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척도 때론 개혁파였지요”
최근 <중종대왕과 친인척>(역사문화)를 2권까지 펴낸 지두환(48) 국민대 교수는 조선왕조 친인척 정리에 한여름 무더위를 고스란히 바치고 있다. 98년 9월에 시작했으니 올해로 4년째다. 지금까지 태조, 정종, 인종, 효종 및 중종의 친인척이 출간되었고 태종·세종·세조 등 선조때까지가 이미 11권의 책으로 제본되어 쌓여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시디롬 덕을 보았지만, 그 외에도 <돈녕보첩> <선원록> <열성왕비세보>나 비문 등의 금석문 등 찾아야 할 자료가 산더미였다. 공간이 부족해 아예 몇달전 학교 부근에 `한국인물족보연구소'라는 연구소를 따로 냈고 이 시리즈 출간을 위해 역사문화라는 출판사까지 제자와 함께 차렸을 정도다.
“처음엔 1년이면 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자료도 방대한 데다 새롭게 쓰고 보충할 것도 많아 일단 올해말 선조까지 출간을, 나머지는 앞으로 1~2년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꼬박 만 5년이 걸리는 셈이죠.”
정치에서 `친인척'이라 하면, 아무래도 수상한 냄새가 난다. 게다가 왕조의 친인척이 정치를 휘둘렀다는 결론이라면, 도대체 역사에 권력의 최상층에 있던 사람들 이외는 끼어들 여지가 없어보인다. 텔레비전 사극처럼 휘날리는 궁중 치맛자락이 우리 역사의 전부라면 좀 씁쓸하지 않은가. “조선시대에는 외척들이 정치를 좌우했습니다. 왕비나 후궁을 내는 것이 권력의 핵심에 접근하는 방법이었고요. 하지만 이런 친인척, 권력집단의 변화도 민의 요구를 반영한 결과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중종반정 때 중심인물인 박원종 등은 당시 민의 편이라 할 수 있는 사림과 손을 잡으려 했다. “개혁적인 세력들도 집권을 하면 보수화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또 새로운 개혁세력들이 나타나 이들을 몰아냅니다. 이런 변화는 대개 50년을 주기로 일어나요. 조선시대 훌륭한 왕들은 훌륭한 사림들을 친인척으로 끌어들였죠. 새로운 개혁세력의 등장이 끊기면 그 사회가 흔들리는 거고 그때 임꺽정 같은 밑으로부터의 반란이 일어납니다.”
지 교수는 그동안 한국의 역사공부가 재미없었던 것이 친인척 같은 인맥을 외면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훈구-사림의 대결이라는 것도 그 뒤에 있는 인물들을 알지 못하면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 뿐이라는 것이다. 역사소설이나 사극 열풍에 대해서도 그는 적극적이다. “이번 책도 <여인천하>에 맞춰 펴냈어요. 드라마가 끝나기 전 인종·명종때까지 출간할 겁니다.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때 맞는 부분은 맞다고, 틀린 부분은 틀리다고 가르쳐줄 수 있는 역할을 학자들이 해야죠.”
이번에 출간된 <중종…>의 2권은 중종의 세 왕후, 단경왕후와 장경왕후, 그리고 문정왕후의 친인척을 다루고 있다. 곧 펴낼 3권은 중종의 후궁이 대상이다. 지방의 미천한 정병(군인)의 딸임에도 이미 연산군 시절 미모로 궁중까지 소문이 나 중종의 후궁이 된 경빈 박씨. 장경왕후의 사망 이후 그가 중전에 오르지 못한 데는 낮은 신분 때문에 든든한 친인척을 형성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앉히기 위한 문정왕후의 집요함과 명종초기 수렴청정 9년도 흥미진진하다.
사회경제사가 한국사의 대세이던 70~80년대부터 사상사에 매달리는 지 교수는 좀 별난 존재였음에 틀림없다. 특히 노론중심의 유교정치를 이상화한다고 해서 그가 속한 간송학파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에서 “뜬구름을 걷어내기 위해” 사상사에서 정치사로, 또 인맥으로 뻗어나가는 그의 연구궤적은 `대중을 위한 역사학'이라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