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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시론]원시적 고시제도 더는 안돼 / 김동훈(법대)학장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03.07.07
  • 조회수 12461

2003년 6월 30일(월) - 경향 -


해마다 6월 하순에는 사법시험 2차 시험이 실시된다. 시험의 권위로 보나 1,000명이나 되는 선발 인원으로 보나 대입 수능시험 다음으로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시험이다. 1차 시험을 통과한 5,000여명의 수험생들이 초여름 더위 속에 나흘간 젖먹던 힘을 다해 그간 공부한 것을 답안지에 쏟아놓느라 팥죽땀을 흘린다. 이 시험 결과에 따라 법과대학의 실질적인 순위가 정해지는 통에 법대의 책임을 맡은 필자로서도 우리 학생들이 좋은 성적을 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시대 안맞는 ‘고시촌 인생역전’


사법시험은 흔히 아는 바와는 달리 임용시험이 아니라 자격시험이다. 즉 이 시험에 붙은 사람은 소정의 연수과정을 거친 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정확하게는 변호사 자격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소수 인원을 뽑을 때에는 합격자 대부분이 판사나 검사로 임용되었기에 자격시험의 성격이 불분명했지만 오늘날 1,000명의 합격자 중 20~30% 정도만이 임용되는 현실에서는 본래의 자격시험 성격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법조인 선발체제는 여전히 옛날 그대로여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한 예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생으로서 2년간 연수받는 기간에는 별정직 공무원의 신분을 주고 월급을 지급하는 것이 정당한가에 대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자격시험 취지와 모순이 되는 것은 정원제 선발방식이다. 미리 1,000명이라는 합격정원을 정해놓고 시험점수를 합산하여 1,000등 안팎에서 빨간줄을 그어 합격·불합격을 가리는 것이다. 자격시험이란 그 분야에서 일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질이 있는가를 보는 것이며 현재 법과대학 체제에서는 4년간의 법학 교육을 제대로 이수했다면 대체로 그 자격이 갖추어졌다고 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이처럼 자격의 부여는 일정한 교육과정의 이수와 연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격 부여가 교육과정과 절연된 채 단 한차례의 시험이라는 승부 결과에 의해 좌우된다면, 실제로 자격시험이 가진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시험 적합성을 단련해온 시험 선수들이 혜택을 누리는 현상이 나타난다. 동시에 교육기관도 껍데기만 남고 소모적인 시험 대비 사교육만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고부담 시험을 통해서는 유능한 법률가를 선발하기 어렵다. 오히려 장기간의 수험생활을 통해서, 균형잡힌 사고와 건전한 양식이라는 법률가의 중요한 자질이 훼손된 인간상이 배출될 위험이 크다.


결국 해법은 현재의 사법시험을 통한 법률가 선발시스템을 전면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이처럼 치열한 경쟁시험을 통해 법률가 자격을 부여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밖에 없다. 법과대학의 교육과정을 더욱 강화하든지, 또는 별도의 전문대학원을 만들든지 하여 일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자격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아울러 지금처럼 정원제를 유지하여 시험 합격자에게 자동적으로 일정한 특권을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시험 합격으로 얻을 수 있는 지대(地代) 추구가 대폭 완화될 수 있을 정도까지 자격 취득자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 옳다. 이웃 일본도 내년부터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여 법률가 양성 및 선발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혁할 예정으로 있으나 우리는 변호사단체라는 독점적 직능조합의 기득권 주장에 막혀 10년 가까이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원 제한없는 자격시험으로


이와 관련하여 필히 법조 일원화도 달성되어야 한다. 즉 판사나 검사는 변호사 업무를 오래 수행한 사람 중에서 별도 기준에 따라 채용해야 한다. 그리고 임용된 판사나 검사는 그곳에서 정년퇴직해야 한다. 지금처럼 법조에 재직하는 기간이 장래 변호사 개업을 위한 실습기간이 되는 것이야말로 사법 서비스의 대상인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이다.


정규 법학교육을 충실하게 받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이들이 전통적인 법조분야 외에 사회의 다양한 각 분야에 퍼져서 합리적인 법치주의의 정신을 뿌리내리도록 하며 일반 기업에도 자격증 수당 정도만 받고 취업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 그래서 수만명의 수험생들이 고시촌에서 ‘인생 역전’을 기대하며 한판 승부를 준비하는 원시적 상황을 자연스레 끝내야 한다. 사법시험이 만들어내는 풍경들은 이제 문명개화의 세상에서 과거 속으로 사라질 때가 되었다.


<김동훈/국민대 법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