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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주말초대석>검찰간부서 `대학 CEO안착` 정성진 국민대총장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02.04.08
  • 조회수 16341


2002. 4. 6. - 문화일보 -


장재선 기자/jeijei@munhwa.co.kr


“대학교육의 난맥상이 날로 불거지는 시점에 검찰간부에서 ‘CEO총장’으로 변신에 성공한 앞뒤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봄빛이 환한 4일 오후 국민대 정성진(62)총장을 만났다.

검찰의 핵심요직인 대검중수부장 출신으로 법대교수를 거쳐 50여년 전통의 사립대학 수장이 된 정총장. 그를 만나기 직전 긴장감 때문에 옷깃을 다시 매만졌다.

본인들이야 오해라고 손을 내젓겠지만, 대한민국 검사의 이미지는 경직된 표정에 고개를 빳빳이 세운 것. TV미니시리즈 ‘모래시계’에 등장한 여리고 따스한 감성을 지닌 검사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이 법대교수 출신이라니, 외화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에 나온 킹스필드 교수의 근엄무쌍한 얼굴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그러나 정총장은 인터뷰내내 소탈한 어조로 국민대를 홍보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학교의 변화를 줄줄이 설명하고, 10분짜리 학교 홍보비디오물을 보도록 ‘강요’했다. 학생들의 고충을 알기 위해 한달에 4~5번 통학버스를 탄다는 그는 학교 홈페이지의 ‘옴부즈오피스 게시판’을 소개하면서 학생들이 올린 글의 제목을 보다가 웃음을 깨물었다. ‘울 학교 경비아저씨들은 와 이리 무섭노’ ‘총장님, 국제관에서 질식할 것 같습니다’ ‘총장님 전용주차공간에 대하여’ 등의 제목이 얼마나 톡톡 튀고 재미있느냐는 것이다. 글쎄….

그는 사진기자의 제의로 학생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면서 학생들에게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일일이 물었다. 머리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학생들이 시종 깔깔대는데도 버릇없다고 탓하지 않고 함께 웃으며 그들과 허물없이 어울렸다.

너무 격의 없으신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국민대 교직원들이 자주 건넨다는 농반진반의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총장님, 검사 출신 맞습니까.”


―정통 교수 출신이 아니신데 총장 선임 과정에서 반발은 없었나요.

“2000년 3월 취임 전후로 비토 세력이 있었던 게 사실입니다. 대학이란 게 자존심 강한 구성원들이 섞여 있다보니 갈등 요인이 늘 있게 마련이고요. 그러나 공직 경험을 살려 학교행정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운영하겠다고 약속하고 실제로 그렇게 하니까 직원노조·교수협의회·동문회 등이 모두 잘 협조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95년부터 교수로 재직해 짧은 기간이나마 대학사회를 경험한 것도 교직원과의 화합에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CEO총장’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 까닭을 스스로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과분한 평가지요. 다만 1만5000여명의 재학생을 비롯한 대학 구성원 모두가 재도약의 흐름을 만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학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창립 50여년만에 엠블렘을 바꾸는 등 UI(University Identity)작업을 강력히 추진해 학내갈등 분위기를 해소하고 동문회 조직의 재정비도 이끌어냈습니다. 동문회의 협조를 얻어 학교발전기금을 이전보다 체계적으로 모금하고 있지요. 대학교육협의회의 대학평가에서 2000년에 법학과가, 2001년에 디자인학과가 ‘전국 최우수’에 선정된 것도 재도약 의지를 북돋웠지요.”

―평소 특성화·차별화교육을 강조하고 계신데요.

“대학의 가장 큰 문제는 사회수요에 맞는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는 데 있어요. 대학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교육·연구의 질을 높여야 합니다. 또 하나의 문제인 대학 서열화가 사라지려면 우수학생들이 대학교의 이름이 아닌 학과를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대학 스스로 최고의 학과를 만들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 대학은 조형예술, 법학, 디지털정보학 등은 선두라고 자부합니다. 대학원에도 비즈니스IT대학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자동차공학전문대학원이 개설돼 특성화를 지향하고 있지요. 수년째 지속되면서 교양강좌로 유명해진 ‘목요특강’도 각계에서 개성적 위치를 차지한 분들을 모셔서 그 지혜를 듣는 특성화 교육의 하나지요.”

―‘그린 캠퍼스’운동은 구호가 아닌 실체가 있는 것입니까.

“캠퍼스환경 개선 운동이지요. 우리 대학은 광화문에서 차로 30분 거리지만 북한산을 끼고 있어서 청정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어요. 이걸 장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건물 신·증축때 그린 이미지에 맞게 짓고 있지요. 외형뿐만 아니라 강의실과 회의실에 멀티미디어 시설을 갖춰 기능 중심으로 바꿔 놨습니다. 교직원과 학생들은 캠퍼스 내 금연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옴부즈 오피스’란 게 좋긴 하지만, 총장께서 학생과 1대1로 상대하면 부작용도 있을텐데요.

“총장 전용주차장에 대해선 제가 직접 응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차장급 직원 30명이 돌아가며 살피고 그 조치 결과를 제게 알리고 있지요. 물론 저는 그 과정을 게시판을 통해 점검하고 직원들의 업무장악 능력을 알게 되지요. 직원들은 힘들어하지만 학교행정 서비스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엔 공감하는 듯 합니다. 대신 직원들의 연수기회를 확대하고 인사를 공정하게 시행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사학재단의 학교행정 간섭이 공공연히 이뤄진다는데 국민대는 솔직히 어떻습니까.

“아시다시피 우리 대학 설립자는 해공 신익희 선생이고, 중흥자는 김성곤 선생입니다. 출연자는 물론 쌍용그룹이지요. 그러나 참 ‘점잖은 출연자’라고나 할까요, 학교법인 국민학원(이사장 이현재 전총리)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출연자는 학교행정에 일절 간섭하지 않습니다. 저는 대학이 등록금을 받아 건실하게 운영하면 적자가 날 수 없다고 보는데, 현재 우리 학교는 채무 없이 적립금만 수백억대에 달하는 재정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학교 중장기발전계획인 ‘도약 2010’의 바탕이 돼 줄 것입니다.”

―최근 한 국립대 총장의 언행이 잇달아 구설에 오르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 제가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제 경우 대학교육의 수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사석에서도 ‘절제’해야겠다는 다짐을 자주 합니다. 검찰에 있을 때 권력을 누려봤기 때문에 대학총장 하면서 권위를 내세우거나 대접받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검찰 재직시 총장감으로 꼽히다가 93년 재산공개 파동으로 사퇴했는데 당시를 돌아보면 아쉬움은 없습니까.

“당시 정치적 흐름은 국민의 인기에만 급급한 포퓰리즘이었어요. 제가 깨끗하다는 건 검찰 조직내에서 다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권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실망과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군자는 물과 같이 흐르고 소인은 불처럼 화만 낸다지 않습니까. 제 스스로 변화에 대한 욕구도 있어서 스스로 물러나는 슬픈 결단을 했지요. 그러나 돌이켜보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결단이었습니까. 결과적으로 당시 대통령과 검찰총장이 제게 새 인생을 준 것입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