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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의 이인삼각>정치 9단 아닌, 정치 초짜의 진심이 국가를 구하다 / 김우석(행정대학원) 객원교수
<김우석의 이인삼각> 지소미아 유지·선거법 개정 불가·공수처법 처리 불가
정치초짜의 결연한 의지가 국가를 구할 수 있을지?…다른 형태로 다시 부활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25일 청와대 앞 천막에서 6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는 황교안 대표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북악스카이웨이의 단풍이 이렇게 처연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황교안 대표가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청와대 분수대 앞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비가 내렸고 날은 어두워졌다. 비가 그치면 혹한이 온다는 소식도 있었다. 비를 맞은 풍경은 수채화가 담도 짖은 유화로 변하는 듯 했다. 회색빛 머금은 단풍잎들이 한 폭의 유화를 이뤘다. 풍경과 함께 마음도 함께 무거워졌다.
지난 주 화요일 저녁시간이었다. 황교안 대표를 독대했다. “단식을 하시면 안 된다”고 간곡히 말씀드렸다.
“지금은 국민과 당원이 부여한 칼을 휘둘러 혁신을 할 때다. 스스로를 단식투쟁 장에 유폐시키면 현실과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려면 누구보다도 냉정한 판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의 효과를 떠나 장기적인 향후전략을 생각하시라”고 다시 말씀드렸다. “결정적인 순간에 건강을 해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도 했다. 황 대표의 성격을 알기에 ‘대충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칫하게 그가 말한 ‘목숨 걸고’가 청와대 앞 길거리의 횡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황 대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소미아와 한미동맹이 대한민국을 위해 왜 중요한지 한참 설명을 했다. 국민들에게 이를 알려야 한다고 했다. 이를 알리기 위해 청와대에 영수회담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고도 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절박감을 표했지만, 자신감과 온화함이 깃든 여릿한 미소를 지었다. 손을 잡고 ‘응원의 기도’를 당부하기까지 했다. 답답하긴 했지만 승복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언론은 단식투쟁 소식이 전했다. 석간이 고약하게 리드를 잡았다. 언론사 간부들이 전화를 해 왔다. 대체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뜬금없다”, “자멸로 가는 것이냐”는 반응들이었다. ‘아마추어리즘의 정수’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일부는 ‘운이 좋은 분이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격려해 주는 분도 있었지만, 역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오후에 단식에 들어갔고 다음날이 밝았다. 의미부여를 해주는 곳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언론은 부정적 시각을 숨기지 않았다. ‘여권의 공세’와 ‘당내 쇄신요구’, ‘통합과정의 잡음’ 등에 몰려 모면책으로 단식을 결행했다는 뉘앙스가 주류였다. 야당은 ‘황제단식’, ‘갑질단식’이라고 모욕했다. 과거에 는 상상할 수 없던 막말이 여과 없이 언론을 통해 전파됐다. 많은 사람이 분개했지만, 눈앞의 위기를 감당하느라 제대로 따지지도 못했다.
