합니다. 이러한 행사를 갖게 된 것은 무관심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나무가 생명문화 유산의 상징이라는 것을 체계적으로 알리고 재선충으로 죽어가는 소나무에 대한 관심을 모아보자는 의미에서 ‘소나무 교실’을 열게 됐습니다.”

올해로 15년째 ‘소나무 전도사’를 자처하고 소나무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전영우 교수.

그는 “소나무 재선충병의 확산으로 우리 나라 소나무가 전멸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전교수는 “우리의 소나무가 어떤 지경에 있는 지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하면서 “재선충 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국민의 무관심”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50년 전만 해도 우리 국토 산림면적의 60%가 소나무숲으로 울창했으나 현재는 25%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10년 동안만 하더라도 서울 면적의 4.2배에 달하는 소나무숲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 이에 보다못한 전 교수는 1992년 ‘숲과 문화연구회’를 결성했고 99년에는 국내 최초로 숲 해설가 양성교육을 실시했다. 또한 지난해에는 2년에 걸쳐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천연기념물 소나무 41그루를 직접 촬영하고 얽힌 이야기를 취재해 ‘한국의 명품 소나무’라는 책을 발간했다. 2년 전에는 ‘솔바람 모임’을 만들어 소나무 생태기행을 매월 한 번씩 다니며 현재 홈페이지(www.solbaram.or.kr)를 통해 ‘소나무 살리기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소나무를 국목(國木)으로 정하는 관련법 제정 주장도 그의 몫이다. 전교수는 “소나무를 국목(國木)으로 정하는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상징적 효과가 클 것”이라며 “아무래도 법적인 장치가 마련되면 예산이나 인력 등 적극적인 투자가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의 소나무 사랑은 학교 안에서도 실천되고 있다. 이번 학기에 신설된 ‘북한산 녹색자습’은 전교수가 직접 개발한 북한산 등반코스를 통해 자연과 교감하고 느낀 소감을 발표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곳곳에 번호를 매겨 놓고 학생들이 등반하면서 정해진 지점을 직접 찾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마치 보물찾기 하듯 진행하는 수업이다.

“깜짝 놀랐습니다. 생각보다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어요. 태어나 처음 산에 올라가 봤다는 학생도 있었고, 처음엔 억지로 산에 올랐지만 막상 산에 올라와서의 벅찬 감동을 써내려간 학생의 글을 보고 많은 걸 느꼈습니다. 미래가 불투명한 그들에게 정신적인 여유를 줄 수 있는 길은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 뿐입니다.”

그는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맨발로 걸어봐라, 나무와 이야기 해봐라, 한 밤중에 북한산에 올라봐라…그래서 소나무 처럼 느리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자연이 무엇인지 느껴보라는 것이 전교수의 바람이다. 전영우 교수의 연구실은 온통 소나무 천지다. 크고 작은 소나무 사진이 벽면에 가득하고 얼굴 크기만한 것에서 부터 갓난아기 주먹만한 솔방울이 바구니에 가득 하다. 솔바람 처럼 천천히 그는 말한다. “소나무는 한 해 두 해 사는 생물이 아닙니다.200년 300년 느리게 삽니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를 추구하는 우리 사회에서 소나무를 통해 자연과 소통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를 배웠으면 합니다.”

채향란기자/rani6@segye.com


( 2006/04/24  1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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