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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중앙 시평] 일그러진 평등으론 안된다 / 조중빈 정치대학원장

  • 작성자 관리자
  • 작성일 03.09.04
  • 조회수 11387

2003년 8월 18일(월) - 중앙 -


'평준화 교육' '1년 휴가일수 1백65일' '여교수 모집공고'. 이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을까? 뭔가 부자연스럽다는 것은 알겠는데 잘 엮어지지가 않는다. 우선 교육문제부터 보자.

평준화가 문제라고는 하면서 절대 못 풀어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이야기해서 이것 풀면 강남학군은 '노'나고 강북학군은 초상난다는 것이다. 가난하더라도 교육은 평등하게 시켜야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준화 교육은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 등골 더 빠진 저소득층 부모들



좀 오래된 일이라 잊었을지 모르지만 평준화는 청소년들을 입시지옥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사회로부터의 절박한 요구(?)에서 비롯됐다. 몇몇 일류 중학교를 없애고 중.고등학교의 입시를 폐지함으로써 평준화의 시동이 걸렸다. 그런데 대학교는 추첨으로 들어가게 할 수 없으니 대학입시는 그대로 존치시켰다. 이로써 입시지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6년간 유예된 것이다. 해방감도 잠시, 세월이 지남에 따라 입시준비는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중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다시 내려오게 됐다. 요새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유치원 학부모도 대학교 걱정한다. '도루묵'이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손놓고 있을 수도 없으니 궁여지책이 나온다. 시험문제를 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시험문제가 쉬워져도 공부는 더 열심히 해야 되는 게 또 문제다. 한 문제만 틀려도 천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되니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무엇을 알려고 공부한다기보다 틀리지 않기 위해 밤새 공부하며, 청소년들이 전국적으로 신음한다.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 간다고 해놓고 죽도록 공부시키는 선생님과 부모가 밉다.


선발이 있는 한 경쟁이 없을 수 없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지금 같은 천편일률적 교육의 틀 안에서는 돈 경쟁이 더 중요해진다. 콩나물 장사해서 아이들 교육시켜 가지고는 좋은 대학 보내기 거의 불가능해졌다. 그렇더라도 교육은 시켜야 하고, 남들이 다 시키는 과외를 무시할 수 없다. 사교육비 쓰기 경쟁하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부자가 이긴다. 평준화 교육은 기득권 층의 독식을 막기 위한 장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돌아온 것은 가난한 사람 등골 더 빠지고, 그러고도 좋은 대학 못 보내게 된 것이다. 해결책은 단 하나, 경쟁은 시키고 가난한 사람은 도와주는 것이다. 전 세계 선진국이 다 그렇게 하고 있다.


고개가 끄떡여지지만 당장에는 안 된다. 남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평준화를 선뜻 풀어줄 수가 없다. 차라리 돈을 더 벌어 원도, 한도 없이 애들에게 써보고 싶다. 그래서 요새는 노사협상 테이블에 사교육비 보조까지 올라온다. 그것도 대어(大魚)들이나 협상할 수 있는 일이지, 잔챙이는 그 밑에 치인다. 생돈으로 사교육비 대느라 허리가 휘청거린다. 이런 '노동귀족'을 위한 노동운동은 언제 배태됐을까? 못 산다면 다 같이 못살고, 잘 산다고 해봐야 거기서 거기인 시절에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절정에 달한다. 민주화 운동의 바람을 탔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빈부의 문제는 지금이 더 심각하다.



*** 회사서 사교육비 보조해달라 ?



이쯤 되면 뭔가 아귀가 잘 안 맞는다는 느낌이 들만도 한데 내친 김에 한 수 더 뜬다. 마치 우리 사회를 완전평면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은 기세다. '지역할당' '여성할당'도 모자라 모 일류대학에선 '여교수' 모집 광고까지 냈다. '여교수'가 직업이름은 아니지 않은가? 그 쪽에서 여교수 다 빼가면 이 쪽은 어떻게 하라고, 그리고 또 '도루묵' 되는 것 아닌가?


우리 더 이상 아이들에게 죄짓지 말자. 양심의 소리를 듣자. 현명해지자. 학벌 타파하려다 학력 타파하는 평준화, 가난한 사람 등치는 노동운동, 여성들 욕되게 하는 여성운동으로 평등한 사회는 오지 않는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도와주고, 고마운 마음으로 받는 것만이 이 난국을 헤쳐 나가는 길이다.




조중빈 국민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