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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Biz Prism] `보복하는 상사` 없어야 방관하는 직원도 없다 / 백기복(경영학부) 교수

  • 작성자 최윤정
  • 작성일 18.11.26
  • 조회수 9561

최근 불거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강 모씨 폭행사건은 그야말로 엽기적이다. 여러 차례 뺨을 때리고 무릎을 꿇리고 폭언을 퍼부었다. 대학교수를 사무실로 불러 집단폭행하는 것도 모자라 `가래침을 먹이고 구두를 핥게` 했으며, 산 닭을 칼과 활로 죽이도록 했다. 상상할 수 없는 시대적 사건이다.

단순한 갑질을 넘어서는 `독행(毒行·toxic behavior)`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하다. 양 회장의 폭행비디오 속에는 오늘날 한국 기업 구성원들의 조직행동을 추론케 하는 여러 가지 단서가 들어 있다. 그중 하나는 폭행이 공개된 사무실에서 일어났는데 구성원들이 모두 못 본 체 돌아앉아 일하는 척하고 있다는 점이다. 직급이 어느 정도 돼 보이는 직원 하나가 보다 못해 말리는 척하지만 적극적이지 않다. 폭행 현장에 같이 있던 구성원들은 왜 개입하지 않았을까?

한국 기업 조직원들에게 이 질문은 우문이다. `회장님이 하시는 일인데 사원이 어떻게 개입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월급쟁이의 처지를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느 신문의 칼럼에서는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가진 자의 폭력에 저항할 수 있었을까`하는 무력감에 분노가 더한다고 쓰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관자 효과`가 한국 기업이 혁파해야 하는 기업문화의 고질적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기업은 조직 구성원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자발적, 의욕적으로 신바람 나게 일해주기를 기대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특히 최근 들어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근로가치가 한국 조직 구성원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 나가고 있다. 그동안 한국 기업들이 조직 구성원들을 권위주의적으로 관리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을 탓할 수 없는 분위기다. 사회가치도 기업과 구성원의 교환관계가 등호를 이뤄야 한다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러므로 기업이 구성원들에게 기대 이상의 노력을 원한다면, 그에 맞는 조건을 충족시켜줘야 한다. 구성원들을 탓하기 전에 기업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원들을 방관자가 아니라 적극적 개입자로 바꾸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보복 없는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인사권을 가진 상사나 절대적 권한을 갖는 최고경영자와 소유경영자가 이런저런 이유로, 또는 아무 이유도 없이 보복을 한다면 방관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조직 구성원들은 직간접적으로 사내 보복의 다양한 사례를 접하게 된다. 바른 소리했다고 한직으로 좌천시키고 코드 안 맞는다고 승진에서 배제한다. 상사에게 질문했다고 인사고과에서 C를 주고 다른 임원의 라인이라고 중요한 일을 안 맡긴다. 심지어 어느 회사의 상무는 리더십 설문에서 자신에게 점수를 낮게 준 자를 색출해 응징(?)하기도 했다. 마음에 안 드는 부하를 무시하거나 나쁜 소문 퍼뜨리기, 인사 안 받기, 결재 지연시키기, 궂은일 배정하기, 일 안 주기, 꼬투리 잡기 등 보복의 종류도 다양하다. 조직생활을 해본 사람은 보복당하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지를 잘 안다.

그래서 구성원들은 상사가 지나가면서 던지는 말 한마디, 한 번의 눈 흘김, 심지어 아침 회의시간에 드러나는 얼굴 근육의 작은 움직임에까지 민감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사내 보복 문제를 주로 EEOC(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ssion·평등고용추진위원회)에서 다룬다. 직장 내 차별을 고발했다고 해서 해고, 강등, 보복 등의 불리한 처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보복의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고 세세하게 돼 있다. 부하가 차별받았다는 신고를 했다고 해서 상사가 매일같이 하던 따뜻한 굿모닝 인사를 안 해주는 것도 보복으로 처벌한다.

한국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법으로 보복을 다 막을 수는 없다. 조직이 먼저 사내 규정으로 보복을 금지하고 엄격한 벌칙을 적용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제약업체 화이자(Pfizer)에서는 보복하는 자를 직위 불문하고 바로 해고한다. 사원이 소유주 회장의 폭행이나 비리를 보고 바로 개입하든가 그 자리에서 경찰에 신고해도 보복당하지 않는 회사. 이것이 한국 기업 평가의 시금석이다.

[백기복 국민대 경영대 교수]

출처: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8&no=73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