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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중앙시평] 무지와 부패의 통제 / 조중빈 (정외) 교수

  • 작성자 조영문
  • 작성일 06.10.27
  • 조회수 6453
[중앙일보 조중빈] 훌륭한 정치가를 뽑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후보자들을 모아놓고 시험을 보게 하면 어떨까? 엉뚱한 생각 같지만 머지않은 과거에 이런 생각은 상식이었다. 과거제도를 생각해 보라. 옛날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는 사람을 평가하는 데 시험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입학시험, 입사시험, 공무원시험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이를 입증한다.

그런데 왜 정치에는 이런 기준이 적용되면 안 될까? 물론 민주주의 원리 때문이다. 민주주의에는 정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그렇다고 아무나 정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능하고 훌륭한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기대, '시험은 보지 않으면서도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생긴 것이 정당이다.

일반 유권자는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질 시간적 여유도 없고 복잡한 정치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전문지식도 부족하다. 그래서 정당에 이 짐을 지워준 것인데 이 점에 있어서 현대정당의 실적은 동서를 막론하고 낙제 수준이다. 좋은 사람 골라오라고 했더니 끼리끼리 나눠 먹는 정치를 자행하니 유권자가 분노하고, 이럴 바에야 직접 챙기겠다며 생각해 낸 방법이 미국의 오픈 프라이머리인데 지금 한국에 상륙해 있다. 여기서 그 복잡다단한 미국의 후보자 선출 방식을 소개할 필요는 없다. 다만 확보하라는 전문성은 오간 데 없고 부패와 비도덕이 난무하자 참여가 폭발한 것으로 보면 된다.

열린우리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이라는 승부수를 던졌고, 한나라당은 이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후보자 공천 과정의 개방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정당이나 후보자 간의 전략적 선택에 관심을 쏟기 전에 생각해 보아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다. 우선 우리 앞에 놓인 공천 개방화 선택지들이 가지는 논리구조를 밝혀야 한다. 다음으로 선택지들을 어떻게 조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 밝혀야 한다. 이런 준비를 지금 해 두지 않으면 폭우에 도로가 쓸려내려가듯 민주화의 급류에 익사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 여론조사로 후보자 선출하는 것을 보고 '못 말리는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천한 우리나라 여론조사의 역사 때문만이 아니다. 표본조사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오차의 위험성을 과감하게 집어 삼키는 한국인을 말함이다. 조사의 노하우가 속히 쌓이기만 바랄 뿐이다. 장점도 있다. 투표장에 나가는 사람이 반드시 유권자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없는데 여론조사는 그 대표성을 보다 잘 확보해 준다. 다만 투표장에 나가지 않는 것도 정치적 의사표현이라는 민주주의 이론은 수정해야 한다. '투표장에 안 나갔다고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민주적이 아니다'라고 말이다.

다음으로 국민경선이라는 방식이 있는데 여론조사 방식과의 유사점은 투표자가 반드시 당원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픈' 프라이머리인 것이다. 차이점은 직접적인 참여의사만 반영된다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대표성은 저하된다. 이 방식의 가장 큰 논리상 문제는-여론조사도 마찬가지지만- 왜 정당의 일에 일반국민이 간섭하느냐는 것이다. 정당은 헌법기관으로서 당파적 이익과 국민적 이익에 관여한다고 할 수 있는데 당파성의 폐해가 심각해져서 국민이 치유에 나섰다고 주장할 수 있으나 완벽하게 방어하기는 힘들다.

이런 선택지들을 어떻게 조합해야 실질적.논리적 약점을 극복하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여당의 완전 국민경선제는 앞에서 본 논리에 비춰보았을 때 정당의 소멸을 예고하고, 무지와 선동의 희생 제물이 될 수 있다. 체육관에서 벌이는 후보공천은 부패와 폐쇄의 늪에 빠져있는지도 모르는 가운데 정당을 안락사시킬 수 있다. 후보자 공천제도와 관련해 우리가 고민해야 할 일은 어떤 공천 방법들의 조합이 무지와 부패를 통제하는 가운데 참여와 전문성을 제고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최적의 조합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필자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자격검증은 해야 되지 않나?'

조중빈 국민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