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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록의 원류를 찾아서] 레넌·해리슨 사망 때 성 조지홀엔 끝없는 촛불 물결 / 조현진(미래기획단장)
![]() 비틀스의 활동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보여주는 ‘더 비틀스 스토리’ 건물 입구. 관람객의 70%가 외국인일 정도로 리버풀의 중요한 관광자원이 됐다. [사진 조현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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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는 엘비스만큼 커질 것” 예언 적중
같은 시기 브라이언 엡스타인이라는 사람은 리버풀에서 넴스(NEMS)라는 음반 상점을 운영하며 음악 관련 기사를 언론에 기고하고 있었다. 그런데 61년 어느 날 그는 예기치 못한 현상에 직면한다. 단골 고객 레이먼드 존스가 ‘마이 보니(My Bonnie)’라는 곡이 실린 음반을 찾는 것이었다. 당시 영국에서 발매된 음반에 대해선 다 안다고 자부하던 엡스타인에게는 생소한 곡이었다. 존스 이후에도 다른 고객들의 문의가 이어지자 엡스타인은 이 곡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영국 출신으로 독일에서 큰 인기를 끌던 가수 토니 셰리던이 독일 현지에서 녹음하고 발매한 곡. 독일 내에서는 차트 순위 5위까지 올랐다.
그런데 엡스타인이 주목한 것은 셰리던이 아니고 이 곡을 녹음할 때 셰리던 뒤에서 연주를 맡은 밴드였다. 바로 비틀스였던 것이다. 비틀스는 61년 3월 두 번째로 함부르크를 방문하는데 이 시기에 셰리던과 친분을 쌓고 종종 협연도 하곤 했다. 이를 눈여겨본 독일 음반업체가 녹음을 주선한 것이다.
음반을 입수한 엡스타인은 비틀스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됐고 결국 몇 달 뒤 함부르크에서 리버풀로 돌아온 이들의 공연을 직접 찾아가 본 것이 61년 11월 9일 캐번에서의 연주였다(11월 23일자 ‘팝의 수도 리버풀 편’ 소개). 자신의 비서와 함께 공연을 지켜 본 엡스타인은 비틀스에 한눈에 반해 이들과 계약을 맺는데, 이날은 로큰롤에서 가장 축복받는 날로도 꼽힌다.
이후 거듭되는 음반사와의 계약 불발에 화가 난 엡스타인은 “언젠가 비틀스가 엘비스만큼 커질 것”이라고 외치며 음반사 문을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비틀스에 대한 그의 신념일까 예언일까, 이 말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처럼 흥미로운 비틀스 초기의 형성 과정을 포함해 비틀스의 활동사를 파악할 수 있는 리버풀의 명소가 ‘더 비틀스 스토리(The Beatles Story)’다. 90년 개관한 이곳은 비틀스의 유품을 모은 박물관이나 이들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이라기보다는 비틀스의 활동상을 스토리 형식으로 포장해 보여주는 일종의 역사관이다. 캐번과 함부르크 등 비틀스의 주요 공연 무대를 재현했고, 멤버들의 출생부터 전성기, 해산과 솔로 활동까지를 연대기 순으로 전시해놓았다. 지난해 25만여 명이 방문했는데 70% 정도가 외국인일 정도로 리버풀의 중요한 관광자원으로 자리 잡았다.
레넌 여동생 목소리로 오디오 가이드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올해는 브리티시 인베이전 50주년을 맞이해 특별 전시회가 진행 중이다. 10개 언어로 준비된 오디오 가이드 목소리의 주인공은 존 레넌의 여동생이다. 관광객의 흥미 유발을 위해 디테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성의는 K팝을 관광 상품화하려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비틀스 스토리의 홍보를 총괄하는 로라 살리스버리 이사는 “비틀스의 매력적인 스토리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기능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리버풀시의 관광산업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한 책임”이라고 밝힌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리버풀 소재 유료 관광시설에서 비틀스 스토리보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곳은 없다.
