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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열린세상] 막말은 ‘실수’가 아니다 / 이대현(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 작성자 박차현
  • 작성일 19.03.11
  • 조회수 8628


▲ 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비난이 쏟아지면 ‘실수’, ‘오해’라고 둘러댄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면 유감”이라면서 마지못해 이런저런 군색한 해명을 덧붙인다. 그러나 그 말은 결코 실수가 아니다. ‘그런 뜻’이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지금 우리의 세상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3월 첫 주일의 가톨릭 복음도 그 이야기를 분명하게 해 주었다.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약한 자는 (마음의)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한다.’

굳이 성서(집회서)를 인용하지 않아도 우리는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말은 마음이고, 그 마음에 ‘실수’란 없다. 반대로 마음에 넘쳐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닥칠 불리를 생각해 가슴이 아닌 머리로 계산한 변명과 해명은 말이 아니다.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그칠 줄 모르는 막말에 상처받고, 이어지는 어설픈 해명에 분노하는 이유다.

‘20대는 지난 정권의 잘못된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 건강한 판단을 못 하는’ 세대이고, ‘50·60대 퇴직자와 실직자들은 할 일 없다고 산에나 가고 SNS에 험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으로 가야 할’ 대상이다. 정치권(야당)에는 ‘저게 정상인가 싶을 정도로 정신장애인이 많이’ 있으며, ‘5ㆍ18 유공자는 괴물’이다. 그들로서는 솔직한 마음이다.

그래 놓고 “젊은 세대를 겨냥해 발언한 게 아닌,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이라고 주어를 갑자기 바꾸고, “신남방정책의 취지”라는 거창한 말로 억지 포장을 한다고 그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말이 진심일지 모른다. 비난을 미리 염두에 두거나 계산하지 않은 마음이 넘쳐 저절로 나온 것이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막말은 선(善)에 대한 집착이다. ‘나와 우리는 선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악을 숨기려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다른 사람을 악으로 몰고, 그 악을 드러내려 한다. 내 눈의 들보는 그대로 두고, 남의 눈의 티만 빼려고 한다. “선을 이루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어느 신부는 말했다. 하나는 나 스스로 선해지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상대적으로 내가 조금 더 선해지기 위해 남의 악을 들춰내고 바꾸려는 것이라고.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나는 내가 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변할 필요가 없이 남을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그는 “진정한 선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거짓의 나부터 변해야 한다. 자신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남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했다. 퇴계 선생이 ‘자성록’에서 말한 “기질을 바로잡는 일은 나에게 있지 남에게 있는 게 아니다”와 일맥상통한다.

더구나 나는 변하지 않는 그 선이 자기에게만 이롭고 남에게는 해롭다면. 맹자(孟子)는 “순임금과 도척의 차이는 다른 것이 아닌 이익을 추구하느냐, 선을 추구하는가에 있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이 줄기차게 사방을 향해 부르짖는 적폐청산, 그것을 내세워 자신들의 적폐까지 ‘선’이라고 우기며 막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것이 순임금의 마음인지, 도척의 마음인지 그들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깊이 성찰해 봐야 한다.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게 되면 결말에 가서 일이 뒤집어지는 것이 어찌 이상하다 하겠는가.” 퇴계 선생의 말이다.

해마다 3월이 돼 강의를 시작할 때, 신입생들에게 설문을 받는다. 나의 꿈, 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해. 그들의 대답에 늘 놀란다. 그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지혜롭고, 선하고, 아름답고, 깊고, 넓다. 그동안 입시지옥에서 시달렸지만, 학교가 아닌 곳에서의 배움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도 날카롭고 냉정하고 팽팽하다. 그들이야말로 이제 20대를 시작하는 우리나라 보통의 건강한 젊은이들이다.

그들이 ‘건강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고? 그런 눈과 마음을 가지고, 그것을 막말로 쏟아내는 사람들이야말로 오로지 자기 욕심에만 사로잡혀 ‘건강한 판단’을 못 하는 도척이란 소리를 들어야 할지 모른다. 자기 눈의 들보를 보지 않은 채 자신이 순임금이며, 자신의 악이 선이라고 착각하면서.

 

원문보기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90311030001&wlog_tag3=naver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