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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디자인과 건축]신세대 리더 김개천

  • 작성자 헤럴드경제
  • 작성일 03.12.29
  • 조회수 11094
[디자인과 건축]신세대 리더김개천



직선의 美로 살린 현대판 `청산별곡`
군더더기 없는 단순함ㆍ한국의 미 천착
산ㆍ달빛등 자연 배경삼아 새공간 창조
담양 정토사ㆍ만해마을 여백의 맛 풍부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한 칸 지어내니/ 반 칸은 청풍이요, 반 칸은 명월이라/ 강산은 드릴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1524년 송순이 담양 향리의 산전을 구입해 10년 동안 누정 짓기를 염원 하다 나이 41세에 대사헌직에서 물러나 비로소 면앙정을 건립하고 쓴 면 앙정 잡가다.

초당 한 채의 검박한 형태지만 청풍과 명월, 강산으로 꾸 민 선비의 지극한 미의식이 들여다보인다.

건축가 김개천(46ㆍ국민대 조형대학 교수) 씨는 `무형의 미` `자연 과 교감하는 건축`의 전통적인 미감을 현대적인 어법으로 풀어내려 한 다.

그 결과, 찾아낸 형태는 가장 단순한 `직선`이다.

무형의 미야말 로 가장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까닭이다.

담양 정토사는 군더더기 없는 무형의 미를 잘 보여 준다.

2층의 네모반 듯한 시멘트 건물이 전부다.

그럼에도 밋밋하거나 심심하지 않다.

안에 서 바깥을 보면 창살 틈새를 끼고 산이 걸쳐져 있고, 햇빛과 달빛이 만 들어내는 묘한 빛과 그림자가 마루 위에 쉼 없이 펼쳐진다.

얕은 저수지 는 건물의 허상까지 보여 준다.

"곡선으로는 절대적으로 자연을 모방할 수 없지요.

단지 어설픈 흉내 에 불과해요.

어떤 경우에는 흉물스럽기까지 하죠.

전통의 미는 일반적 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직선에 있어요.

가장 단순한 형태야말로 많은 것 을 담아낼 수 있지요." 해인사 일주문에 이르는 길은 한국의 미의 극치다.

서양의 직선은 목표에 다다르기 위한 일직선이지만 일주문의 직선은 내 려가는 듯 올라가는 직선이어서 보행자를 편안하게 해준다.

곡선이 직선 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지난 여름 조성한 만해마을도 그의 직선의 미학을 담고 있다.

만해사에 이르는 길은 죽 뻗어 있지만 그 끝은 비어 있고 산자락이 가 뭇하게 자리하고 있다.

옆길로 살짝 비껴 자리한 만해사는 마치 허공에 두 획을 그은 듯 단순한 형태다.

층계를 올라 안으로 들어서면 정작 텅 빈 공간, 산이 저만치 눈에 들어올 뿐이다.

만해광장의 무대도 세워 놓 은 두 개의 기둥이 전부다.

그러나 시야를 멀리 하면 기둥 사이에 산이 세트처럼 앉아 있다.

자연을 풍부하게 하는 게 건축작업이라고 그는 말 한다.

무형의 건축은 놀랍게도 유희공간인 바(Bar)에도 적용된다.

청담동의 `문 바`는 형태는 직선으로 분할한 단순한 공간이지만 셀로판 색지를 이용해 빛의 다양한 반사와 굴절로 즐거움을 만들어낸다.

삼성동의 `칼 라 바`도 같은 맥락이다.

평창동의 개인주택 `중암`은 아무런 장식 없이 오직 정원의 소나무를 인테리어로 삼은 집이다.

그의 작업이 처음부터 `무형의 형태`를 지향한 것은 아니다.

한때는 허접 쓰레기를 모아 엮어 공간을 구성하기도 했다.

그때는 하찮 은 것들이 지극한 미를 어떻게 보여 줄 수 있는가가 화두였던 까닭이다 .

젊은 시절에는 중동 건설현장에서 설계를 맡기도 했다.

알래스카 감옥 을 3년 동안 작업할 때는 감방 신세가 따로 없었다고 한다.

동양철학은 그의 작업의 바탕이다.

최근 찾아낸 최고의 미는 `명묵(明默)의 건축`.

`밝은 침묵`, 없음과 있음이 공존하는 침묵이야말로 `지고의 미`라 고 그는 여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