더 비틀스 스토리 건너편으로는 실내공연장인 ‘에코 아레나(Echo Arena)’가 들어서 있다. 2008년 음악방송 MTV 유럽 시상식이 개최된 장소로 당시 폴 매카트니가 ‘최고 영예의 레전드(Ultimate Legend)’에 선정됐다. 매카트니에 대한 시상 진행은 록밴드 U2의 보컬인 보노가 맡았다. 매카트니와 보노는 시상식장으로 함께 차를 타고 왔는데, 보노는 “음악적으로 존경하는 매카트니가 직접 운전하며 자신의 고향 이곳저곳을 하나하나 상세히 소개해줬다”고 얘기해 세인을 놀라게 했다.
![]() 1 2011년 개관한 ‘리버풀 박물관’의 외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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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더 비틀스 스토리’의 마지막 전시 공간인 ‘존 레넌 방’. 그를 상징하는 흰색 피아노와 둥근 테의 안경이 놓여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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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시민들의 추모 장소가 됐던 성 조지 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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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어 공연 앞두고 세상 떠난 레넌
성 조지 홀은 리버풀의 아들들인 존 레넌과 조지 해리슨의 충격적인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리버풀 시민들이 약속이나 한 듯 촛불을 들고 모여든 시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리버풀은 ‘2008년 유럽 문화의 수도’로 선정되면서 1년 내내 다양한 행사를 준비했는데, 첫 행사로 기획된 링고 스타의 1월 11일 공연도 이곳에서 열렸다. 링고 스타는 이 시기 ‘Liverpool 8’ 음반을 발표했는데, 리버풀이 1년 동안 축제로 물든 2008년과 자신이 어렸을 때 살던 지역의 우편번호가 ‘8’이었던 점 등을 중의적으로 표현하면서도 자신의 고향에 대한 경의를 담아냈다.
성 조지 홀 바로 건너편에는 1925년 문을 연 유서 깊은 엠파이어 극장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극장과 비틀스와의 인연은 57년 6월 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존 레넌이 이끌던 더 쿼리맨은 엠파이어에서 열린 한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했다가 보기 좋게 떨어진다. 매카트니와 해리슨이 합류한 뒤 밴드명을 한때 ‘조니 앤드 더 문도그스(Johnny and the Moondogs)’로 바꾼 이들은 2년 뒤 엠파이어에서 열린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해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게 된다. 밴드는 결승 라운드가 열린 맨체스터시로 이동했는데 오디션이 당초 예정 시간을 지나 한없이 길어지면서 결국 맨체스터에서 하루 잘 돈이 없었던 이들은 원래 기차표를 버릴 수 없어 최종 오디션에 참가조차 하지 못하고 고개 숙인 채 고향 리버풀로 돌아왔다.
하지만 불과 3년 뒤 비틀스라는 이름으로 엠파이어 무대에 오른 62년 10월 28일, 이들은 더 이상 고개 숙인 청년들이 아니었다. 비록 로큰롤 초기의 전설적인 아티스트인 리틀 리처드의 오프닝 밴드로 출연했지만 비틀스는 이날 리버풀 시민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65년 12월 5일 이들의 일곱 번째 엠파이어 공연이 비틀스의 마지막 고향 공연이 되리라고는 그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밴드 해산 이후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가 비틀스의 좌절과 영광이 교차한 이곳을 찾아와 솔로 공연을 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리버풀 전설에 따르면 존 레넌도 81년 1월 그 누구보다 만감이 교차하는 엠파이어에서 공연을 계획했다. 하지만 공연을 불과 한 달 앞둔 80년 12월 8일(바로 내일이다!) 살아생전 사랑을 외치고 평화를 노래한 레넌은 미국 뉴욕에서 네 발의 총탄을 맞고 난 뒤 영원히 자신의 고향 리버풀에 돌아오지 못했다.
조현진 YTN 기자·아리랑TV 보도팀장을 거쳐 청와대에서 제2부속실장을 역임하며 해외홍보 업무를 담당했다. 1999~2002년 미국의 음악전문지 빌보드 한국특파원으로서 K팝을 처음 해외에 알렸다.
원문보기 : http://sunday.joins.com/article/view.asp?aid=36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