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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철밥통'이 깨지는 소리 / 홍성걸(행정)교수
서울시가 무능하거나 게으른 공무원을 퇴출하겠다고 발표하자 국민은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를 반영하듯 서울의 25개 자치구는 물론 인천이나 울산, 전남 고흥 등 공무원 퇴출제도 도입을 서두르는 자치단체가 20군데를 넘는다고 한다. ‘철밥통’이라던 공무원 조직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는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오륙도’와 ‘사오정’을 넘어 ‘이태백’에 이르기까지 실업과 관련된 자조적 상징어들이 속속 등장했다. 언제 그만두어야 할지 모르는 직장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도 정규직보다 훨씬 적은 봉급을 받는 비정규직 종사자들은 오늘도 정규직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공무원만은 파면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지 않으면 정년이 보장되는 안락한 삶을 살고 있다. 게다가 퇴직 후에도 일반 국민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받고, 이를 위해 해마다 막대한 공무원 연금의 부족분을 세금으로 보충해 주고 있다. 그러니 요즘처럼 살기 힘든 세상에 무능 공무원 퇴출이라는 소식만큼 기분 좋은 뉴스도 그리 흔치 않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무능한 공무원을 퇴출시키는 것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어떤 공무원이 무능하고 게으른 공무원인가를 누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것인가. 만일 누군가가 이 제도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면 공직사회의 줄세우기가 만연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공공부문의 특성에 따라 성과 평가가 쉽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평가기준이 모호하다면 그 결과에 승복할 수 없을 것이고, 평가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다면 그 또한 신뢰받지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일리 있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성과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투명하고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평가기준과 지표를 도입해 상급자만이 아니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위원들이 참여하는 위원회를 통해 합의제로 결정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평가 결과에 대한 불복이나 소명절차를 통해 스스로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당사자들을 구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규모 시험적 시행을 통해 예상되는 문제점을 확인하고 이를 보완해 보다 완결된 제도로 출발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문제는 퇴출제도에 대한 공무원들의 과도한 피해의식이다.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공무원이 된 대다수 우수 공무원들은 퇴출대상이 될 수 없다. 자나깨나 주민의 입장에서 보다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공무원이 퇴출당할 리가 있겠는가. 무능하고 게으른 공무원으로 퇴출대상이 될 사람들은 아마도 조직 전체에서 하위 5%나 10%에 해당할 것이다. 실제로는 이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단번에 퇴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단 단순업무에 배치했다가 일정 기간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으면 보직을 박탈하고, 그 후로도 일정 기간이 지나야 퇴출당한다. 한번 무능하고 게으르다고 평가됐다 하더라도 본인의 노력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시 평가를 잘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각종 포상제도와 함께 이 정도의 긴장감과 경쟁은 조직의 성과 제고에 꼭 필요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공무원 노조는 공무원들을 단체장의 사병화하려는 의도라면서 반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전혀 다른 말은 아니지만 단체장의 부당한 인사조치에 대한 구제 절차는 이미 마련돼 있다는 점에서 이는 과도한 주장이다. 국민은 공무원 노조의 이러한 주장을 ‘밥그릇 지키기’의 전형으로 보고 있다. 만일 공무원 노조가 일부 공무원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부추겨 퇴출제도의 도입 취지나 장점을 외면하고 잠재적 문제만을 확대 해석해 반대로 일관한다면 공무원 노조 스스로 국민에게 외면받게 될 것이다.
원문보기 : http://www.segye.com/Service5/ShellView.asp?TreeID=1052&PCode=0007&DataID=20070311122700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