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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알량한 실력 드러날까 ‘자기 방어’…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라 / 최우열(스포츠교육학과) 겸임교수

  • 작성자 박차현
  • 작성일 19.08.26
  • 조회수 3968

라운드전 갖가지 핑계 왜

컨디션 난조 낮은 타수 대비 
미리 많은 변명거리 만들어 
자존감 지키려는 ‘심리 현상’ 

부정적 말들 경기에 악영향 
자신뿐 아닌 동반자도 피해 
부족한 실력 숨기려만 말고 
타인의 평가 겸허히 수용을

고대 그리스의 5종경기 선수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은 로도스섬에서 열린 멀리뛰기대회에서 엄청난 기록으로 우승한 적이 있다며 자랑했다. 로도스는 본토에서 무려 363㎞나 떨어진 곳이다. 만약 여기가 로도스라면 누구보다 더 멀리 뛸 수 있을 것이란 허풍을 떨었다. 옆에서 잠자코 이 말을 듣고 있던 한 사람이 이렇게 외쳤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Hic Rhodus, hic salta!)”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네 실력을 보이라는 뜻이다.

간만에 친구끼리 라운드라도 한 번 할라치면 여기저기 로도스가 따로 없다. “늦게까지 술 마시느라 잠을 설쳤네” “얼마 전 드라이버를 바꿨는데 아직 적응이 안 돼” “연습하다 발목을 삐끗했는데 스윙할 때 영 신경 쓰이네” “이 골프장은 처음인데 스코어가 잘 나올지 모르겠네” 등등. 티샷도 하기 전에 갖가지 엄살이 쏟아진다.

물론 사실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량한 자신의 실력이 드러나거나 저조한 스코어가 나올까 봐 미리 핑곗거리를 만드는 얕은꾀를 부리는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끼리 골프를 칠 때 다들 “소싯적에 내가…”라며 한때 대단했던 자신의 실력을 들먹이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모두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방어기제로, 스포츠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구실 만들기(self-handicapping)’라고 한다.

골프를 포함해 모든 스포츠는 경쟁이라는 속성상 경기의 결과가 곧바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것을 자신의 실력에 대한 사회적 평가로 받아들이고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부진한 결과의 원인을 미리 만들어 자신이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자존감이 낮아 다른 사람의 평가에 예민하거나, 경쟁심이 강해 남들에게 절대 지기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심하다. 패배나 부진한 성적의 두려움은 실력이 뛰어난 프로골퍼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가 임박하면 컨디션 난조나 부상 등 다양한 핑계를 대곤 한다.

한두 번의 부진한 라운드 결과를 적절한 핑계를 통해 자신이 아닌 외부의 대상 탓으로 돌리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필요 이상의 자기 비하나 비난을 막고, 무력감이나 우울감 등 부정적인 심리상태를 최소화해 다음 경기를 위한 분위기 전환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핑계로 실력이 부족한 현실을 회피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다. 연습과 노력에 대한 내적 동기를 약하게 만들어 실력 향상을 더디게 하기 때문이다. 또 이런 핑계들은 부정적인 자기 암시 효과를 유발해 실제 스코어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공산이 크다. 전설적인 미국의 골퍼 벤 호건은 미스샷의 변명은 동반자들을 괴롭게 할 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심리학자인 캐럴 드웨크는 어렵거나 도전적인 과제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고 주장했다. 한 부류는 도전을 즐기고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습지향의 사람들로, 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워 더 많이 연습하거나 배운 기술을 제대로 구사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 가장 성취감을 느낀다. 또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

또 다른 부류는 가능한 한 성공 가능성이 큰 과제에만 도전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예상되는 과제는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쓰는 성과지향의 사람들로, 이들은 자신이 남들보다 더 잘하거나 남들이 못 하는 일을 잘할 때 성취감을 느낀다. 또 타인의 평가나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과제의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

라운드마다 자신의 부족한 실력을 핑계로 모면하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성과지향의 사람들이다. 이러한 특성은 타고난 기질이지만, 인간의 능력을 바라보는 관점과 추구하는 목표의 유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즉, 학습지향의 사람이 되려면 인간의 재능과 능력은 타고난 것으로 잘 변하지 않는다고 믿기보다는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향상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목표를 정할 때도 시합의 승패나 상대와의 경쟁 결과에 초점을 두는 결과목표 대신 과거 자신의 성적이나 기록과 비교하는 수행목표 혹은 구체적인 기술이나 동작의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목표를 세운다.

누구나 타인의 평가나 비판을 받는 것은 두렵다. 하지만 실력을 높이고 골프를 더 잘 치고 싶다면 어쭙잖은 핑계 뒤로 숨기보다는 남들의 평가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왕관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 무게를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대 골프과학산업대학원 교수

스포츠심리학 박사

 

원문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82601032839000001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뉴스콘텐츠 저작권 계약'으로 저작권을 확보하여 게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