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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글로벌 포커스] 적신호 켜진 한일관계 / 이원덕(국제학부) 교수

  • 작성자 박차현
  • 작성일 17.01.17
  • 조회수 5294

새해 벽두부터 외교안보 정책이 총체적인 난국에 빠져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사태로 컨트롤타워의 부재와 국정 공백을 겪고 있는 가운데 주변국의 외교 공세가 날로 강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대선을 겨냥한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어 과도기 외교안보 정책은 그야말로 사면초가, 내우외환 상태다. 북한은 ICBM 발사를 기정사실화하며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은 대북 초강경 조치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보복 조치를 노골화하며 국내의 국론 분열 틈새를 파고들고 있으며 급기야는 군용기 10대가 제주 남방 이어도 인근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했다. 

이런 상황에서 잠잠했던 한일관계에 새해 벽두부터 적신호가 켜졌다. 발단은 부산총영사관 담벼락 앞의 소녀상 설치였다. 일본은 지난주 소녀상 건립에 대한 항의로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를 소환함과 더불어 한일 통화스왑 협상과 고위급 경제 대화를 중단하겠다고 초강수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이어 아베 신조 총리는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측은 10억엔을 거출했으니 한국이 소녀상 문제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우리 국민여론은 격한 반발을 쏟아냈고 정치권은 일본의 적반하장 격인 보복을 불러들인 `위안부 합의`의 파기 또는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아베의 초강경 조치 배경에는 대미, 대러 외교에서의 실점을 만회하려는 국내 정치적 계산도 한몫했다. 아베가 공들여 왔던 미국과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트럼프 당선으로 무산되고 대러 정상회담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먹튀 외교`에 당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런 와중에 소녀상의 추가 설치는 아베를 초강경책으로 몰아세웠을 터이다. 또한 아베는 위안부 합의 파기가 초래할 코스트를 한국에 사전 경고함으로써 미래 권력에 경종을 울리려고 기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베의 조치가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심히 의심된다. 소녀상 문제를 통화스왑이나 경제협력 사안과 연계시킨 것은 일본 스스로가 내세웠던 외교 원칙에 모순될 뿐 아니라 보복조치는 오히려 한일 관계를 악화시킬 뿐임에 틀림없다. 

위안부 합의의 본질이자 핵심은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함과 동시에 그 징표로 정부예산 조치로 피해자에게 보상함으로써 그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있다. 소녀상 처리 문제는 이 `본질 합의`가 성실하게 이행될 때 비로소 검토되어야 할 `부수 합의`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베 총리의 "사죄편지를 쓸 생각이 털끝도 없다"는 발언이야말로 사실상 합의 정신을 위반한 것이다. 또 10억엔 거출을 끝냈으니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손을 털고 소녀상 이전을 압박하겠다는 태도는 합의의 곡해이며 오독이다. 합의준수를 원한다면 합의의 `핵심 부분`에 대한 진정성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 

소녀상 문제는 우리로서도 진지하게 성찰해 봐야 할 주제이다. 위안부 역사를 기억하고 후세에 교육하기 위해 소녀상 등 상징물을 세우고 역사기념관을 건립하여 추도 및 기념사업을 전개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소임이자 책무이다. 다만, 조형물 설치의 장소가 외국 공관의 위엄과 안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우에는 상대방에 오히려 비판과 역공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실제로 공관 앞 소녀상 문제는 일본 내 지한파의 입지를 좁히고 혐한 파를 부추기는 재료로 악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과 소녀상을 떠나서 어느 경우에도 외국 공관 앞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오늘날 확립된 국제 규범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원문보기 : http://news.mk.co.kr/column/view.php?year=2017&no=375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