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닫기

전체메뉴

Quick Menu

Quick Menu 설정

※ 퀵메뉴 메뉴에 대한 사용자 설정을 위해 쿠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메뉴 체크 후 저장을 한 경우 쿠키 저장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언론속의 국민

분계선서 포옹 나눴던 북파공작원들 / 신대철(국문)교수

  • 작성자 세계
  • 작성일 04.02.05
  • 조회수 10052
2004년 02월 04일 (수) 20:24

북파공작원들을 정면에 등장시킨 영화 ‘실미도’가 흥행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중진 시인 신대철(59·국민대 국문학과 교수)씨가 북파공작에 참여했던 자신의 체험을 글로 고백해 눈길을 끌고 있다.

신 교수는 조만간 출간될 계간지 ‘창작과 비평’ 봄호에 ‘실미도에 대한 명상’이란 에세이를 발표했다. 그는 앞서 2001년 같은 잡지 가을호에 시 ‘실미도’를 싣기도 했다.

1960년대 말 ROTC 출신 장교로 전방에서 복무할 때 DMZ(비무장지대)와 GP(감시초소) 책임자였던 신 교수는 4일 인터뷰에서 “GP를 총괄하면서 임시로 대북 방송 원고를 썼으며, 때로는 북파공작원들이 안전소로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만난 북파공작원들은 얼굴이 깡마르고 강하게 단련된 사람들이었으며 처음에는 서로 얘기도 안 하지만 같이 안전소로를 통해 지형 정찰을 하러 다니다 보면 정이 들게 된다. 그러다 천둥과 번개가 치는 새벽에 공작원들은 북파되는 데 서로 격렬하게 포옹한 뒤 헤어진다.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르고 한번 가면 잘 안 돌아온다. 안 돌아 온 사람은 북에서 체포됐거나 죽은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신 교수는 영화 ‘실미도’와 관련, “단순한 블록버스터형 액션물에 지나지 않는다”며 “그저 단순한 폭도들의 감상적인 자살극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 잊혀졌던 분단상황에서의 비극적 사건에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영화 내용에 리얼리티가 부족해 낯설고 당황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감동하고 눈물을 흘려 이중의 당혹감을 느꼈다”고 지적했다.

경력을 보면 그의 지적에 수긍이 간다. 그는 북한 124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 한 달 뒤인 68년 2월 ROTC 장교로 입대해 비무장지대 GP 책임자로 10개월여 근무하는 동안 그의 임무는 북파공작원이 북쪽으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도록 접근로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북파공작원 양성·파견부대였던 HID 후속 부대인 AIU 출신이었다. “항간에는 대부분 북파공작원을 사형수, 무기수, 혹은 죄수들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군에서 설득돼 온 사람들과 자원한 이들도 있었다”고 신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또 “어릴 때부터 부랑자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많았고 우연히 ‘브로커’(물색요원)를 만나 인생을 바꿔보려고 공작원의 길을 택한 이들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10여년 전부터 ‘빗방울 화석’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현장을 방문해 그 체험을 시로 쓰고 있는데, 그동안 ‘산늪‘ ‘빙폭’ 등 세권의 공동시집을 냈다. 또한 2000년에는 남북분단의 고통을 그린 시집 ‘개마고원에서 온 친구에게’(문학과 지성사)를 펴내기도 했다.


박석규기자/skpark@segye.com