한창 추운 날씨였다. 청와대는 천막도 치지 못하게 했다. 노지에 조그만 책상하나 펴 놓고 단식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바람막이도 없었고, 올라오는 냉기를 막거나 위에서 내리는 한기를 피할 최소한의 장비도 없었다. 무모해 보였다. 그리고 주말을 맞았다. 체력은 급속히 떨어졌다. 그 와중에 안심되는 소식도 있었다. 정부가 지소미아 파기를 조건부 연기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지소미아 유지’라는 보도가 나왔다. ‘운 좋은’ 황 대표에게 예상치 못한 호재가 현실화된 것이다. 사람들은 ‘운칠기삼’이라고 했다. 여기서 ‘기삼’의 ‘기’는 ‘기도빨’이라는 뜻이란다. 황 대표는 애초에 세 가지 조건을 들어 단식에 들어갔다. 첫째가 ‘지소미아 유지’를 통해 ‘한미동맹 복원’, 둘째가 선거법 개정 불가, 셋째가 공수처법 처리 불가였다. 첫 번째 요구는 미봉상태를 유지하며 지나갔지만, 두 가지 과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
청와대는 ‘미국의 압박에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는지, 황 대표의 단식이 지소미아 유지의 지렛대가 됐다고 추켜세웠다. 공수처법과 연동형비례대표제 선거법까지 단식이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가 역역했다. 그 두 법은 ‘좌파독재’를 위한 것이고, 나라를 언제나 망가뜨릴 수 있는 ‘자폭면허증’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소미아와 한미동맹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당 같은 야당이 건재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황 대표는 물러설 수 없었다. 그리고 방미 중 급거 귀국한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선거법 개정저지를 위해 단식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하며 원내투쟁을 독려했다. “내가 청와대를 상대할 테니 나머지 의원들에게 국회투쟁을 당부한다”는 의미였다. 비오는 날 비상의총이 열렸고 황 대표는 일어서서 애국가만 함께 부르고 자리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황교안 대표는 정치초년생이다. 정계입문한지 1년도 안됐고 대표는 맡은 지 반년 남짓이다. 사분오열된 당을 추스르고 대여투쟁을 벌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초짜 정치인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정치 9단’으로 불리는 정치인은 ‘정치적 상상력이 없다’고 비아냥거렸다. 한국당의 기존 의원들은 앞에서는 깍듯했지만 뒤로는 뒷담화에 여념이 없었다. 사고도 많았고, 미숙한 대응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 9단’을 비롯한 그 잘난 기성 정치인들이 만들어 온 정치가 대한민국으로 파탄으로 몰아가지 않았던가? 그런 정치인들이 평생 정치를 모르고 살아 온 황교안을 정치판 진창으로 이끌어 들여 책임을 떠넘겼다. 그리고는 다시 ‘흔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언제나 그러하듯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한번 쓰고 버릴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황 대표는 선택의 기로에 있었다. 총선 공천까지 가기도 쉽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황 대표를 낙마시키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거나 기존 지도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조기 선대위구성 안’이 나왔다. 언론은 ‘백기를 들고 통합하라’고 강요하며 최후통첩을 했다. 통합의 대화상대는 초짜 정치인인 황 대표를 얕잡아보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형국을 연출했다. 궁지에 몰린 황 대표에게는 내놓을 것이 목숨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단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대충 시늉만 내는 기성정치인들을 따라하려고 했다면 시작도 안했을 것이다. 비장한 각오가 있었고 비타협적이었다. 처음 이틀 밤에는 국회로 돌아와 천막에서 자고 새벽에 다시 청와대 앞으로 나갔다. 그러나 이틀이 지난 후에 아예 청와대 앞 노숙을 선택했다. 그는 그 흔한 ‘출구전략’도 없다. ‘목숨을 건다’고 하며 출구전략을 만드는 것이 이율배반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주말을 지나며 여론은 황 대표 편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삐딱하던 언론도 긍정보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체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일요일엔 오전과 오후가 딴 사람이었다. 월요일에는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초취해 졌다. 의사들은 추위와 굳은 날씨에 노지에서 단식을 했으니, 체력은 두세 배 빨리 소진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제 언제 쓰러져도 이상한 상황이 아닌 지경에 이르렀다.
비가 그쳤다. 이어 예고된 한파가 찾아왔다. 비 맞은 낙엽은 얼었다가 힘을 잃고 떨어졌다. 황 대표는 그의 유일한 메시지 창구인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간밤 성난 비바람이 차가운 어둠을 두드립니다.
이 추위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요.
잎은 떨어뜨려도 나무 둥지를 꺾을 수는 없습니다.
몸은 힘들어도 정신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마음으로 함께 해주시는 국민 여러분 덕분입니다“
정치초짜의 결연한 의지가 국가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자신을 파괴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다른 형태로 다시 부활할 것이다. ‘정치 9단’ 들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글/김우석 (현)미래전략연구소 부소장·국민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
원문보기: http://www.dailian.co.kr/news/view/846608/?sc=naver
※ 게재한 콘텐츠(기사)는 언론사에 기고한 개인의 저작물로 국민대학교의 견해가 아님을 안내합니다.
※ 이 기사는 본교 소속 구성원이 직접 작성한 기고문이기에 게재하였습니다.
출처 : 데일리안|2019-11-26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