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꾸눈의 포악한 군주, 미륵불을 자처한 과대망상자. ‘삼국사기’ ‘고려사’ 등의 역사에서 궁예는 악인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최근 사학계의 연구성과는 사서의 기록과 차이를 보인다. 궁예 관련 사료 역시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가.
강원 철원군은 28~29일 철원문화원에서 ‘궁예와 태봉의 역사적 재조명’을 주제로 제3회 태봉학술제를 개최한다. 지역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지만, 내로라하는 궁예 연구자들이 총출동했다. 학자들은 미륵정토사상을 바탕으로 강력한 제국을 건설하려 했던 궁예의 이상과 태봉국의 정치조직 등을 조명한다.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기조발표문에서 “신라의 관료출신도, 호족출신도 아닌 궁예가 강력한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개혁이념과 강력한 추진력이 하층세력을 포섭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동방의 대제국을 건설하려는 궁예의 야심이 호족의 반감과 불교계의 저항을 불러와 해상세력인 왕건에게 굴복했다”고 덧붙였다.
김두진 국민대 교수는 “궁예의 불교사상에는 참모습과 윤색·왜곡된 모습이 혼재돼 있다”면서 궁예의 불교사상을 현실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이상사회를 건설하려 했던 미륵정토사상으로 보았다. 1990년대 후반 궁예성터를 찾아낸 이재 육사 교수는 “철원지방에서 조사된 14개의 성 가운데 궁예시대에 축조된 성곽은 궁예도성, 명성산성, 동주산성”이라며 “궁예와 관련이 깊은 이들 산성에 대한 학술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밖에 이도학(한국전통문화학교)·조인성(경희대)·정선용(서경대) 교수가 사료에 나타난 궁예와 태봉국을 고찰하고, 유인순(강원대)·황지욱(전북대) 교수가 궁예왕 전설과 철원의 역사·문화적 자원에 대해 주제발표를 한다. 주제발표 뒤에는 ‘슬픈 궁예’의 저자 이재범 교수(경기대)의 사회로 종합토론을 벌이며 궁예 유적지에 대한 현장답사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