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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금속공예가 김승희 "'김승희브로치'남대문 카피많지만 개의치않아요"/(금속공예학과) 명예교수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금속공예가 김승희(66·국민대 명예교수)의 동행전이 7일부터 열린다.
'시작하다, 피어나,감싸다, 동행하다'주제로 장신구 브로치와 목걸이로도 사용할수 있는 작품 50여점을 선보인다.
천연석의 신비한 색감과 은의 고유한 광택이 감각적으로 어울린 작품은 공예장신구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2001년 선화랑 고 김창실 사장의 안목으로 상업화랑에서 처음으로 금속공예전을 연 작가는 이후 국내 1세대 금속공예가로 자리매김했다.
금속공예의 틀을깼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장신구는 이미 남대문에서 카피가 나올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박근혜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찬 (남대문에서 샀다는)브로치도 작가의 제자가 만든 작품이다.
현재 '김승희표 브로치 스타일'은 만원이면 주고살 수 있는, 좌판 어디에서든 볼수 있는 '싼 제품'이지만 작가는 '카피'에 대해 관대함을 보였다. 전시때마다 팜플릿이 동이 나는 이유도 처음엔 몰랐다. 팜플릿의 장신구 작품은 '베끼는 상품'이 됐고 저작권때문에 우여곡절을 겪기도했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이 기쁘기도 하고 브로치를 만드는 사람들이 대부분 제자이거나 후배여서 금속공예가 좀 더 발전하길 바라는 마음이 더 많다.
작가는 자신의 오리지널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강하다. "카피는 대부분 조잡하죠. 제 작품은 쉽게 구할수 없는 재료와 섬세하게 각진 부분등 남들이 따라올수 없는 디테일이 강합니다."
금속공예가로 거듭난 건, 1970년대 미국 유학을 하면서다. "한국의 금속공예는 어때?"라는 질문을 받을때마다 제대로 된 답변하나 못하고 얼굴만 붉혔던 뼈아픈 기억때문이었다.
귀국후 한국 금속공예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을 발견하면서 우리나라는 '금속공예의 나라'라고 정의했다.
"중국은 대나무를, 일본을 옻칠나무를 쓰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정조시대부터 금속수저를 사용한거 아세요?"
작가는 "외국인 친구들도 세계어느나라를 다녀도 금속수저를 쓰는 나라는 너희나라밖에 없다고 하더라"며 금속공예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금속공예가는 아니었다. 1980년대 그는 상류층에게 인기있는 은수저,반상기,구절판 첫대등 우리나라 전통식기를 제작했었다. 공방도 생기고 경제적 여유가 생겼지만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2001년 고 김창실사장이 "전시한번 해보자"는 인연이 지금껏 이어지고있다. 2001년 '너와나'라는 주제의 브로치 전시회는 도장을 파고 남은 파편 마노를 소재로 했다는 것으로 버려진 재료의 재활용으로 당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고 진주와 다이아몬드에 열광했던 사모님들에겐 그의 천연석 브로치와 목걸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화랑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공예 장신구'는 시적인 제목까지 더해져 예술품으로 뛰어올랐다.
이번 전시 '동행'전은 2001년 발표했던 '너와나', '특별한 만남'(2011)에 이은 연장선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작지만 삶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미니어쳐 조형물로 보인다. 전시에는 남성용 장신구-부토니에도 선보인다. 7,12일 전시장에서 작가와의 이야기시간도 마련됐다. 전시는 18일까지.(02)734-0458
원문보기 : http://www.ajunews.com/kor/view.jsp?newsId=20130606000185
출처 : 아주경제 기사보도 2013.06.07 08: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