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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내가 살고 싶은 집은…]활기찬 도시 골목에 번잡한 이웃과 가게, 소음이 음악 같은 곳 / 이경훈(건축학부) 교수

  • 작성자 박차현
  • 작성일 14.09.22
  • 조회수 5513

건축가에게도 집을 설계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용도가 복합적이고 교통이나 구조, 안전이나 비용 문제가 얽혀 있는 대형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집에 비하면 술술 풀린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집은 주인의 성격과 취향 그리고 인생관까지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집은 사람이 살을 맞대고 사는 삶의 공간이며 그 자체로 작은 우주이기도 하다. 구름이 지나는 하늘 대신에 낮은 천장이 있고 푸른 숲 대신에 답답한 벽이 가로막고 있지만 일생의 절반 이상을 지내는 세상이며 우주이다. 우주를 설계하고 세상을 만드는 일이니 어찌 간단할 수 있으랴.

그 중에도 가장 어려운 일은 건축주가 없는 집을 설계해야 할 때였다. 주택 건설경기가 한창 호황이던 몇 년 전 한 건설회사로부터 아파트 설계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조건은 간단했다.

“최고급 자재로 최대한 럭셔리하고 트렌디하게 해주세요.”

즉 호화롭고 유행을 앞서가는 내부를 설계해달라는 것이었다. 집에 유행이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 설계가 수백채 복제된다는 점이었다.

주인의 특이한 취향에 따라 번쩍이는 대리석과 할로겐전구가 빛나는 집이 하나쯤 지어질 법하기는 하지만 똑같은 집이 가로, 세로로 열 지어 서 있고 그 안에서 전혀 다른 삶들이 펼쳐지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끔찍할 정도다. 이렇듯 우리는 집이란 곧 아파트를 뜻하고 집이 기성복처럼 전시, 판매하는 상품인 시대를 살고 있다.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환한 것을 좋아하는지 아늑한 것을 좋아하는지 알 수 없는 건축주를 위한 설계는 막연하기만 했다.

스스로를 건축주로 가정하고 일을 진행해보기로 했지만 도통 내가 원하는 바와는 멀어질 뿐이었다. 모든 공간이 편평한 바닥에 가지런히 놓여야 하는 아파트 구조에서는 어떤 상상력으로도 나의 우주는 설계할 수 없었다. 결국은 럭셔리와 트렌드를 마음껏 펼칠 기회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상상했던 사치를 부린 집은 고급 자재보다는 온통 하얀색의 공간이었다.

 

 


집은 신을 벗고 너덧 개의 계단을 올라 거실이 있으면 좋겠다. 천장은 아파트의 두 배쯤 높았으면 좋겠고 높은 벽을 가득 메운 책꽂이가 있고 사다리를 올라 책을 빼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부엌은 넓어서 손님이 여럿 오더라도 같이 북적거리며 음식을 준비하고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욕조는 욕실의 구석에 치우쳐서 항상 물기에 젖어 있기보다는 커다란 공간 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 안에서 바다를 상상하며 책을 읽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기왕 사치스러운 상상이니 피아노가 한 대 덩그러니 놓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빈방이 있으면 좋겠다. 피아노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난해한 오페라의 인터미션처럼 고된 인생에 활력이 되지 않을까. 마당엔 작은 연못이 있어서 지나는 구름이나 계절에 따라 변하는 나무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면 이태백이 노래한 동정호가 부럽지 않겠다.

그러나 이 모든 상상보다 중요한 것은 이 집이 놓이는 위치이다. 호젓한 호숫가거나 전망 좋고 볕이 잘 드는 산등성이의 외진 땅도 좋겠으나 아무래도 난 활기찬 도시에 살기를 꿈꾼다. 번잡하더라도 이웃이 살고 있고, 좁더라도 모든 가게와 가까운 도시이기를 원한다. 문을 열고 나서면 이웃의 소음이 음악처럼 몸을 감싸는 장소면 좋겠다. 해가 좀 덜 들더라도 정겨운 골목을 마주하고 있으면 좋겠다.

아침에 집을 나서며 담뱃가게 아주머니에게 인사하고 철물점 아저씨에게 자주 고장나는 싱크대를 불평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웃들의 잡담을 배경음악 삼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카페가 있고,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TV중계를 볼 수 있는 식당이 있는 동네라면 좋겠다. 저녁에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며 위로를 주고받는 이웃들이 사는 골목에 있다면 더욱 좋겠다.


집이 비좁으면 어떠랴. 이미 이 골목, 이 도시가 나의 집인 것을….

원문보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9192041285&code=96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