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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불교국교설은 史實무근 수신은 불교, 통치는 유교/박종기(국사학과) 교수
불교가 고려의 ‘국교(國敎)’라는 주장(이하 불교국교설)은 정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언제, 누가, 어떤 근거로 이런 주장을 했느냐는 의문을 풀어줄 분명한 글은 고려사 연구자인 필자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국교설은 마치 신비주의자의 주술처럼 구전돼 사학자들조차 그런 주술에 휘둘리고 있다. 역사학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이다.
국어사전에, 국교는 ‘국가에서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여 보호되고 공인된 종교’라고 나와 있다. 국민이 전부 믿어야 하고, 그 종교의 일(敎務)을 나라의 일(國務)로 취급하는 종교가 국교다. 특정 종교의 이념과 정신이 법과 제도에 반영되어 국가의 통치 이념과 원리가 돼야 국교란 지위가 부여된다는 말이다. 고려 불교국교설을 당연시한 글들 가운데 많이 인용한 근거를 꼽자면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943년)다.
“6조, 내가 지극히 원하는 것은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이다. 연등회는 부처를 섬기는 것이고, 팔관회는 하늘의 신(天靈)·오악(五嶽)·명산(名山)·대천(大川)·용신(龍神)을 섬기는 것이다. 후세에 간신들이 (두 행사를) 더하거나 줄이자고 건의하면, 마땅히 금지하게 하라. 나 또한 처음부터 맹세하기를 (두 행사의) 모임 날은 국기(國忌: 국왕 등의 제사)를 범하지 않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길 것이다. 마땅히 경건하게 행사를 치르도록 하라.”
태조 왕건은 연등회와 팔관회를 중시하고, 반드시 시행할 것을 주문했다. 국왕과 백관이 사원에서 행사를 치른 연등회는 고려의 대표적인 불교행사였다. 연등회 말고도 고려가 불교를 중시한 예는 많다. 돌아가신 왕들의 영정은 주로 사원에 모셔져 사원에서 선왕(先王)의 제사를 치렀다. 고려는 불교와 승려를 위한 여러 제도를 만들었다. 과거시험에 승려를 위한 승과(僧科)를 두었다. 승려들은 승과를 통과해야 사원의 주지 등에 임명되었다. 또한 왕사(王師*왕의 스승)나 국사(國師*나라의 스승) 제도를 만들고 덕이 많은 고승(高僧)을 왕사·국사에 임명했다. 국왕은 새로 임명된 왕사와 국사에게 9번 절하며 제자의 예를 취했다. 이같이 고려시대엔 불교가 다른 어느 종교보다 중시됐고, 불교가 고려 사상계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으로 불교가 고려의 국교라고 하기엔 미흡하다.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0747
출처 : 중앙선데이 기사보도 2013.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