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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론스타 수사를 보는 두 시각 / 함영준 (언론정보학부) 교수
검찰의 론스타 수사를 지켜 보면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교차된다. 첫째는 외국 대형 금융자본이 한국에 들어와 장난질을 치고 국부를 유출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여기에 한국의 내로라하는 경제인들이 끼여 방조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다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검찰의 수사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으며 엄정 수사를 바라는 마음 그지 없다.
반면 혹시 검찰이 이런 국민의 법 감정에 편승, ‘포퓰리즘(populism)적 수사’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든다. 론스타가 부실에 빠진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는 가만 있다가 이제 돈을 벌어 흑자를 내니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아 ‘파렴치한 기업’으로 매도해 쫓아내는 곳이 한국이라는 오해를 받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수사는 엄정해야 한다. 그러나 여우와 뱀처럼 지혜롭게 처신해야 한다. 상대는 세계적 금융집단이다. 뉴욕 월 스트리트에서 론스타는 나름대로 영향력과 말발을 가지고 있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뉴욕 자본가들은 한국 검찰 말보다 이웃 론스타 주장에 맞장구를 칠 게 뻔하다.
엄정하고도 지혜롭게 수사해야
국제 금융가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들도 많다. 그런 만큼 치고 빠지는 데도 귀신이다.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분식(粉飾)시키는 기술에선 정치가를 능가한다. 그들 뒤에는 거물 변호사들이 즐비하게 포진해 있다. 우리의 명백한 ‘정의(正義)’가 그들에 의해 명백한 ‘불의(不義)’로 둔갑할 수 있다.
한국 검찰이 국내적 시각과 잣대로 이 사건을 다루다가 큰 코 다칠 수 있다.
지금까지 검찰 수사는 국내적으로는 어느 정도 박수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국제적으로는 아직 ‘퀘스천 마크(Question Mark)’다. 국제적 여론을 의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사건은 한 비리 사건 수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세계화, 투자적합 여부 등을 가늠하는 결정적 잣대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는 그리 스마트한 편은 아니었다. 국내적으로도 관계자 영장 청구를 놓고 법원과 계속 티격태격을 벌였다. 영장 기각은 법원 고유의 권한인데도 검찰은 이를 부인하는 듯한 태도와 감정적 격앙을 보였다. 이런 모습들을 국제 금융계에서 놓칠 리 없다.
더구나 외국의 사법관행은 한국과 다르다. 우리나라는 웬만하면 인신을 구금하는 ‘구속’ 관행에 익숙하지만 구미 각국은 ‘불구속’ 수사 관행이 보편적이다. 더구나 도주할 우려가 없는 월 스트리트 재산가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검찰이 론스타 수사를 본격화한 지난 7월부터 국내 외국자본은 계속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론스타 수사 때문에 외국투자가 빠져나가고 신규투자가 줄어든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파이낸셜 타임지등 외국 언론들은 “과연 한국이 투자 대상지로 적당한 나라인 지를 국제금융가들이 따지고 있다”고 전한다.
검찰이 ‘정의’를 상징하지만
검찰 수사는 신중해야 한다. 소수에 불과하겠지만, 과거 검찰이 권력이나 포퓰리즘에 영향을 받고 행한 수사를 국민들은 알고 있다. 또 “조사하면 다 나와”식의 후진적 수사관행이나 목격자 진술 등을 유력한 증거로 삼는 전례가 아직 사라졌다고도 보지 않는다. 바로 전 정권에서 검찰 고위간부를 지낸 인사가 자신에 대한 수사를 놓고 최근 “검찰 수사가 이럴 줄은 몰랐다”고 발언한 것이나 “검찰 수사기록을 보지 말라”고 한 대법원장의 발언은 한쪽 귀로 흘릴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검찰은 ‘정의’를 상징한다. 양식 있고 대쪽 같은 검사들도 많다. 그러나 정의는 독점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간의 끊임없는 견제와 비판, 균형잡기 속에서 정의에 접근되는 것이다. 론스타 수사도 마찬가지다. 검찰 식 수사만이 정의는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