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임명 제청을 둘러싸고 파동 조짐까지 보이던 사법부 내의 동요와 재야 법조 및 시민단체의 비판이 대법원장의 보다 유연해진 입장 표명과 대통령의 사려있는 제청안 수용으로 원만히 봉합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대한변호사협회는 여전히 법관 인사제도의 개혁을 촉구하고 있고, 대법원장도 ‘법관에게 드리는 글’ 등을 통해서 차기 대법관 제청의 절차와 실질을 포함해 사법제도 전반에 관한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을 밝힌 바 있어 사법개혁은 오히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 법조계 이익만 챙기면 실패 뻔해 ▼
사실 사법개혁이라는 화두는 사법부 자체의 개선 노력 이외에, 1995년 문민정부 시절과 99년 국민의 정부 아래서 두 차례나 국민적 관심을 모은 적이 있는 해묵은 국가적 과제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평균적 시민의 시각에서 본다면 법률서비스 및 법학교육의 세계화 방안에 초점을 맞춘 김영삼 정부에서의 제1차 개혁시도나, 법조인 양성제도를 포함한 법조 전반의 문제와 권리구제 절차를 사법제도의 새로운 패러다임 모색이라는 틀 속에서 추진했던 김대중 정부의 사법개혁 작업은 모두 국민이 납득할 만한 가시적 성과를 얻는 데 실패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제 사법부가 행정부와 공동으로 새로이 사법개혁 작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전제와 한계적 장애요인을 반드시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본다.
첫째, 사법개혁 작업은 특정 직역(職域)의 이해가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는 너무나 당연한 사리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법조인이 차지하는 위상과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해 본다면 예상보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문제만 하더라도 법조계 전체가 그럴듯한 명분을 들어 반대하는 이상 대통령조차도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를 강행할 자신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 과거의 경험이다. 결국 대법원을 비롯해 모든 재조, 재야의 법조인이 그야말로 열린 마음으로 제로베이스에서 법관 인사제도를 포함한 사법개혁의 과제에 접근하지 않으면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는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둘째, 사법제도는 일시에 혁명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 단계적 개혁도 가능하다는 현실적 상황 인식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불합리한 제도는 한꺼번에 뜯어고치고 싶겠지만 재판제도는 국민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고 법원은 사법권 독립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개혁의 의제별로 국민 여론과 축적된 연구자료를 토대로 차근차근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일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그 일정표는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만료 전인 2007년경에 맞추면 무난하리라고 본다. 사법부는 스스로 개혁 작업을 주도할 때 직면할 수 있는 한계에 관해서도 지혜롭고 사려 깊은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일본이 내각 주도로 사법개혁을 추진하면서 현직 법관이나 검사를 한 사람도 13인의 심의위원 가운데 포함시키지 않은 사실이 과연 무엇을 시사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제별로 여론수렴 점진적 추진을 ▼
셋째, 사법제도에 대한 국민적 승복감 내지 동질감의 확보가 긴요하므로 이를 위해 시민대표를 포함한 법조 관련 직역 상호간의 대화 및 협의체제도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유기적이 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이 점은 국민의 사법참여 확대 차원에서 배심제나 참심제의 일부 도입과 같은 재판제도의 중장기적인 개선 방안 이외에, 대법원장도 공언한 바가 있는 대법관 추천 방식의 개선 등 법관 인사제도 전반의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전향적인 고려요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의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의 운영에서 얻은 실패의 경험이 국민의 편익에 봉사하고 한국적 법문화에 맞는 사법제도의 창출을 위한 소중한 교훈으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