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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Sensibility] 한국車에 `날개` 달아준 이탈리아 巨匠들 / 구상 (자동차ㆍ운송디자인학과) 교수

  • 작성자 박차현
  • 작성일 14.07.08
  • 조회수 6035

◆ 구상교수의 車 디자인 ◆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고유모델을 개발한 나라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고유모델을 선보였다.

한국 이후 고유모델을 제대로 개발한 나라는 없다. 이는 독자적인 차량 개발이 기술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개성 있으면서 균형 잡히고 아름다우면서도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는 모순 같은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디자인 난제도 독자 개발을 힘들게 한다.

1980년대까지 세계 각국의 자동차메이커들은 독자적인 디자인 개발을 이탈리아 거장 디자이너의 손을 빌려 해결했다. `용병`을 쓴 셈이다. 현대자동차와 대우자동차도 마찬가지였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의 디자인 노하우를 어깨너머로 배워 1990년대 이후 한국 자동차 디자인과 자동차 산업이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 자동차 디자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탈리아 디자인 업체는 이탈디자인과 베르토네다. 이탈디자인을 이끈 조르제토 주자로는 1975년 출시된 한국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디자인했다. 주자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자동차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그는 200종 이상의 차량을 디자인한 거장 중의 거장이다.

현재 77세인 그는 폭스바겐 디자인그룹의 일원이 된 이탈디자인을 이끌면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자로 디자인의 특징은 세련된 기하학적 조형감각을 가지면서도 양산에 전혀 무리가 없다는 점이다. 포니 및 포니2 디자인을 보면 기하학적인 모서리와 볼륨감 있는 차체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완성돼 있다.

베르토네는 대우자동차(현재 한국지엠)가 1990년 내놓은 첫 고유모델 `에스페로`를 디자인했다. 베르토네는 일필휘지(一筆揮之)의 감성적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았다. 설립자는 조반니 베르토네다. 그의 아들 누치오 베르토네가 1952년부터 회사를 책임졌다. 베르토네의 수석 디자이너들은 천재적인 조형감각으로 창의성 높은 디자인을 내놓으며 명성을 쌓았다. 주자로도 베르토네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에스페로는 C필러(뒷문과 뒤 유리창 사이의 기둥)를 유리로 감싸 날렵한 세단 이미지를 연출했다.

에스페로 차체는 직선적이면서도 쐐기 모습이고 라디에이터 그릴이 없는 노 그릴(no grill) 형태다.

같은 시기에 베르토네가 작업했던 시트로엥 XM 모델과 동일선상에 있는 디자인이다. 에스페로는 유럽 감각의 디자인을 국내에 보여준 승용차로 평가받는다.

이탈리아 자동차 디자인 맞수인 이탈디자인과 베르토네는 각각 보편적 세련미를 지닌 디자인과 직관적이면서 미래적인 디자인이라는 대조되는 특징을 지녔다. 두 업체의 서로 다른 디자인 감각으로 개발된 포니와 에스페로는 결과적으로 한국 자동차 디자인이 같은 아시아 국가이면서 자동차 선진국이었던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줬다. 일본 차와 명확히 대조되는 한국 차만의 디자인 특성을 형성하는 계기도 됐다.


 

 

 

■ 그때 그시절 국가대표 한국車

현대자동차는 1975년 10월 30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제55회 토리노 국제자동차박람회에 포니 해치백과 포니 쿠페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포니(pony)는 조랑말이라는 뜻이다.

포니 해치백은 미쓰비시 새턴엔진(수랭 4기통 1238㏄)을 얹었다. 최고출력은 80마력(6300rpm), 최대토크 10.8㎏ㆍm(4000rpm), 최고속도는 시속 155㎞였다. 플랫폼은 미쓰비시 랜서 것을 이용했다. 전진 4단과 후진 1단으로 작동하는 수동변속기도 장착했다. 현대차는 1975년 12월 울산에 연산 120만대 규모 공장을 세운 뒤 이듬해부터 포니를 생산했으며 판매 가격은 227만원이었다. 포니는 시판 첫해에 1만726대가 판매됐고 시장점유율은 43.5%에 달했다.

현대차는 1976년 7월 남미 에콰도르에 포니 다섯 대를 처음 수출했다. 이후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 국가를 확대했다. 수출대수는 1976년 1019대, 1977년 4523대, 1978년 1만2195대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1977년 왜건과 픽업트럭 등 포니 가지치기 모델로 내놨다. 포니는 1990년까지 총 15년간 판매됐다. 국내 판매대수는 48만여 대, 수출대수는 26만여 대로 집계됐다.

대우자동차는 1980년대 말부터 현대차에 중형차 시장 선두 자리를 빼앗기자 위기 의식을 느껴 소형차 르망과 대형차 로얄 중간 크기로 포지셔닝된 에스페로 개발에 나섰다. 에스페로는 `희망하다` `기대하다`는 뜻을 지닌 스페인어다.

에스페로는 비교적 싼값에 중형차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준중형차로 인기를 모았다. 해외에서는 비슷한 가격의 동급 차량들보다 편의 장비가 잘 갖춰진 차로 평가받았다. 영국 자동차 전문지인 오토익스프레스는 최우수차로 선정하기도 했다.

초기 에스페로는 르망 임팩트에 쓰였던 100마력의 2.0ℓ CFI 엔진을 얹었다. 1991년에는 대우가 영국 로터스 자문을 받아 독자 개발한 1.5ℓ DOHC 엔진을 추가했다.

에스페로는 1990년 9월부터 1996년 11월까지 54만대가 생산됐고 이 중 23만대가 수출됐다. 1997년 2월 후속 차종인 누비라가 출시되면서 단종됐다. 
 

 
   

원문보기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4&no=966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