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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사유와 성찰]속마음을 말해봐 / 고현숙(기업경영학부) 교수

  • 작성자 최윤정
  • 작성일 18.11.19
  • 조회수 9590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난 남들이 안쓰럽게 볼까봐 아무렇지 않은 척, 심지어 명랑한 척하기도 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어머니의 부재가 괜찮아질 것 같아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다. 성인이 된 내 친구들이 엄마와 친구처럼 되었다가 나중에는 모녀 관계가 역전되어 엄마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걸 보며 더 부러워하리라는 것을.

[사유와 성찰]속마음을 말해봐.
어머니 결핍이 나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오래전에 친구가, 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네 속을 말해봐, 라고 했다. 도대체 뭘 말하라는 거지? 난 숨긴 게 없는데? 그땐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친구에게 어떤 미운 사람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그러자 친구가 나보다 더 흥분하면서 그 못된 인간을 욕하더니, 그러는 거였다. 이제야 네 마음을 알겠어. 오, 친구에게 속마음이란 미운 사람을 같이 흉보는 거다. 억울했던 일을 일러바치는 거다. 마음껏, 내가 불리한 얘기는 빼고 내 식대로 얘기해도 추궁하지 않는다. 대중 앞에서 할 수 있는 얘기를 하는 건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뭔가 추한 것들,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것을 털어놓아야 한다. 엄마나 친구 같은 친밀한 사람에게 창피하고 나쁜 생각을 털어놓고 발산하면서, 그렇게 느껴도 괜찮다는 안전감을 얻는 것, 그게 정서를 건강하게 발달시키는 과정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마음속 부정적인 생각을 얘기하는 게 힘들었다. 정말 결핍되었던 것은 감정 해소 프로세스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강의와 코칭이다. 코칭이라면 어감상 한 수 가르쳐주는 것쯤으로 이해하기 쉽지만 실은 정반대다. 코칭받는 사람의 얘기를 깊이 있게 들어주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함께 탐구해 나가는 과정이다. 가르치거나 계몽하려 들어선 안 된다. 경청이 중요하다. 교과서에 ‘지금 누구와 마주 앉아서 끝내주는 무언가를 하고 있더라도, 당신이 대화에서 30% 이상 말하고 있다면 그건 코칭이 아니다’라고 써 있을 정도다.

코칭에서도 속마음을 들어야 한다. 자랑스러운 일과 속상한 일, 비전과 자부심부터 내면의 불안과 수치스러운 감정까지 듣는다. 자기 성에 차지 않는 직원들을 욕하는 것을 들으며 그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해 나간다. 경영자들도 이해당사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솔직한 얘기를 할 상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얘기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게 해줄 코치가 필요하다. 물론 듣고 편들어주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좋은 질문을 하거나, 마치 연구자처럼 중립적인 자세로 함께 현실을 탐구하도록 이끌기도 한다. 때로는 그가 회피하고 있는 진실을 말해주는 역할도 한다.

한번은 어떤 경영자가 산하 임원들에게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능력과 태도가 임원 수준이 안 된다고 하면서, 방금 임원 회의에서 크게 질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래봐야 달라지는 게 없다며, 답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임원들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들이 혁신을 못하고 구태의연하게 일하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임원들이 왜 혁신을 하지 못하는 걸까? 그게 능력 부족 때문일까, 라는 질문을 내어놓고 대화를 했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혁신이라는 단어에 얽매어 있을 뿐 무엇을 해야 할지 구체화가 안 될 수도 있고, 바쁘게 돌아가는 현업에 휘둘려 미뤄지고 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능력 부족이라고 비난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일대일 면담으로 진짜 현실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그다음 질문을 했다. 임원들이 어떻게 되길 바랍니까? 그들이 주도적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주도적이 되도록 경영자로서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경영자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 나서, 본인이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겠다고 말했다. 임원들을 모아놓고 질책을 퍼붓는 것이 오히려 주도적이 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성찰의 힘이 훌륭한 분이다.

코칭의 순간에는 그 사람을 위해 내 존재의 100%가 거기 있어야 한다. 몰입해야 한다. 마치 내 친구가 속마음을 묻고 들어주었던 것처럼 완전히 그 사람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판단하지 말고 어떤 얘기도 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게 기초다. 그런 면에서 상담과 닮은꼴일지 모른다. 하지만 상담이 치유를 목적으로 한다면 코칭은 목표 달성을 돕는 미래지향적인 프로세스다. 그래서 좋은 코칭에는 지지와 도전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 우리는 때로 미루고 있는 도전을 하도록 푸시해주는 사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162041015&code=990100#csidx87b6ae403c6f469bd368b458ebdee2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