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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20주년과 韓日의 온도 차 / 박창건(일본학과) 교수

  • 작성자 박차현
  • 작성일 18.10.15
  • 조회수 9976


▲ 박창건 국민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1998년 10월 8일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三) 총리는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란 명칭 아래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비전을 제시했다.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따르면 오부치 총리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한국 국민에게 커다란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며 사죄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오부치 총리의 역사 인식 표명을 평가하고 양국 관계를 미래 지향적 관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특히 공동성명에는 정치, 안보, 경제, 인적·문화교류, 글로벌 이슈 등 5개 분야의 협력과 43개 항목의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명시했다. 이처럼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서울과 도쿄의 교류와 협력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킨 획기적 선언으로 평가받고 있다.

20주년을 맞이한 현시점에서 한일 양국은 서울에서 발족한 ‘한일 문화·인적교류 태스크포스’와 도쿄에서 발족한 ‘한일 문화교류 전문가 모임’의 제언을 숙고하여 ‘과거 직시’의 정신보다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에 방점을 두고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발전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일 양국은 서울과 도쿄에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20주년 행사위원회 주최의 기념식 및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하는 등 관련 심포지엄이 열렸다. 하지만 한일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는 없었고, 정상이 함께 참석하여 한일관계의 미래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만들지는 못했다. 몇 년째 계속되는 불편한 한일관계에서 비롯된 양국의 상이한 입장은 20주년 기념행사를 지극히 형식적인 수준의 세리머니로 전락시켜 버렸다. 이처럼 새로운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구축을 둘러싼 서울과 도쿄의 온도 차는 다르게 표출되고 있다. 

첫째는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의 온도 차이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구축이 만성적 불안 상태에 놓이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한국 침략과 지배에 대한 역사인식과 과거사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가해의식 부재와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포용의식 결여에서 비롯된다. 일본군 위안부, 교과서, 야스쿠니 참배 등과 같은 쟁점-이슈가 현안으로 부상하면 서울과 도쿄는 언제나 긴장 국면으로 접어들고, 그 현안을 잘못 처리하면 한일관계는 급속히 냉각되는 게 정해진 패턴이다. 이러한 한일 간 역사인식 문제를 해결책의 기본적인 틀은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 의해 이미 만들어져있다. 따라서 한일 양국은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의 합의 사항을 준수하고 계승·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대응의 온도 차이다. 지난 9월 18~20일 평양에서 개최된 3차 남북정상회담은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확인하는 동시에 북·미 협상에 새로운 동력을 추동시켰다. 이러한 한국의 중재적 노력은 미국 국무부의 특별대표단이 방북하여 공식적인 북·미 협상을 재개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여 향후 비핵화 협상의 탄탄한 토대를 마련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대체로 환영과 기대를 표명했지만, 일본의 공식 반응은 유보적이었다. 일본은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구체적 행동’ 없이 경제제재를 풀지 말아야 한다는 완고한 입장을 견지했다. 또한 일본은 굳건한 미·일 공조를 기반으로 납치문제와 비핵화 문제에 대해 면밀히 의견을 조정하여 평양과 도쿄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준비 작업을 착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대응을 둘러싼 서울과 도쿄의 온도 차는 미묘하게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후반부에서는 군축과 대량 살상무기의 비확산에 함께 노력할 것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한일 양국의 갈등은 최소화하고 협력을 최대화하는 전략적 협조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셋째는 동아시아 지역구상에 대한 공동체의 온도 차이다.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지정학적 불안정이라는 구조적 요인과 북한의 핵 개발 등과 같은 상황적 요인이 얽혀 동아시아 지역은 협력과 통합보다는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지정학적 구도가 크게 변화하는 가운데 서울과 도쿄의 전략적 이해관계에서도 지역공동체에 대한 온도 차가 현저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동북아플러스책임공동체’ 구상을 내세워 북한의 개혁·개방을 통한 한반도 신경제지도, 중국 동북 3성의 경제진흥, 러시아의 극동 개발 등을 유도하는 지역공동체 개념을 확립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후퇴하고 대신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인도-태평양’ 구상이라는 새로운 지역-구축 개념을 등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정세가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발원하는 동북아시아 비핵평화지대 구축은 한일 양국이 평화지역 건설을 위한 공동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원문보기 : http://www.kyongbuk.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040630#09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