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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논쟁] 사법시험 존치, 어떻게 봐야 하나/이호선(사법학전공) 교수
최근 법조계를 중심으로 사법시험을 존치시키자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2017년 폐지될 예정인 사법시험을 유지함으로써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과 병존시키자는 것이다. 존치론자들은 “서민층이 법조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막아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조인 양성 통로를 두 개로 분산시킬 경우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양쪽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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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없어도 법조인 되는 길 열어둬야 한다
로스쿨에서만 판·검사, 변호사를 배출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의 사법시험 폐지
논거는 로스쿨에서도 장학금 확대로 사회적 약자를 충분히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사법시험 준비 역시 적지 않은 돈이 드는 상황에서 기회
균등이 별로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의사 같은 전문직에도 우회 통로가 없는데 굳이 사법시험이란 또 다른 길이 필요한가, 그리고 사법시험을 존치하면
로스쿨 체제가 흔들리는 것 아닌가 등으로 요약된다. 마지막 논거 하나만 그나마 읍소로서의 설득력이 있을 뿐 나머지는 빈약한 억지에
불과하다.
대학원 체제인 로스쿨에 들어가려면 적어도 학부를 졸업해야 하고, 그것도 명문대 학부를 졸업한 자라야 가능하다. 서민층은
물론이고 중산층도 1억원에 육박하는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출을 받아 공부한다고 해도 그 빚이 어디로 가겠는가. 심리적 불균등과
직업적 포부의 좌절을 로스쿨로 메우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로스쿨에 내야 하는 고액의 학비를 아르바이트라도 해가면서 공부할 수 있는
사법시험 비용과 비교하는 건 견강부회의 극치다. 사법시험 폐지론자들은 지금도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사람들 중에는 로스쿨 체제하에선 법조계 진출을
꿈도 못 꾸었을 사람들이 숱하게 많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고 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임상시험을 해야만 하는 직업과 칠판과 책만
있어도 되는 직종은 구분돼야 한다. 우리 사회의 전문 자격증 가운데 응시 자격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소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법조 기둥이
특별히 응시 자격 제한이 없는 사법시험을 통해 잘 배출돼 오지 않았는가. 의사도 의과대학에서 양성되는데, 왜 변호사만 대학원 체제로 가야
하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사법시험 폐지와 그 대안으로 로스쿨 도입이 주장됐을 당시 명분은 대학의 서열화 방지, 국민에 대한
양질의 법률서비스, 법학 교육의 정상화, 고시낭인 양산으로 인한 인적 자원의 왜곡 방지였다. 이제 로스쿨 2기 변호사를 배출한 시점에서 보면 이
모든 장밋빛 청사진은 허구요, 심하게 말하면 사기극임이 드러났다. 변호사시험은 치르기도 전에 사전에 합격률을 보장해 준다. 75% 이상으로 아예
못박고 있다. 작년 경쟁률은 1.1 대 1이었고, 올해는 1.3 대 1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로스쿨 교수와 학생들은 합격률을 더
높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본인에게도 변호사시험 성적을 공개하지 않도록 하는 법규정에 따라 누가, 왜 법원과 검찰로 임용되는지
모른다.
객관적으로 아는 건 출신 학부와 그 부모와 집안 배경이다. 지방대와 비SKY(서울·고려·연세대) 출신의 수도권 로스쿨
진학과 법원, 검찰, 대형로펌 진출은 사법시험 출신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양질의 법률서비스에 관한 논의가 로스쿨 측이나 로스쿨 도입을
앞장서서 주창했던 일부 시민단체의 입에서 쏙 들어간 지 이미 오래다.
과거 우리는 “돈 있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돈 없어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황금률을 신뢰했다. 사법시험 폐지는 “돈과 백(배경) 있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없고, 돈과 백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세상”이 활짝 열린다는 걸 의미한다. 무능, 단견, 무책임, 그리고 소수의 탐욕이 빚어낼 이 참사를 막기 위해 적어도 로스쿨과
사법시험이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길을 터놓아야 한다.
원문보기 :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aid/2013/05/11/11092029.html?cloc=olink|article|default
출처 : 중앙일보 기사보도 2013.05.11 0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